속죄, 이언 매큐언 1

이야기의 큰 줄기, 브라이어니는 속죄되었는가.

by 쉼표

선배 선생님께서 권하신 이 책은 사실 꽤 오랫동안 별 즐거움 없이 읽어가기 시작했다. 주요 인물인 브라이어니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은 지루했고 리언, 롤라, 쌍둥이 형제, 마셜, 로비,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묘사와 그들의 관계, 상황에 대한 서술은 어렵지는 않았으나 각각의 것처럼 보여 장황하게 느껴졌으며 섬세한 묘사도 그저 그것이 섬세하다는 것, 생생하다는 것, 실제 있는 사람, 실제의 감정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것 외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별로 인상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이 소설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지루한 책인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주제를 다룬 책인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의도적이었을, (또 어떤 면에서는 필수적이었을) 작품의 초반부를 지나면 이 책은 섬세한 묘사나 감정의 깊이, 매력적인 서술 방식이 아니라 서사, 그 자체로 독자를 숨쉴 틈 없이 끌고 간다. 그리고 어떤 독자는 이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의 반전을 만나기도 전에 이미 여러 번 예상을 벗어난 장면을 만나게 된다.




1. 이야기의 큰 줄기


탤리스 가의 막내 딸 브라이어니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로 작가를 꿈꾼다. 이 아이의 언니 ‘세실리아’를 사랑하는 탤리스 가의 하인의 아들 ‘로비’는 세실리아에게 줄 편지를 이 아이 (브라이어니)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고, 이 편지를 몰래 뜯어 본 어린 브라이어니는 외설스러운 편지 (세실리아에게 사과 편지와 혼자 쓰고 버릴 외설스러운 편지를 썼으나 실수로 사과 편지 대신 외설스러운 편지를 봉투에 넣어버린 것임) 내용에 ‘로비’에 대한 잘못된 상상(정신병자라는)을 하게 된다. 브라이어니를 통해 편지를 받은 세실리아는 로비를 향한 자신의 감정(사랑)을 깨닫게 되고 탤리스 가 집에 온 로비와 만나 서재에서 사랑을 나누던 장면을 브라이어니에게 들키고 만다. 브라이어니는 다시 한 번 로비가 언니를 괴롭힌다고 오해하게 되고 이 오해는 이후, 사촌 롤라를 강간한 사람이 로비라고 착각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 오해, 이 상상력으로 로비는 감옥에 가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프랑스로 가게 되며 언니는 거짓 증언을 한 동생 브라이어니와, 빛이 거의 없는 어두운 상황에서의 사건이었음에도 어린 동생이 범인을 보았다는 증언 한 마디로 범인을 로비로 단정지은 사람들- 아마도 하인의 자식인 주제에 캠브리지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의사가 되려고 하는 로비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어머니, 사회 사업에 관심이 있다며 재정적 직원을 해 주었음에도 편에 서 주지 않았던 아버지, 세실리아 자신과 로비가 사랑하는 사이라고 밝혔음에도 브라이어니가 오해한 정황에 대한 생각을 정정하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간호사가 되어 독립한다

2부와 3부는 이 상상력의 결과이다. 로비의 전쟁 경험과 세실리아와의 애틋하고도 절절한 사랑, 청소년기가 지나면서 자신이 한 오해와 그 결과를 직시하게 된 브라이어니가 속죄하기 위해 작가의 꿈을 버리고 간호사가 되어 목격하게 되는 참전 군인들의 비참한 모습, 그리고 진범이 로비가 아니었음을 알았음에도 스스로를 속이고 브라이어니를 이용했던 롤라와 진범인 마셜의 결혼 소식까지. 그 마지막 반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초반부의 지루함이 필연적이었다고 여기도록 만든다


2. 브라이어니는 속죄되었는가?


속죄란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애는 것’이다. 브라이어니는 속죄되었는가?


브라이어니는 강간범이 어쩌면 ‘로비’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 한 주가 채 지나가기도 전에 그렇게도 굳건했던 확신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브라이어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문자 그대로 자기가 본 것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준 것은 눈이 아니었다. 눈으로 확인하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꽉 부여잡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은 채 최초의 증언을 반복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피할 수 있었다. ... 그 일을 깨끗이 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과 어린 시절 특유의 무자비한 망각 덕분에 무사히 청소년기로 진입할 수 있었다.



브라이어니가 거짓 증언을 한 것은 완전히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로비가 강간범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완전히 비의도적인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강간범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비를 강간범으로 만들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상상력’이었다. 그리고 그 ‘상상력’, 또는 ‘생각’, 또는 ‘오해’는 ‘진실’과 다르다는 인식을 하게 됨에 따라 브라이어니가 가족과 단절하고 고된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도록 만든다.


그 고된 삶이 간호사로서의 삶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이렇게 일을 하다가 목욕을 하고 다시 일을 해야 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잠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래 봣자 소용없다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고 비천한 일을 해도, 그 일을 잘해내도, 혹은 형편없이 해도, 대학 교정에서 누렸을 어떤 학문적 성취나 빛나는 순간을 포기했다고 해도, 그녀가 저지른 범죄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었다.



참전한 로비와 같은 군인들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그들을 위해 비천한 일을 하는 간호사로서의 삶을 살기를 선택한 브라이어니는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고자 하고 언니에게 용서를 구한다. 한 소녀의 상상력(그리고 의도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오해)으로 인해 완전히 인생을 잃어버린 로비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브라이어니는 속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화자는 말한다. ‘그녀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문학은, 글쓰기는 어떠한가? 브라이어니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진실을 밝힘으로써 속죄할 수 있을까? 문학은, 글쓰기는 속죄라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소설가에게 속죄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며,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다. 오직 속죄를 위한 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간호사로서의 삶으로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해 버린 잘못에 대해 용서받을 수 없듯이, 그녀의 소설(문학, 진실을 밝히는 행위)도 속죄될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로비는 탤리스가의 하인인 어머니, 남편이 떠나버린 어머니에게 하나뿐인 아들로, 열심히 공부하여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여 우수하게 졸업한 청년이었다. 다시 의대에 진학을 앞둔 청년으로 탤리스가의 딸, 세실리아를 사랑하며 이제 막 열정적인 관계를 앞둔 한 사람이었다. 길 잃은 쌍둥이를 구하다 감옥에 갇히고, 참전하게 되어서도 여전히 아이와 어머니를 도와주고자 했던 청년, 자신을 기다리던 연인을 만나고자 생을 끝까지 붙잡으려 했던 청년이었다. 이러한 삶 하나가 파괴되었다. 그의 연인이자 브라이어니의 언니 세실리아의 삶도, 그의 어머니의 삶도 파괴되었다. 인간의 삶 앞에서 브라이어니의 소설을 넘어, 그 어떤 문학도 속죄의 권한은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으며, 속죄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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