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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Dec 21. 2021

카르페 디엠, 오늘을  소중히 여기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면 매우 당황스러운 일일것이다.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1998년  6월의 어느날이었던 것같다. 큰 애가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 갔더니 맹장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아이의  수술은 잘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한번 스페인의 훌륭한

의료체계에 탄복하게  되었다.

수술을 마친 아들이 입원한 병실은 일인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우리나라에서  일인실은 병실료가 비쌌다.  그래서  보통 서민들은  6인실에 입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의료복지가 잘 되어 있어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세금을 내면 모든  의료비가 무료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  혼자  1인실을 쓰는 것이  황송하고 부담스러웠다.  참고로 부연설명을 하자면 스페인은  1 인실  입원이 원칙이었다.  다른 질병에 감염될 위험이 적은 성인의  경우 아주 드물게 2 인실에 배정되었다.

 게다가 1 인실의  크기가   당시 우리나라라면 

 3 명이  입원해도 될  정도로 넓고 쾌적했다.  그런데   병실에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있는 보호자용  침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가 회복할 때까지  내가 옆에서 돌보아야 할텐데  침상이 없는걸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분홍색  가운을 입은 사람좋게 생긴 간호사가 수시로 드나들면서  아이에게 필요한  식사부터  몸씻기까지  모든 것을   돌보는 것이었다.

  사실 보호자가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한참 아이 돌보기를  마친 간호사는  침대옆에  부착된 호출벨에 대한  설명을 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간호사를  부를 수  있는 벨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집에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가도 된다는 간호사의 말을 들으니 더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스페인은  전문성을 지닌 간호  전담  간호사가  병실에 배치되어 환자를 돌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보호자나  간병인이 따로 병실에  상주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병실에 보호자를 위한  간이 침상같은 편의시설이  구비되어 있지않았던 것이다. 

당황하기는 스페인 간호사도 마찬가지였을것이다. 보통 환자 가족이 환자의 예후를 살피고 바로 돌아가는  것이  상식인데  내가 병실에  계속 있으니 부담되었을 것이다.   간호전담제도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생소한  제도였다. 그러니  보호자가 아닌  간호사가 환자를 다 캐어할거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

 모든 것이  우리와 다른 의료체계에 대한 정보 부족과 의사 소통이  안되어 일어난 해프닝이다.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부담되고 나는 나대로 편의시설 일체없는 병실에서 의자  하나에 기대어 날밤을 세웠던 것이다.  사서 고생을 한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년전부터 고령  환자를 돌보는 병동부터 간호전담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간호전담제도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병원에 확대되고 정착되는 추세에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세계를 강타한  가운데 마스크 착용을 꺼려하는  문화 때문에  스페인에서도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초기  사망률도 높았다.  그러나 잘 구비된 공공 의료체계 덕에 치명률이  낮아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적어도 중증환자를 위한 병상 부족으로 인한 인명손실은 발생하지 않았다니 과히 의료천국이란 말이 무색하지않다.

뉴 밀레니엄을 맞으며 온 세계가 새 천년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떠들석하게 축제를 벌이던 20세기의  마지막 밤.  그  밤에  나는  병실에서  스페인이  의료복지국가임을   다시 한번 체험하고 있었다.  

 IMF  여파로 남편의 회사가 결국 워크아웃 되어 남편은  명예  퇴직을  해야했다.   이역만리에서 남편이 직장을 잃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천식이  심해진 나는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병실은 쾌적하고 의사와 간호사는 정성껏 나를 치료해주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물론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집에 두고 크리스마스와 재야의 밤을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현실 때문에 나는  몹시 울적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포도를 먹는 풍습이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날  밤  바야흐로 새  천년을 맞이하는 바로 전 날 밤.  나는 병원에서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영양이 풍부한 질 좋은 식사가 제공되었는데 그 날은 이른바 특식이 나왔다. 마치 호텔 레스토랑에서  쉐프가 요리한 거 같은  보기도 예쁘고 맛도 좋은  고급진  요리가  제공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축제를 즐기는 날.  병마와 씨름하는 환자를 고려한 특식이었다.  그리고 간호사는 후식으로  한송이의 포도를 주었다.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포도를 깨물어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행운이 올 것이며 건강하게  퇴원하라는 것이었다.

병원에서의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만찬은 나의  우울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날려버렸다.  그래  다시 시작하면 된다. 좋은 일이 생길거야. 

Seize  the  day!  (오늘을  즐겨라)

Carpe diem! (오늘을 소중히 하라)

출처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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