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2

문학의 상상력, 진실과 인간

by 쉼표

3. 문학의 상상력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쩌면 소설은, 문학은 오히려 무척 위험한 것이 아닌가?


1부의 지루함(나에게는 지루했다)은 소설가(작가, 문학)에게 필수적인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어떻게 그럴듯하게 만들 것인가. 그러한 생각의 흐름이 로비를 강간범으로, 세실리아의 사랑을 비극으로, 브라이어니 자신의 인생을 온통 죄책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이러한 면에서 이 소설은 ‘소설의 상상력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소설의 상상력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떠한 상상력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 어쩌면 소설은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을 전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브라이어니가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증언을 요구했을 때 자신이 ‘아는 것’(인식하는 것, 상상한 것)을 증언한 것이 옳지 못한 것처럼 소설은 오로지 ‘눈’으로 본 것만을 증언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


소설가에게 속죄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며,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다. 오직 속죄를 위한 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문학의 힘은, 진실을 밝히는 일의 가치는 현실 문제 자체를 없애는 데에 있지 않다. 현실 문제 자체가 중요한 것임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덧붙인다.


오직 속죄를 위한 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문학은 ‘속죄’의 기능을 할 수 없다. 그저 ‘속죄를 위한 노력’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브라이어니는 끝내 로비에 대한 거짓 증언을 고백하지도 못한다. 고발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의 소설이 가해자들이 생존하는 한 출간되지도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속죄를 위한 노력’이라고 문학을 정의한다. 그리고 그 노력의 방향이 반드시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인들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고,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누가 믿고 싶어할까? 냉혹한 사실주의를 구현한다는 것을 빼면 그런 결말의 장점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는 그들에게 그런 짓까지 할 수는 없었다. ... 비관론을 끝까지 지켜나갈 용기가 이젠 없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지만, 그들이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았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브라이어니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그들의 사랑을 완성시킨다. 그 의도에 대해서 ‘나는 그들에게 그런 짓까지 할 수는 없었다.’라고 표현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그들’은 로비와 세실리아이지만 한편으로 이렇게도 읽힌다.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그 길을 가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관적인 결말을 단지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들려줄 필요는 없다, 라는 것이다. 로비와 세실리아의 비극적인 삶을 사실대로 밝혀두면서 ‘그런 짓까지 할 수는 없었다.’라고 말한 것을 보아 작가의 문학관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반드시 희망적인 결말, 반드시 사실적인 결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결말의 장점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작가들에게 던지는 길고 긴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의 상상력은 어때야 하는가? 문학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4.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비극의 극대화, 전쟁


로비의 비극에는 브라이어니의 상상력만 관여된 것이 아니다. 왜 사람들은 세실리아의 확신보다 어두움 속에서 범인을 봤다는 어린 소녀 브라이어니의 진술을 더 신뢰했을까? 세실리아의 어머니는 학업적 성취가 낮은 자기의 딸 세실리아가 아닌, 고작 하인의 아들인 로비가 의대에 진학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보낸 외설스러운 편지를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람들, 하인의 아들이라는 로비의 신분에 대한 편견이나 불편함을 느낀 것이 어머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어린 나이’와 ‘상상력’으로 오해를 빚은 브라이어니의 생각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비극적인 결과를 낳지 않았던 오해까지 포함한다면 이 소설은 더 많은 오해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그들의 관계를 서로에게 속이고, 롤라는 강간범이 누구인지 사실은 알면서도 그것이 로비일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속인다. 세실리아는 로비에 대한 감정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심지어 피해자인 로비와 세실리아는 진범을 또다른 하인의 아들로 착각한다. 우리 내면은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않은 다른 것을 ‘상상’해 내며 내 마음이 편한 방식으로 ‘창작’하여 살아간다. 브라이어니가 ‘비관론을 지킬 용기’가 없음을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진실을 지킬 용기’가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중대한 진실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전쟁’과 만났을 때 비극은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로비는 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어린 아이의 시신에 가슴 아파하며 여전히 어머니와 아이를 지켜주고자 한다. 진실을 외면한 결과로 로비는 비극 속으로 들어가지만 여전한 선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켜주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을 믿어주는 사람, 세실리아에게 돌아가기 위해 끝까지 살아남고자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실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는 존재,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속이는 존재. 그러나 또 한편 인간은 자신의 진실을 믿어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존재. 그것이 인간인 것일까.




이 소설은 강렬한 서사 속에서 두 가지 다른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상상력(문학)에 대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진실을 인식하고 진실은 어떻게 인간을 살리는지에 대해

문학은 어떤 진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속죄’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문학의 공급자, 또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특히 필요한 소설이다.


동시에 스토리 자체가 깊으면서도 흥미롭기도 하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분투와 그럼에도 끝까지 잃지 않는 인간성, 한 인간의 생을 가볍게 망가뜨리는 사람들 각자의 사소한 이유와 이들과 단절함으로써 희망이 되는 사람의 결기, 잘못을 되돌릴 수 없는 사람의 죄책감과 죄책감조차 없는 사람의 모습... 이러한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속죄 를 읽는다고 하면,

충분히 재미있고 깊은 이야기,

라고 소개해줄 만 하다.


읽어 보세요,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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