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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Dec 10. 2021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온 국민이 IMF로 힘들던 시절 남편도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 후 다행스럽게 곧 취직이 되었다. 

그리고 일명 주재원의 낙원이라 불리던 인도네시아로 파견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다. 

한때 발리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국제면에 연일 보도되었던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이슬람 강경파가 주도하는 폭탄 테러가 도시 곳곳에서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게 치안이 불안한 나라이다. 


하지만 물가가 싸고 특히 인건비가 무척이나 싸다.

그래서 이른바 가사도우미와 운전사를 아주 저렴한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나라였다. 

주재원이 아닌 주재원 와이프들의 천국인 셈이다.


나도 그 낙원에서 시간제 가사도우미가 아닌 입주가사도우미 즉 하녀를 거느린 마님이 되었다. 

그러나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란 속담처럼 사람을 거느려 본 사람이 사람을 거느릴 줄 아는 법인가 보다. 


당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집에 들어앉아 누군가에게 가사일을 시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맞벌이를 하며 다 감당했던 일이었다. 

평소 왕비과보다는 무수리과에 가까워서 그런가. 

사람이 사람을 부린다는 자체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민망함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가사도우미들은 열대지방에 사는 관계로 갈색 피부를 가졌다. 

내 눈에는 가무잡잡한 그들이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그들은 자기들보다 하얀 나의 피부를 부러워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높은 경제적인 위상과 한류 열풍으로 우리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우리 문화를 동경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서구문화를 동경하고 서구인에게 호의를 가졌던 것처럼 ....


스페인에서 그들보다 못 사는 후진국 출신으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었던 내가 이제 그 반대 입장이 된 것이다. 

국력과 더불어 지위가 달라진 것이다. 

새삼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부흥의 기틀을 마련했던 한 지도자의 혜안과 업적에 그 공과를 떠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시사철 40도가 넘는 열대기후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조금만 일해도 금방 지쳤다. 

가사도우미의 도움이 없으면 아마 큰 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덕분에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경제력을 바탕으로 우아한 한국인 뇨냐들이 ( 우리나라의 사모님에 해당하는 인도네시아 말) 너무도 자연스럽게 갑질을 하는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었다. 

역지사지의 심정에서 일까. 

씁쓸함을 넘어서 그 천박함에 역겨움이 느껴졌다면 나 혼자 고상한 척하는 것일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을 가진 한 고귀한 인격체이다.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로 돈을 벌기 위해 낯선 외국인 가정에 상주하며 노동력을 팔아야 할 뿐이다. 


우리나라도 일제 식민 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인도네시아보다 더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차별과 편견 속에 밑바닥 인생을 살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서독에 광부로 나가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막장 갱도에서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캐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전문적인 의료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진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이 시체를 닦고 피고름이 묻은 세탁물을 빠는 등 힘들고 단순한 허드렛일을 하며 푸대접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가 기피하는 고되고 위험한 일을 대신한지 오래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이 원활하지 않은 관계로 농촌에서 일손이 모자라 제때에 파종을 못해 채소 공급량이 원활하지 않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다.

그만큼 우리의 밥상물가를 안정화하는데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편견과 차별 속에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던 어렵고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들도 아마 그 나라에서 인정받는 똘똘하고 선구자적인 도전정신을 가진 전도유망한 청년일지 모른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따듯한 눈길과 함께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네 보면 어떨까? 

그 따듯한 말 한마디가 그들의 고달픈 삶에 큰 위로가 될 것이며 우리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게 할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꼭 외교관이 아니어도 우리나라의 이미지와 위상을 높이는 자랑스러운 민간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 mifanbima, 출처 Unsplash



© hugomatgom,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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