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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Dec 17. 2021

스페인의  친절하고 따듯한 사람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크게 잃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란 말은  원스턴 처칠의 어록  중 하나를 원용한 것이다.  

백세시대를 바라보는 고령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새겨둘 만한 명언이다.  

 

큰 애가 10살 작은 애가 6살이던 때  나는  오래도록 기침감기를 앓았다. 

그러다 급기야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체력이 떨어질 때  호흡이 곤란해지는 천식이란 지병을 얻게 되었다.

이런 지병이 있는 상태에서  나는  가족과  함께  스페인 살이를 시작했다.  

스페인에 온 지 세 달이 지난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이삿짐을 풀면서  무리를 했는지  천식 발작이 일어났다.  

당시  남편은  초기 공장을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때부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겨우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재우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도 여전히 퇴근은 늦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하긴 남편이 온들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었으랴. 

말도 안 통하는 데다  병원이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한참을 혼자 견디다  나는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이웃집에는 60대의 노부부가  미혼인 딸 하나와 살고 있었다.   

딸의 이름은 마리사였고  우리 아이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는 과외 선생님이기도 했다.  

문을 두드리자  곧  마리사의 어머니가 나오셨다. 

나의 상태를 보시고 마리사를 불렀다.  

마리사는  곧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갔다.   

나와 마리사가 병원으로 가는 동안  집에 남은  아이들은 마리사의 어머니가 돌보아 주셨다. 


마리사  덕분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건장한 남자 조무사가  휠체어를 갖고 나왔다. 

그리고 휠체어에 나를 태웠다.  

미드(미국 드라마의 줄임말)에나  나오는 주인공처럼 휠체어를 타고 나는 그렇게 병원 침상으로 안내되었다.  


침대에 누우니  곧바로 산소 호흡기를  끼워주고   천식 발작을 멈추는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스페인의 응급실은 정신없이 바쁜  우리나라와  사뭇 달랐다.  

침상마다  칸막이 커튼이 설치되어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런 시설이 도입되지 않았다.

( 참고로 필자는 1998 년 ~2000 년 사이 스페인에  거주함)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수납부터 요구하는 우리의 시스템과 달리  환자 치료가 우선인  의료체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료비가 모두 무료였다. 

그만큼 세금을 냈겠지만  복지는 확실했다. 

그리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도 달랐다. 

내 상태에 대해 아마  전문의와 인턴이나 레지던트였을  세 사람이  번갈아  진찰을 했다. 

그리고  서로 한참을 논의를 한 뒤 처방을 내렸다. 

 

현재  우리나라도  좋은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그 당시는  스페인만큼  질 좋은  공공의료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던 때다.  

내 눈에는 모든 게 경이로울 뿐이었다.  

게다가 비토리아는  스페인에서도 소도시에 해당된다. 

스페인은  그런  소도시에도  당시  우리나라의 대도시에 있는  대학 병원 못지않은  시설과 의료인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평등하게 의료혜택을 주는  의료복지국가였다.


스페인의 의료체계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증상이 호전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깨지 않고 잘 자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인가 보다.  

잠잘 시간이라  염치없지만 이웃집 문을 두드릴 생각을 한건  잘한 일 같다.  

 

만일  그날   이웃집의 문이 열리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자기 일처럼  기꺼이 도움을  준   마리사 가족  덕분에 나는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자기 가족처럼 친절하고 따듯하게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들.  

그들로 인해 나의 스페인 살이는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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