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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Dec 28. 2021

미혼모 이야기

"싱글즈"는 2003년에 개봉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4명의 청춘남녀의 연애 및 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자유연애주의자인 동미는  정준이라는 친구와  셰어 하우스라는  이른바 집을 나누어 쓴다는 개념으로   한 집에서 생활을 한다.


동미에게  정준은  남사친이며 정준에게 동미는 여사친이다.

남사친은 남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이며 여사친은 여자 사람 친구의 준말이다.

 즉 남사친이나 여사친이란 말은 남녀 사이에도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의 우정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음을 담고 있는 용어이다. 

동미와 정준에게 또 다른 여사친 나난이란 인물이 있다.


이들 세 사람은   동미와 정준의 셰어 하우스에 모여 서로의 연애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심지어  자유연애주의자인 동미는   남사친인 정준과 공동생활을 하는 집으로 남자 친구를 불러들여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의 연애 행각을  모두 알고 있는 정준과 동미가  술 취한 상태에서  어느 날 잠자리를 같이 하는 돌발사건이 발생한다.  

그날 잠자리를 한  후 동미는 정준의 아이를 갖게 된다.

결혼을 목표로 서로 사귀던 사이도 아니고  서로가 순수한  우정관계임을 공언하던  차에  실수로  임신하게 된 상황이므로 동미는 정준에게 자신이  정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을 못 한다.

낙태를 결심하고 산부인과를 찾은 동미에게 의사는  낙태할 경우 이후 불임이 될 수도 있다는 선고를 한다.

동미는 정준의 아이도 아니고 자신의 아이라며 미혼모가 되더라도 아이를 낳기로 한다.

그런  동미 옆에서 나난이  경제적인 후원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동미와 동미의 아이를 지키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나난은 자신의 남자 친구의 청혼까지 거절한다.


대략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보수적인 성향의 가치관에서 보면 이 영화의 연애 및 결혼관은  여전히  발칙하고 당돌하며 위험하다.

동성이 아닌  이성들이  셰어하우스라는 우리 문화에서 낯선 주거형태에서 살고 있다는 자체가 실험적이며 비현실적이다.


유교 문화권인 우리 사회에서 성윤리나 성문화는  여성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성을 내쫓아도 된다는 공자의  가르침은 여성들을  한 개인으로서의 자아실현의 존재가 아닌 가문의 대를 이어주는 씨받이에 불과한  대상으로 바라본다. 


혼전에 순결을 잃은 여성들은 인생의 실패자란  낙인이 찍힌 채   가까운 혈연이나 사회로부터  편견과 냉대의 대상이 되어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평생을 움츠려 지내야 했다.


결혼 적령기란 개념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여성들을 억압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혼기를 놓친 여성은 노처녀 소리를 들으며 적당한 혼처가 없을 경우   친정부모님의  경제 사회적인 부담이 되어 얹혀살던지  그러지 않으려면  재취 자리도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처럼 골드미스라 자처하며 결혼에 목매지 않고도  자신의 일을 하며 당당하게 솔로의 삶을 즐길 수 있는 때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아직도 우리 사회에 당당한 골드미스는 그리 많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유교적인 가치관과 서구의 개방적인 가치관이 혼재된 가운데 여성들에게 더 가혹한  성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만연하다. 

그런 성의식에 반기라도 들듯 이 영화는  동미라는 한 여주인공을 통해 개방적인 성문화와 자유 연애주의를 표방하며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성문화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영화는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으며 당당한 미혼모가 되려는 쿨한  자유연애주의자인 동미와   동미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나난이란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당면하게 될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인 미혼모 문제를  코믹하고 밝게 드러내 보인다.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영화의 끝장면의  설정이 역설적이다.

이 역설은  영화 밖의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영화처럼 따듯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나난의 대사는 섣부르게 자유연애를 부르짖다 진정한 사랑도 찾지 못하고 결국은 안정된 결혼에도 도달하지 못 한 미혼모의 삶이 험난한  여정임을   암시한다.

 미혼모의 냉혹한 현실을 대변한다.

 실패한 연애를  오롯이 동미와 나난  두 여성이 책임지는 모습  또한  엄정한 현실을 말해준다.


최근 우리나라도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 중의 하나인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그들을 배려하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20 대 전 후에  어린  임산부들이  가족과 사회의 냉대 속에서  화장실이나  사회적인 보호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출산 한 뒤 영아를  유기하는 범죄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축복받지 못한 임신의 공포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모르는 미혼모들을 영화처럼 따듯하게 받아주고 돌보아주는 제도가 우리 사회엔  필요하다.

 미혼모를 위한 쉼터가 있고 그들의 자녀를 위한 입양제도가 있긴 하다. 

그러나 미혼모가 자신의 자녀를 직접 키우며 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테스라는 서양 소설에서 첫날밤 혼전 순결을 잃은 사실을 고백한 여 주인공은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다.

중세 봉건시대 때 영주는 초야권이란 비인권적인 제도로 농노들을  억압하고 지배했다.

이처럼 서구의 성문화도 역사적으로 여성에게 결코

관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 세기에 들어서면서  선진국에서부터  여성의 지위와 인권이 존중되면서 양성평등문화가 정착되고  미혼모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그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제도가 발전되어 왔다.


20년 전 우리 가족이  둥지를 틀었던 스페인  또한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지 않고 자신이 키울 수 있도록 미혼모 수당이나 의료비 및 교육비등의 지원이   잘 되어있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냉대보다 미혼모가 겪었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담 프로그램과  자녀를 위한 양육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저출산으로 인해 2070 년에는 우리나라의 인구가 3700 만으로 감소될  거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왔다.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 못지않게 미혼모  방지를 위한 올바른 성문화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불가피할 경우  미혼모를 보호하고 돌보는 정책 또한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영화 싱글즈의  포스터.  고인이 된 장진영씨와 김주혁 씨가 젊은 모습 그대로 웃고 있다.  출처 인터넷.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이 모두 사랑과 축복 속에서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사회적인 따듯한 안전망이 구축된 선진 사회를 꾸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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