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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Jan 16. 2022

영캐어러와 모플리즘

1998 년에서 2000 년까지 2년간 우리 가족은 스페인에서 살았다.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그 해외 살이 중에 우리 가족은 잦은 병치레로 인해 병원과 가깝게 지내야만 했다. 이미 천식이라는 지병을 갖고 있던 나는 수시로 응급실을 드나들었고 두 차례나 병원에 입원했다. 게다가 초등학생이던 아들도 갑자기 맹장염 수술을 받았다. 


말도 잘 통하고 모든 것이 익숙한 한국에서도 이렇게 자주 병치레를 하고 수술을 하느라 병원을 자주 드나드는 일은 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더구나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외국에서 자주 아프고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까지도 훌륭한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고 수술할 수 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스페인은 참으로 환자를 우선시하는 모든 치료비가 무료인 의료 천국이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빼고는 스페인에서의 우리 가족의 병원 체험은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영캐어러 (young carer 미성년 보호자)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자주 접한다.


한 청년의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 근로자였다. 어느 날 일하는 도중 허리를 다쳐 입원하게 되었는데 허리 수술이 잘 안 되어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아버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청소년이었던 청년이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돌보아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어머니는 이미 가출한 지 오래다. 수천만 원하는 아버지의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작은 아버지를 비롯하여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수술비는 해결했지만 그다음에 발생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청년은 일자리를 찾았지만 반듯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시급 6000여 원으로는 병원비는커녕 자신의 생계도 감당할 수 없었다. 불행히도 아버지의 나이는 65 세 이상이 아닌 50 대였으므로 나라가 정한 의료 복지 혜택 수급자도 될 수 없었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는 퇴원을 했다. 일정한 수입이 없으니 아버지와 청년의 끼니 거르기는 다반사가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아들은 울면서 아버지가 누워계신 방에 며칠을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들은 살인 혐의로 수감되어 재판 중이다.


한국은 선진국만이 가입할 수 있다는 OECD 회원국이다. 영케어러의 문제는 G10에서 G7 국가로 진입했다며 자축하며 자부심을 가졌던 한국의 어두운 현실이다.


최근 탈모 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공약이 나오면서 2030 청년들 사이에서 그 이슈로 떠들썩하다. 더불어 임플란트 시술도 지원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이를 모플리즘 이른바 모발과 임플란트 시술에 대한 포플리즘이라는 뜻의 신조어가 나오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이런저런 공약이 나오고 그것이 이슈가 되어 활발하게 논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반면 우리 사회에 어두운 면을 대변하는 영케어러 즉 어린 가장들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은 신문 사회면이나 방송에서 잠시 다루어지다 사라진다.

정작 이슈화되어야 할 것이 주제화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진정한 복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20년 전 살았던 스페인은 그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병든 거주민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그 나라에서 치과 시술은 복지 혜택을 주지 않았다. 모든 거주민이 자비로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의료 복지 시스템은 외국인이었던 우리 아들의 맹장염 치료를 정성껏 해주었다. 맹장수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복막염 등의 더 큰 합병증을 유발하여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중한 병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비가 무료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점심 급식비는 수혜자 각자가 부담했다. 학생 자신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도 자비로 구입했다. 즉 스페인은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확고한 기준을 갖고 확실하고 과감하게 사회보장을 하며 국민 또한 이를 신뢰함으로 납세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청년의 아버지가 스페인에 있었다면 65세라는 연령의 제한 없이 또한 병원비 걱정 없이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병원 및 재활치료를 하는 동안 근로자를 위한 실업 급여의 혜택을 받으며 오로지 질병 회복을 위한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청소년이었을 그 청년은 그를 캐어하는 각종 복지 혜택을 받아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한 가정에 불운하게 닥친 위기를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사회 안전망 속에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의 불행을 개인이 온전히 짊어지고 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사회복지이다.


정치란 "바르게 다스린다"라는 뜻이다.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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