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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Nov 16. 2021

열등한 문화도 우수한 문화도 없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아버지께서 할부로 구입하신 한국문학전집이 있었다. 

당시 전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젊은 지식인들의 고뇌와 좌절을 주제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염상섭 선생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그 작품 속에 김창억이란 인물이 원두막 같은 것을 얼기설기 지어놓고 이층 집을 지었다며 자조하는 대목이 있다. 

그 부분에 공감이 되었던 나는 

"우리 조상들은 왜 서양인처럼 이층 집 삼층집을 못 지은 걸까 "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주거문화에 대해 막연한 열등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열등의식은 청소년기에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과 사대주의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어느 문화나 그 나라 풍토에 맞게 형성된 것이므로 그 우열을 논하는 것은 편협되고 모순된 것이다'라는 나름 주체적인 문화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스페인에 와서 이국적인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내가 살던 곳은 인구 이만이 사는 소도시였다. 

구시가지에는 이백 년이나 삼백 년 이상 된 삼층 이상의 돌로 지어진 집이 잘 보존되고 수리되어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또한 수백 년 전에 지어진 성당도 잘 보존되어 여전히 미사가 이루어지고 관광객에게도 개방되고 있었다.

한편 모던하게 세련미 넘친 현대적인 건물들도 옛 건축물들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산업화와 도시화와 더불어 옛날 한옥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무분별하게 파괴되어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옛 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스페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하에 깨끗하고 아름답게 국토를 가꾸고 있었다. 

개발이란 이름하에 산에 나무가 베어지고 산등성이가 마구 깎여나가 벌건 속살이 드러나고 토사가 여기저기 흘러내린 어지러운 난개발의 모습은 잘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페인의 잘 보존된 구시가지의 작은 돌멩이로 잘 포장된 앤티크 한 거리를 걸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 가졌던 의문들이 되살아났다.

"왜 우리나라는 이층으로 된 벽돌집을 못 지었을까.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석조는 아니더라도 목조라도 이층 집을 짓기도 했는데...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러다 어느 날 깨달음이 왔다.

우리나라에 이층 집이 없었던 이유는 전 세계에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난방방식인 온돌 문화 때문이었다. 


온돌이란 방바닥에 큰 돌들을 간격을 좁게 하여 띄워 놓아 방고래라 하는 불길이 드나들 수 있는 길을 만든 뒤 그 위에 판판하고 널찍한 돌을 올려놓아 넓은 방바닥 평면을 만든다. 

그 위에 진흙을 되직하게 반죽하여 흙을 발라 평면을 만들고 종이를 붙여 완성하는 방바닥이다. 

이렇게 방바닥 밑에 놓인 큰 돌들을 구들이라 부르는데 이 구들이 부엌의 아궁이와 연결되고 아궁이에 화목을 넣어 불을 지피면 불의 열기가 방고레라고 하는 구들 돌 사이사이로 들어가 구들 돌을 뜨겁게 달구게 된다. 

그리고 뜨겁게 달구어진 구들돌의 열기가 방바닥에 전해지고 난방이 되어 따듯하게 방바닥에 누워 잠을 잘 수 있다. 이 독특한 난방 구조 때문에 이층 집을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왜 온돌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요리도 하고 난로나 화덕보다 효율적인 난방 시스템인 온돌. 

왜 따라 하지 않았을까.

아마 유목민이 많기도 했고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이 있어서 그랬을 거라 추정해 본다. 

한반도에 지진이 자주 있었다면 아마 온돌문화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을 때 지진이 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을 것이다.


국토의 70 % 가 산지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는 계곡과 강에 널려있는 게 돌이다. 

또한 여름 장마철에 산에서 씻겨내려온 진흙과 나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런 돌과 나무와 황토 흙을 이용하여 온돌 아궁이와 황토벽을 가진 한옥을 탄생시킨 것이다. 


우리보다 더 습한 일본은 한여름 우기에 뽀송뽀송하고 겨울에는 돌처럼 아주 차갑지 않은 다다미 위에 이불을 깔고 덮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발에 대고 자면서 추위를 이겼을 것이다. 

중국인은 서양 사람들처럼 침대를 사용해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피했을 것이다.

반면 한국인은 따듯한 온돌방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발을 녹일 수 있었으니 굳이 침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따듯한 방바닥에 누워서 몸을 지지면 그만이었다


겨울에 돌집 방바닥이 차가우므로 스페인 사람은 신발을 신은 채로 방에 들어가 침대 위에 걸터앉았을 것이다. 

그 집에선 추워서 방바닥에 누워서 잘 수 없었을 것이므로 침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바닥에 깔 수 있는 동물의 털가죽이나 양탄자를 추위를 막기 위한 도구로 제작했을 것이다.


인류는 각기 다른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각기 다른 자연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재료들을 사용하여 자기들만의 독특한 지혜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더 우수한 문화도 열등한 문화도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길바닥 닦는 청소차. 

20 년 전 우리나라에 아직 도입되지 않았던 물 뿌리고 비질을 하며 포장도로를 닦는 그 청소차를 스페인의 인구 이만의 작은 도시에서 보았다. 

큰길은 물론이고 작은 골목까지도 돌로 포장하고 물로 닦고 쓸어내는 깨끗한 나라. 

그곳 사람들은 쓰레기도 잘 버리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비포장도로도, 골목도 많았는데... 

우리는 청결을 모르는 민족인가... 


아니다. 

스페인 및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는 주거문화를 가진 곳에서는 신발 신고 집에 들어가려면 거리도 깨끗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흙투성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모두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살 것이다. 

길을 걷다 신발에 흙이나 먼지가 묻으면 우리 조상님들은 자기 집 대문으로 들어가 마당에서 흙이나 먼지를 털고 방 마루 밑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면 된다.



공정이 밀 농사보다 몇 배 더 까다롭고 힘든 논농사 짓느라고 바빴던 우리 조상님들은 길에다 돌까지 깔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돌로 길을 포장해도 한 여름 장마철에 폭우가 내리거나 태풍이 불어닥치면 다 휩쓸려 갈지도 모르는데 그보다 홍수에 대비하여 강둑을 쌓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지혜롭게 자연환경에 적응한 것이었다.

© paulbr75,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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