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불공평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으면 그런 사실 쯤이야 숨 쉬듯 당연해진다. 그래도 가끔, 삶을 버겁게 하는 일이 생길 땐 새삼스럽게 저 사실이 비극처럼 마음을 두드린다. 나에게는 임신이 딱 그런 거였다. 아동 학대를 일삼는 부모, 신생아를 유기한 부모가 연일 등장하는 뉴스를 보며 참담함과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내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어떤 것.
나는 길다면 길고 누군가에겐 짧을 수도 있는 난임 기간을 거쳐 아이를 만났다. 그 시간 동안 자존감, 인간관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육아에 치여 평소엔 잊고 지내지만 문득문득 힘들었던 과정이 내 안에 깊숙한 자상으로 남아 울컥 솟아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눈앞의 아이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를, 엄마 만들어줘서 고마워-.”하고 이야기한다. 우리 애는 무언가 이해라도 하는 듯 빙그레 웃어준다.
지금부터 조금은 힘들고 어려웠던 내가 엄마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해볼까 한다. 나와 비슷한, 혹은 더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
일찍 결혼을 했던 우리 부부는 결혼 5년 차에 미뤄왔던 자녀 계획을 세웠다. 무언가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해야 하는 나는, 곧장 난임병원에 예약을 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때문에 월경이 불규칙해서 내 배란기를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산부인과보다는 난임병원이 임신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2020년 초 코로나가 막 시작될 무렵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기 시작한 강남의 모 병원은 집에서 가깝고, ‘난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라 다른 선택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은 첫날. 대기실 앞 계단까지 빽빽하게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며 당혹감을 느꼈다. 유명한 병원인건 알고 있었지만 저출산 시대라면서, 이렇게나 임신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고?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내 존재가 인파에 묻혀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난임병원은 모든 절차가 공장 라인처럼 딱딱 짜여져 있었다. 환자가 워낙 많아서일 것이다. 로비 접수 → 초음파실 접수 → 초음파 검사 → 진료실 앞 접수 → 진료까지. 나는 아는 분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병원에서 지정해 준 원장님께 진료를 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약이 비교적 널널한 저연차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병원마다 원장님별 전문 분야가 다르고, 유명한 분은 예약 경쟁이 전쟁 수준이더라. 난임병원을 알아보는 중에 내 글을 읽게 됐다면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가지 말고 꼬옥 사전 검색을 해보고 가길 권한다.
다행히 내게 배정된 원장님은 매우 친절하셨고 내 상황에 공감도 잘해주셨다. 원장님은 우선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검사를 권유하셨고, 나는 며칠에 걸쳐 그 검사들을 다 클리어했다. 그중 악명 높은 나팔관 조영술(양쪽 나팔관이 잘 뚫려있는지 확인하는 검사)은 무시무시한 후기를 많이 읽었다 보니 지레 겁이 났지만, 생각보다는 참을만했다. 끝나기 전에 짧고 강렬하게 “으악!” 욕이 나오는, 딱 그 정도였다.
검사 결과 내 AMH수치는 나이에 비해 높았고(다낭성 특성), 나팔관은 한쪽이 막혀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한쪽 나팔관은 뚫려 있기 때문에 자연 임신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원장님께서는 우선 배란유도제를 복용하며 타이밍을 맞춰보자고 하셨다. 나도 바로 시술을 받는 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우선은 약의 도움을 받아 자연 임신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난임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달의 어느 날. 운동을 하고 집에 오던 길에 몸이 이상하게 너무 무거웠다. 내 컨디션이 왜 안 좋을까 이유를 이래저래 찾다가 그 끝에 ‘혹시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 마트에 들러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한 나는 집에 가자마자 짐을 한 구석에 던져 놓고 테스트기부터 쓰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뭐지? 뭐가 보이는데...?’
오른쪽 선은 선명하게, 왼쪽 선은 흐릿하게.
두 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