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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Dec 25. 2021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아치형 조명으로 장식된 거리의 모습.  출처 인터넷.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불록이란 티브이 프로에서  모 유명 백화점  전면을  조명으로 장식하는 전문가를 초대한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말연시에 손님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백화점계는 각각 특색 있는 홍보전략을 펼친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이 건물 장식이며 이는 곧바로 매출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볼거리를 연출하고자 고심을 한다고 한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초대된  감독도  연말연시 시즌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하고 제작하는데 1년을 소비한다고 한다.

 올해 그 감독이 연출한  백화점의 전면을 수놓은 데코레이션을 보고 있자니  황홀한 마법의 세계에 빠져든 느낌이 들었다.

눈에 담겨오는 다채로운 빛의 향연으로부터 도저히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 마법의 세계에서 즐겁고 기쁜 일만 마주하게 될 거 같은 설렘과 기대에 부풀게  했다.

또한 이런 멋진 작품을 연출한  그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런 감탄은 무의식 중에 쇼핑 충동을 자극할 것이다.


1998년 스페인의 작은 도시에서 우리 가족은 이국적인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었다.

가톨릭을 국교로 하는 나라답게 12 월초부터 거리는 예쁘고 화려한 형형색색의 등불 빛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평소  오후 8시가 되면 상점의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지고 가로등만 비치던 어두컴컴한 거리들이 성탄시즌이 되면 따듯하고 활기차게 변한다.

 12 월초부터 1 월까지  거리 곳곳에 설치된 아치형 조명 장식들이  밤새 꺼지지 않고  반짝거리며 도시를 따듯하게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8층 건물이었고 우리 집은  5층이었다.

아치 장식은 우리 아파트 건물과 건너편 건물의 2~3층을 연결하여 연중 내내  상시 설치되어있다.

그리고  성탄절과  연말연시  시즌이 다가오는 12 월초부터 그 아치에 불이 밝혀진다.

그 아치 장식에서 반짝반짝 수시로 바뀌는 조명의 빛깔을 바라보면 행복하고 낭만적인 기분에 젖어들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렇게 거리를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밝히는 한편 성당이나 관공서와  학교나 백화점 한가운데  작은 코너를 만들어  예수님이 탄생한 당시 마구간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주로 도자기로 만든 작은 인형과 모형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안겨있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양치기 목동들과 동방박사를  표현하고 있다.

예쁘게 만들어진 미니어처를  보는 경험은 참으로 이국적이고 신기한 것이었다.


이렇게 성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나 풍습은 생활 속에 잘 녹아져 들어가   아름다운 문화로 표현된 것과 달리  정작 고색창연하게 아름다운  성당에서 드려지는  성탄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참석한 신도의 대부분은 60 대 이상 고령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많은 스페인의 청춘남녀들 젊은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류를 구원하고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구원자 예수님의 정신을 기려야 할 그분의 생일날은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춤추며 쾌락을 즐기는 한날로 변질되었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인 성일이라기보다  소비 풍조를 진작시켜 흥청망청  쇼핑하고 먹고 마시고 쾌락을 추구하며 소비를 조장하는 상업적인  매출 증대의 도구이기도 했다.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우리나라도 7~80 년대  고도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상업성을 띤 크리스마스 문화가 들어와  연말연시를 흥청망청한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하게 보냈다.

거리의 상점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여 쇼윈도에 진열하고 경쟁하듯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 댔다.

서울 명동의 유명 백화점과 주변이 예쁜 조명으로 밝혀지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러 많은 인파가 몰렸고 그것은  백화점과 인근 상가나 식당의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속칭 크리스마스 베이비란 말이 성행할 정도로 한때 세속적인 쾌락의  후유증이 남았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IMF를 겪으면서부터  이런 들뜬 분위기는 사라지고 차분한  성탄절이 우리나라에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는 경기가 예전만큼 좋지 않음을 반영하기도 한다.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 19의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더더욱 침체된 분위기다.


20 년 전 당시 스페인도  흥청망청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당시 우리나라 같으면 한두 명의 비틀거리는  취객을 만날 법도 한데  다채로운 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tm스페인 거리는 의외로 조용했다. 

그야말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경기 침체가 원인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가족 중심으로 고요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인지...

그것은 2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살아서  그 사회의 깊숙한 면을 모르는 이방인의 표면적인 관찰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독교 문화가 생활 속에 깊숙이 박혀 있어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성탄을 축하하지만 종교적으로 기독교를  신봉하는 인구는 별로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의 정신을 기리고 행하고자 하는 신앙인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종교문화만 남아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즐겁고 행복한 성탄이 되길 바라며   카드를 만들어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설렘과 기대에 차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기억은 상업적인 세뇌의 결과였는지 모른다. 

기다리던 그날 영화 속 크리스마스처럼  흐뭇하고 감동적이며 낭만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고 지루한 날이었다.

설렘과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실감도 컸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 외치는 행복에 대한 기원 또한  상업적으로  길들여진 또  다른 욕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천 년 전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라는 귀한 생명을 맞이한 기쁨의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자기가 아닌 또 다른 왕의 존재를 용납할 수없던 헤롯왕의 시기와 질투와 살의를 피해 아기 예수와 그 부모는 애굽을 향하여  떠나야 했다,

호적등록을 하러 만삭의 몸으로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그 기나긴 여정의 노독을 풀기도 전에 또 길을 나서야 했다.

이처럼 이천 년 전 그 성탄의 밤은  살의 가득한 가혹한 밤이었다.

낭만적인  환상으로 가득한 밤이 아니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평강의 왕 예수님이 주고 싶었던 평화의 정신 또한 오늘날 상업적으로  세속적으로  박제된 크리스마스 틀을  깨기  힘든 듯하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평하라는 가르침이  행함으로 나타나 진정으로 평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지는 날이 진정한 성탄절이 될 것이다.

그날을  어린 시절 카드를 그리던 그때의 소망과 설렘으로 기대해본다

성탄절 아기 예수가 탄생한 마구간의 모습을 재현한 미니어처. 출처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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