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고, 잘 참아내고 싶은 마음이 사랑스러운 아이
1학기 동안 책을 읽고 자신이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던 책을 작성하여 모둠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성적에 전혀 들어가지 않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몽글몽글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모둠원과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자신의 경험을 작성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한 남학생이 자기의 머리를 손으로 퍽퍽, 때리기 시작했다. 주위 친구들은 놀란 눈치였으나 처음이 아니었는지 당혹스러움을 감추는 느낌이었다. 나 역시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는 등치도 그 반에서 가장 큰 아이였고 뭐라고 욕을 중얼거리며 머리를 때렸기 때문에 무언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면 어떡하나, 겁이 났다. 그 아이 j에게 다가가서 ‘j야. 괜찮아. 이거 다른 아이들도 아직 다 못 끝냈어. 이 시간에 다 못 끝내도 돼.’하고 말했다. 그 시간 끝 무렵이라 다음 시간에 이어서 진행하자고 하고 마무리를 하는 시점이었는데 주위 친구들은 다행히도 그 아이에게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걸면서 더 이상 그 아이의 감정이 자극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2학년이 되었고 나는 2학년 담임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반 명단을 확인하는데 그 아이 j가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학생들의 됨됨이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편인데 가장 두려운 학생의 유형이 딱 j 같은 유형이다. 무언가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아이,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아이.
나는 좀 (어쩌면 조금 많이) 까다로운 편이라 작년 나에게 수업을 받았던 아이들은 내가 담임이 되자 좀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는데 유일하게 j만이 첫날, 종례 후 내게 다가와서 “선생님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라고 말했다. ‘어떡하지’하고 걱정하던 내 마음이 조금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 아이의 자해나 중얼거리며 하는 욕설이 시작되었다. 특정 시간에 (주로 목소리가 크거나 거친 말투를 쓰는 시간, 압박을 주는 화법) 더 많이 j는 반응했다. 유머의 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자극하여 집중력을 이끌어 내는 방법으로 인한 화법이었음에도 j는 이러한 화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답답해 했다.
주로
과제를 끝내려고 노력하는데 다 못 끝내서 화가 나거나,
대답을 하는 도중 본인이 어눌하게 말하여 부끄러움을 느낄 때 욕을 하는 식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이 아이를 부르면 이 아이는 본인의 문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j의 문제는 너무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잘하고 싶은 j.
학부모 상담 때 j의 어머니가 오셨고, j는 너무나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도.(안타깝게도 j의 학업성취도는 높은 편이 못 된다.) j는 그림에 재능이 있고 그래서 예술중 준비도 했는데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이게 맞는 진단명인지는 모르겠다.)에 좋지 않은 반응(아마도 자해를 했을지도.)보였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j가 나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이해가 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j를 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다 나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꾸 욕을 하며 서 있는데 불편하다는 것이다. 교실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우리 반 근처에 있는 것뿐인데 못 오게 해 달라니, 과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j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노력과 함께 j의 감정 자극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절해 주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k와 s에게 ‘너희들이 욕설을 하는 것을 우리 학급 아이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니 욕설을 하지 말고 용무 외에는 교실 근처에 오지 말라.’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다시 j가 와서 k가 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했다. 시비가 좀 붙었다고 하면서. 나는 k를 불러 j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k는 j가 자신을 때리고 멱살을 잡았다고 했다. 다시 j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왜 k가 너에게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는지 처음부터 말해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k는 j와 작년 같은 반이었다. 그리고 k를 포함한 다른 남자 아이들은 j를 은근히 조롱해왔다. k가 우리반 근처에서 욕을 할 때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이런 데에 있었던 것이다. 작년 그 일로 여러 아이들이 지도를 받았고 서로 화해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작년 지도 선생님들께 여쭤 j는 여러 아이들에게 은근하고 노골적인 조롱을 오래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년 1시간 동안 내가 본 것은 아이들의 연출된 모습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또는 순간은 진실이었을지도.)
j가 멱살을 잡은 것은 잘못이지만 j입장에서는 참기 힘든 것을 그래도 참고, 참기 위해 머리를 벽에 박았다. 그럼에도 j는 자신이 친구의 멱살을 잡았고, 자해를 했으니 반성문을 써야 하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왜 그런 공격을 하면 안 되는지, 왜 자기 자신을 해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이야기했다. 화가 많이 날 때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이 좋을지도 이야기했다. j는 ‘아 그렇네요.’하고 순하게 웃으며 잘 알겠다고 꾸벅 인사했다.
내가 불러서 내 옆 의자에 앉으라고 하면 한 쪽 다리를 구부려 그쪽 발을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려 두고 앉는다.
‘j야 이렇게 앉으면 안 돼. 내려놔.’
하면
‘왜요?’
하고 묻는다. 나는 j의 ‘왜요?’가 좋다. 이 아이는 ‘왜요?’하고 묻고 내가 ‘어른 앞에서는 자세를 공손히 해야 햐는 거야, 이렇게.’ 하면
‘아, 그렇네요.’
하고 배우기 때문이다. 비록 다음번에 다시 잊고 ‘왜요?’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왜요?’하고 물을 때 누군가 ‘이런 버릇 없는 것.’하고 비난할까봐 걱정이 된다. 이 아이는 그저 모르는 것일 뿐이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많은 아이. 감정 조절을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어 힘든 아이, 타인에 대한 분노를 참고 참다 해소되지 않았을 때 스스로의 머리를 박는 아이일 뿐인데.
나 역시도 편견이 많고 사실 지나치게 차갑게 굴 때도 많은 교사이지만,
j와 같이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어쩌면 아이들의 태도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태도가 아니라 능력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교사가 지도를 할 때 눈을 똑바로 바라보거나, 당연한 것을 ‘왜요’하고 묻는다거나,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고 할 때 ‘될까요?’하고 반문하거나, 삐딱하게 서 있는 것도 어쩌면 정말 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한 번쯤은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지나가며 인사를 안 하는 아이는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에 온갖 상상이 가득 차, 지나가는 사람이 잘 안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을 단정 짓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j를 조롱한 k에게도 어떤 ‘능력’이 결핍된 것일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 ‘능력’을 배우면 달라지는 것이 아직 어린 우리 중학생들의 진짜 잠재력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아주 관용적인 교사처럼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섣부른 단정을 많이 하고 지나보면 하면 안 될 행동과 오해로 상처를 많이 주었고 현재도 주고 있다. 예의 바르지 않은 태도를 가장 싫어하는 꼰대 교사 중에 하나이다. 잘못된 행동은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한번쯤 물어 보면 좋겠다. 진심으로 궁금한 마음으로, 그러나 눈치 보지도 화내지도 않고, ‘네가 모르면 가르쳐 주겠지만 너는 진심으로 대답해야 하는 거야.’하는 마음으로.
‘지금 네가 삐딱하게 서 있는 것은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의도이냐.’라는 식으로. 정말 그런 의도인 아이도 있지만 간혹은 정말 아닌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하나씩 가르쳐 주면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
사실 이런 문제에 가슴이 아프고 민감한 것은 결국 나의 아이로 인한 것일지 모른다. 나는 사회적 관계에 미숙한 아이들, 그래서 공부하듯 이것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내 아이를 통해 알았다. 이 아이들은 공부하듯 배워야 한다. 오해하기 전에, 판단하기 전에 먼저 묻고, 가르쳐 주면 내 아이처럼, 우리 반 j처럼 ‘정말 그렇네요.’ 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j의 잘하고 싶은 마음을 사랑스럽게 보고 그 아이가 겪는 문제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하루 잠깐 시간 보내는 교사에게는 가능해도 똑같이 어린 나이에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힘든 일일지 모른다. 그래도 조롱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k에게 말했다. 그리고, 불편한 행동을 보는 것이 힘들어도, 그 문제를 겪는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고 k가(그리고 곁의 친구들 모두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국영수사과 배우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행히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마음이 예쁘고 다정해 성숙하게 j를 바라봐 준다.(j가 남을 공격하는 아이가 아닌 데에다 먼저 공격당하지 않으면 공격하는 아이도 아니기에 가능할 것이다.) j를 비롯해, 올해 우리 반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참 많다. 너무나,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