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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Nov 16. 2021

예술가의 나라, 스페인

스페인 하면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투우와 집시 그리고 정열이었다. 

역시나 그것들은 스페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친절하고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길 좋아하는 다소 수다스럽고 정열적인 사람들이었다. 

또한 피카소를 탄생시킨 예술가의 나라 이기도했다.

자연과 도시를 미술가의 마음으로 가꾼 듯 스페인의 곳곳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저마다 독특한 특색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어디를 가도 대도시는 비슷비슷한 판상형 아파트 일색이다 (요즘은 타워형 아파트가 간혹 보이지만). 

그리고 특색 없는 비슷비슷한 상가건물이 즐비하다. 

게다가 커다란 간판이 건물 전면에 다닥다닥 걸려 지저분하고 요란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 스페인은 맨 아래층이 상가이고 그 위는 가정집인 형태의 이른바 주상복합 건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상가의 간판은 간판이라기보다 예쁘고 작은 미술 소품 같았다. 

그래서 거리의 인상을 단아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구시가지에 적어도 이백 년에서 오백 년 이상 된 돌로 지어진 집들과 작은 돌멩이를 깔아 포장된 작은 골목의 길바닥도 앤티크 한 멋이 있었다. 

그런 돌집에 사는 사람들은 창문 밖에 작은 꽃 화분을 내걸고 출입문 입구 계단에도 옹기종기 화분을 내놓고 있었다. 골목 곳곳에 있는 작고 독특한 카페들. 

그 카페 앞 노천에 놓여있는 예쁜 탁자들 앞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양한 꽃들과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로 우거진 도시 곳곳에 있는 테마가 다른 공원들, 그 가운데서 솟아오르는 분수들과 벤치와 조각상들, 길가의 가로등들, 강가에 걸쳐진 다리 하나도 똑같은 모양이 없었다. 

정책적으로 건물을 비롯한 모든 소품들도 똑같은 디자인은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천편일률적인 도시 풍경만을 보던 내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피카소 같은 천재화가가 이 나라에서 나올 수밖에 없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 가족이 1년 이상 세 들어 살던 집은 풀퍼니시드 하우스로 가구가 비치된 집이었다. 

그 집의 안 주인은 화가였다. 

그래서 그녀가 그린 가족의 초상화와 풍경화가 거실 벽면에 여러 개 걸려있었다.


스페인에 도착해서 처음 몇 달간 머물렀던 집도 가구가 구비된 집이었다. 

그 집에도 역시 많은 그림이 있었다. 

특히나 안방에는 이른바 토르소라 하는 머리 부분이 없는 상체만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한밤중에 깼을 때 몸통만 그려진 그 그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그림을 떼어 장롱 선반에 올려놓았었다. 

그리고 이사 올 때 그 그림을 다시 걸어 놓는 것을 깜박 잊었다. 

그러자 그 집주인이 바로 전화를 해서 페널티를 물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주인은 그 그림을 화가인 친구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돈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의미 있는 그림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한바탕 그런 소동을 겪으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그림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아들 친구네 집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집은 벽뿐 아니라 천정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길거리가 아닌 집안에 그려진 벽화. 

그리고 성당이 아닌 일반인의 집에 그려진 천장화.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아들 친구 아버지의 직업이 화가였다. 


우리나라에선 화가란 유명하지 않으면 배고픈 직업이란 통념이 있다. 

그런데 화가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자못 놀라웠다. 

그리고 그 집을 방문한 기념으로 아들 친구 가족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 선물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화가가 되려는 아들 친구의 형이 그린 그림이었다. 


우리나라는 미술관이나 화랑에나 가야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화가가 직접 그린 고가의 작품을 집안에 소장하는 것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인듯한 통념이 있다. 


이와 달리 스페인은 평범한 대중들의 일상생활에도 미술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화가란 직업이 꽤 많은 나라. 화가란 직업을 자랑스럽게 대물림하고 싶어 하는 나라. 

집안에 복제품이라도 그림을 걸어두는 나라. 

그림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나라.

실로 예술가의 나라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jonashos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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