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가의 버드나무 Jan 13. 2022

박세리 키드 : 인생의  정답은 없다

속칭 낚시 과부와 골프 과부란 말이 있다. 


스페인에서 나는 골프 과부였다. 

공공스포츠 시설이 주민 수에 비례하여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포츠 복지국가 스페인. 

스페인 사람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공공 체육 시설에서 각종 운동을 취미활동으로 즐길 수 있었다.


골프장 또한 우리나라에 비해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운동이다.

재력을 갖춘 성공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모든 사람이 즐기기를 꿈꾸어 보는 고급스러운 취미라 할 수 있다.


그런 취미를 우리나라에서 볼링 몇 게임 칠 수 있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니 얼마나 좋겠는가.

남편을 비롯해 주재원 동료들은 골프에 빠져들었다.

그림 같은 잔디에서 공을 날리며 과중한 업무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나 또한 남편이 골프를 즐기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이 필드로 나간 사이 나와 아이들은 집에서 티브이나 보며 따분한 주말을 보내야 했다. 

날씨가 화창한 주말에 남편 없이 아이들하고 집에서 지내는 것은 처량한 일이기까지 했다. 

어쩌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매주 반복되는 일상에 대해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 일로 부부 싸움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묘안을 찾았다.

남편이 골프 하러 갈 때 가족이 다 같이 가는 것이다.


남편이 자주 가는 비토리아 시 외곽에 위치한 골프장에는 카페와 식당 및 수영장과 탁구장 등 각종 편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

수영장 둘레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줄지어 있어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선탠을 하거나 휴식할 수 있도록 선베드도 놓여 있었다.


남편이 골프를 하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수영장을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나는 카페에서 카페 꼰 레체(카페라테에 해당하는 스페인어)를 마시며 책을 읽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가끔 토르티야 빠따따(감자와 달걀과 각종 채소로 만든 스페인식 계란 요리 ) 나 코코아를 간식으로 사줄 수 있었다.

골프장이 작은 리조트라 할 수 있었다.


골프 과부로 스트레스받으며 남편과 싸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자주 골프장을 가게 되면서 그곳에 오는 스페인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특히 "요스"라고 하는 분이 우리 가족에게 호의를 보였다.

우리 딸을 "동양의 진주"라 부르며 예뻐했다.

그리고 우리 아들에게 자기 아들이 쓰던 어린이용 골프클럽을 선물로 주었다.


이렇게 해서 아들은 골프에 입문하게 되었다.

골프장에서 실시하는 레슨 프로그램에 참가시키고 어린이 골프 대회에도 참가시켰다.


그런데 단순히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을 아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였다.

아빠가 언제 골프를 하러 가나 골프 치러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또한 집 카펫 위에서 퍼팅 연습을 했다.

틈나는 대로 소파 위에 방석을 쌓아두고 한 지점을 공략하는 피칭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 가장자리 벽 주변에 공 자국이 찍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골프장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아들이 소질도 있어 보이니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키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예체능의 특기를 살리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특히 골프는 상류층이나 즐기는 운동이다.

유지 비용이 꽤 비싼 운동이다.

물론 세계적인 선수가 되면 돈방석 위에 오를 수 있는 스포츠이다.

그러나 최고가 되는 길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도 저도 안되면 백수건달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데다 소질이 있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고민이 되었다.

사실 우리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소질이 있는지를 탐색할 기회도 갖지 못한 세대이다.

좋은 학교를 나와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이 나의 20대의 목표였다.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그런데 우리 자녀 세대는 다른 것이다.

본인이 좋아한다. 

게다가 소질도 보인다.

우리가 아주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기회도 주어 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싹을 자를 수는 없는 것이다.


1998 년 5 월 한국의 낭자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의 메이저 급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해저드 연못에 빠진 공을 맨발로 멋지게 쳐올려 우승을 일구어 낸 것이다. 

위기의 순간 과감하게 맨발의 투혼을 펼쳐 골프 역사상 오래 기억에 남을 명장면을 연출하였다.

햇볕에 그을린 까만 종아리 아래 드러난 하얀 맨발.

그것은 박선수의 엄청난 연습량과 각고의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세계 언론이 주목하며 찬사를 보냈다. 

또한 이 쾌거는 IMF로 실의에 빠져있던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그때 박세리 선수의 승리를 보며 영향을 받은 세대들인 일명 박세리 키드들이 성장하여 지금 세계 골프 무대에서 한국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그때 박세리 선수의 쾌거로 우리 부부의 고민도 끝이 났다.

결과는 하늘과 본인의 노력에 맡기자.

기회라도 주어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그렇게 아들은 박세리 키드가 되었다.

재능도 있었고 노력도 했다.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숏게임을 잘하는 아들은 대회 때  멋진 버디와 이 글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정상으로 가는 길에 여러 고비가 왔다.

고등학교 때 온 슬럼프를 이기지 못한 아들은 결국 골프를 그만두었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학창 시절 학업을 등한시하고 운동에 올인하는 시스템에 있다가 운동을 그만 둘 경우 그 이후의 진로 탐색에 어려움을 겪는다.

다행히 아들은 학업을 병행하며 방과 후 활동으로 골프를 했다. 그 때문에 자기 적성에 맞는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다.


어릴 적 꿈꾸었던 일을 다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자신이 목표한 바를 다 이루는 것만이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한 분야에서 정상에 우뚝 선 사람들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겨진 노력과 인내의 수많은 시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인생길에서 최초의 목표를 올곧게 지키며 이루어내는 것 못지않게 아니다 싶을 때 진로를 바꾸는 용기 또한 중요하다.

어릴 적부터 품었던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쏟았던 노력과 열정과 흘린 땀에 대한 회한이 왜 없었겠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꿈을 향하여 최선을 다했고 또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용기를 낸 아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인생의 정답은 없는 것이다.


** 골프 용어 정리 **

-피칭: 야구나 골프 등에서 공을 치는 일.

-퍼팅: 그린 위에서 공을 홀에 넣으려고 퍼터로 공을 치는 일.

-숏게임: 그린 근처 홀컵에 공을 붙이는 것.

-해저드 : 골프 코스 안에 설치한 모래밭, 연못, 웅덩이 등의 장애물.

-버디 : 정해진 홀에 공을 넣기까지 기준 타수보다 1개 적은 타수로 공을 홀에 넣는 일.

- 이글 : 정해진 홀에 공을 넣기까지 기준 타수보다 2개 적은 타수로 공을 홀에 넣는 일.

골프에 입문하여 일명 박세리 키드 세대인 아들이 스윙하는 모습.


아들에게 골프 클럽을 선물해 준 스페인 친구와 아들이 함께 찍은 사진.








작가의 이전글 뽀꼬 아 뽀꼬(poco a poc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