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년 소녀들1: 버드맨, 잔나비

꿈으로 얼룩진 바짓단을 털어내는 당신을 위해

by 쉼표

모든 소년 소녀들1: 버드맨, 잔나비


방학은 끝났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방학 중에도 불안과 잡념에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했으나 이제는 정말 생각할 틈도 없이, 내 가진 체력을 바닥내어 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한다. 조용히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시간을 갈구하는 마음이 나를 더 괴롭히리라. 좋아하는 일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불행이다. 학교로 돌아가는 마음이 무거워질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일을 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나에게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다른 일 따위는 없다. 결국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재능은 쓸모가 없다. 어쩌면 취미조차도 시간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불행이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인가. 이것이 ‘어른의 삶’인가.


나온 지 한참 된 잔나비의 앨범을 이제야 들었다. 이제는 어른의 삶 속에서 노래하는, 청년에 대한 구절들이 아름답고 울컥하다. 내가 좋아하는 ‘슬픔이여 안녕’, ‘밤의 공원’, ‘꿈과 책과 힘과 벽’, ‘외딴섬 로맨틱’처럼 여전히 시적인 노랫말이 감동적이다. 그런데 이 두 노래, 모든 소년 소녀들 1, 2는 노랫말에 꼭 멜로디를 얹혀야 한다. 다른 노래도 그렇지만 이 노래는 특히, 멜로디와 노랫말이 함께 자아내는 감정과 그림이 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듣는다. 반드시 두 노래를 붙여서 모든 소년 소녀들 1(버드맨)과 2(무지개)를.



모든 소년 소녀들 1: 버드맨


그곳엔 어떤 바람이 불었기에

땀 서린 모자를 벗어 보였던가?

우린 꿈이라 했던, 날이 선 눈빛으로

노려보던 언덕 위를 이제는 떠나는가?

오 인생은 그로부터 시작하네-


“나는 슬프지 않아. 더는 울 일도 없지”

모처럼의 소리로 힘주어 말하곤,

“날지 못할 친구여, 탈을 쓴 내 친구여!

헝클어진 머릿결의 시절을 지나세”


멍하니 서 있었던 이유는 무언가

길 없는 길 위에서 길을 잃었나

그 시절엔 알았고 지금의 난 모르는

그저 그런 질문들에 또 하루가 지는가

오 인생은 그로부터 멈춘다네


“나는 슬프지 않아. 더는 울 일도 없지”

모처럼의 소리로 힘주어 말하곤,

“날지 못할 친구여, 탈을 쓴 내 친구여!

헝클어진 머릿결의 시절을 지나세”


그러나 우린 알지.

내쉬었던 한숨 마다에

떠올려 보던 나비의 날갯짓

때마침 불어오는 이 바람


“나는 꿈이 있었고. 웃을 일도 많았지”

모처럼의 소리로 힘주어 말하고,

“이봐 젊은 친구여, 숨죽인 내 친구여!

헝클어진 머릿결의 시절을 지나세”


불어오는 바람에 머릴 쓸어 올리고

꿈으로 얼룩진 바짓단을 털었네.




그곳엔 어떤 바람이 불었기에

땀 서린 모자를 벗어 보였던가?

우린 꿈이라 했던, 날이 선 눈빛으로

노려보던 언덕 위를 이제는 떠나는가?


오 인생은 그로부터 시작하네-



언덕 위에 선 젊은 당신은 꿈꾸던 미래가 있다.(언덕은 높은 곳에 다다르고자 하는 당신이 서는 곳, 꿈에 가까워지고자 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예술가든, 과학자든, 연구자든. 또는 정의구현이든, 세계 평화든. 그 꿈은 너무도 간절해 당신은 결기에 가득 차(날이 선 눈빛으로 노려보던) 있다. 그러나 문득 불어온 바람으로 이제 그 언덕을 떠나려 한다.


당신에게 어쩌면 그 바람은 돌보아야 할 누군가, 생활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자각, 현실을 인식하게 만드는 여러 상황, 아무리 높은 언덕 위에 서 있어도, 아무리 뛰어도 날 수 없으리라는 충격, 어쩌면 그 꿈을 이루기에 부족한 재능, 또 어쩌면 그 꿈 자체가 의미 없어져 버린 현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덕에서 내려와야 함을 알려주는 바람은 언제든 불고야 만다.


그러나, 슬퍼할 것은 없다. 그것이 ‘삶’이니까. 그로부터 인생은 시작되니 말이다.


멍하니 서 있었던 이유는 무언가

길 없는 길 위에서 길을 잃었나

그 시절엔 알았고 지금의 난 모르는

그저 그런 질문들에 또 하루가 지는가

오 인생은 그로부터 멈춘다네


“나는 슬프지 않아. 더는 울 일도 없지”

모처럼의 소리로 힘주어 말하곤,

“날지 못할 친구여, 탈을 쓴 내 친구여!

헝클어진 머릿결의 시절을 지나세”



그렇게 언덕을 내려온 당신은 어쩌면 간혹 멍하게 길 위에서 서 있게 된다. 당신이 가던 그 인생 길 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 시절엔 알았고 지금의 난 모르는 그저 그런 질문들’이다. 미래가 흐릿하던 젊은 시절엔 분명했던 생각들, 어쩌면 본질에 가까운 질문들, 그렇지만 현실과는 먼 그저 그런 질문들을 떠올릴 때, 당신은 멍해진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야 할 곳이 여기가 맞나. 그것은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당신에게 ‘그저 그런’ 질문들이지만 간혹은 멈추어 서게 만든다. 그리고 인생은 멈추어 선다.


인생이 멈추어 선다는 것은 작사가의 의도와 상관 없이 다양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1. 당신의 인생은 이미 어른의 삶에 진입했다. 그러므로 이제 그저 그런 질문은, 그만. 당신은 새가 아니다. 새가 되고 싶은, 버드맨일 뿐이다. (새처럼 보이는) 탈을 벗고, 나아가야 함을 알지 않은가. 그런 생각은 당신의 삶을 무겁게 할 뿐이다.


2. 언덕 위를 내려와 어른의 삶을 사는 당신은, 그럼에도 간혹은 멈추어 설 것이다. 당신이 ‘인생’의 시작점을 통과해 한참을 걸으며 인생 이전의 것(어쩌면 환상)을 잃어버렸다는 것(그 시절엔 알았고)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당신의 삶은 멈추리라. 그렇게 멈추고, 다시 다독이고, 멈추고 다독이며 나아가는 것이 삶이다. 인생과 환상은 어쩌면 그렇게 한동안 동행하리라.


*제목 ‘버드맨’은 최정훈(보컬, 작사)이 새로운 태양과 부족의 상징인 ‘버드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최정훈은 버드맨이었다. 날고자 했던 버드맨, 탈을 쓴 버드맨 말이다.



그러나 우린 알지.

내쉬었던 한숨 마다에

떠올려 보던 나비의 날갯짓

때마침 불어오는 이 바람


“나는 꿈이 있었고. 웃을 일도 많았지”

모처럼의 소리로 힘주어 말하고,

“이봐 젊은 친구여, 숨죽인 내 친구여!

헝클어진 머릿결의 시절을 지나세”

불어오는 바람에 머릴 쓸어 올리고

꿈으로 얼룩진 바짓단을 털었네.



환상(인생의 멈춤, 언덕 위의 삶)속의 삶에서 당신은 날고 싶어서 한숨 지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인생의 시작이든, 멈춤이든, 시작점 이전이든 삶이란 순간마다, 걸음마다 가벼울 수 없는 것. 당신은 이제 다시 다독인다. 그 옛날 언덕에서 내려오게 만든 것도, 멍하니 서 있던 당신이 다시 걷도록 만드는 것도 이 바람, 결국은 당신 스스로의 다독임이 아니던가.


당신은, 너는, 그리고 나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은 우리를 웃게도 만들었다고, 우리는 결코 나약하지 않은 목소리(모처럼의 소리로 힘주어)로 말한다. 날기 위해, 실제 새는 아니었기에 탈을 썼던 우리는 이제 탈을 벗고, 헝클어진 머릿결을 정리하고, 불어오는 이 바람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꿈으로 얼룩진 바짓단을 털고 다시 걷는다.


다시 걷는 이 삶을 응원하도록, 이 노래는 너무 슬프지 않게 말한다. 다시 걷는 이 삶이 결코 가짜가 아님을, 그러나 인생의 시작 점 이전의 삶, 언덕 위의 헝클어진 머릿결의 시절도 역시 아름답게 묘사(꿈으로 얼룩진 바짓단)함으로써 꿈과 현실, 환상과 인생을 모두 인정한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의 삶과 함께 내 아이의 삶도 떠올렸다. 책을 좋아하고 공상을 많이 하는 나를 닮은 내 아들은 환상의 나라에 살고 있다. 이 아이의 갈망은 인생을 멈추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언젠가 언덕에서 내려와야 한다면 ‘나는 슬프지 않’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기를. 그리고 간혹 인생을 멈추게 되어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아갈 수 있기를.


모든 삶이 그렇게 멈추고 나아가고, 멈추다가 나아가고.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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