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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Jan 02. 2022

 꼭 국제학교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IMF로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그때 우리 가족은 유럽의 낯선 나라 스페인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IMF  정국이 아니었다면 가족과 함께 유럽 주재원으로 나간다는 것은 샐러리맨  최고의 로망이자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할 때였다. 게다가 기업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주재원에게 제공되는  주거비와 교육비 그리고 차량지원비 마저 삭감되었다.  주재원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이 없어진  것이다.  한국에  남아 계시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보내고 나면  생활하기에 정말 빠듯했다. 


IMF로  교육비를 지원할 수 없던  회사의 방침은   로컬  스쿨  즉 학비가 무료인 스페인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영어 구사력의 유무는 사회적인  지위와 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따라서 이를 뼈저리게  알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선  자녀를  국제 학교에  보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게다가  영어로 인해 설움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그 설움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와 아이들은 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두 달 늦게 비토리아에  도착했다.   스페인에 먼저 도착한  다른 주재원들의 자녀는  자비로  국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역시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교육비  외에 또 다른 여러 문제가 있었다.  회사가 있는 비토리아에 국제학교가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로 1시간 반 걸리는 곳에 위치한 빌바오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학교 수업이 오전 8시에 시작되므로 학교에 가기 위해 아이들이 적어도 5시에 일어나야 했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다. 다른 가족들은 밴을 빌려 카풀을 하고  차비를 명수대로  나누어서   내고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국제학교에 유치원 과정이 없는 것이다. 유치원생인 딸과  초등생인 아들을  따로 다른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엄마인 나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하루에 8~9시간 정도  늘어지게  잠을 자고  실컷 놀아야 한다는 게 평소 나의 지론이다.  비싼 학비뿐 아니라  길에서 3시간을  허비하고 차에서  시달리며  얻을  수  있는 득과  실을  따져보고 또 따져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꿈에 그리던 유럽에 와서  돈이 없어  여행을  못 한다면 두고두고 평생을 후회할 거 같았다. 우리 부부는 국제학교 대신  아이들에게 견문을 넓혀 줄  여행을 선택했다. 


스페인어와  영어는  비슷한  어휘와  문법구조를 가진 인도 유럽피언이라는 어족에  속한  언어이다.  따라서 스페인어라는  언어구조에  익숙해지면  같은 언어 계열인  영어뿐 아니라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등 유럽의 각종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또한 스페인어는  멕시코와 중남미라는 폭넓은 지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 의존도가  높아 영어가 가장 중요한 외국어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장이 다변화되면 스페인어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우리 부부는 고심 끝에  아이들을  유치원이 병설된 스페인 공립초등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스페인어 과외 선생님을 구했다.     


일조량이 많아  '태양의 나라' 라 불리는  스페인은 많은  유럽인이 선호하는 관광지이자 휴양지이다. 그래서  많은 유럽인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 온  영어 원어민 교사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다.   


국제 학교 대신 그에 버금가는 영어 환경에 아이들을  노출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영어학습 기초단계에선  현지인  스페인 영어교사를  통해  영어를 가르쳤다. 원어민이 아닌  외국어로 영어를 말하는 발음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전 세계인이   국제어로 사용하는  각양각색의  영어에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단계를 벗어났을 때  아일랜드  줄 신의 영어 원어민 교사를  구했다.  또한 중국어 원어민 교사를 구해 중국  공용어인 만다린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당시  비토리아에서  중국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 언어를 넘어 다중 언어 구사력을  갖출 수 있는  스페인의 언어 환경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학교만큼 좋은 커뮤니티는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스페인 친구를 사귀면서  스페인 현지사회의 깊숙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아이들을 통해 스페인의  교육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서울 가는 길은  여러 가지 경로가 있다. 영어학습에도  왕도는 없다.  꼭 국제학교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비싼 학비를 절약하여  유럽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혔다.  또한  스페인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를  배울 기회를 가지면서 아이들은  그만큼 세계화가 되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딸 반 학생들과 그들을 맞이하러 나온 학부모들과 찍은 사진

비토리아 지방 수호성인을 기리는 가톨릭 축제를 즐기러 분장 한 학생들

축제를 위해 분장한 딸 반 아이들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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