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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Jan 29. 2022

스페인에서 보낸 나의 특별 휴가

영문학을 전공한 나는 20대 시절 원어민 사회인 영국이나 미국에 가서 단 6개월이라도 살아보는 게 로망이었다.


1970년대의 영어교육은 문법 위주의 교육이었다.

원어민의 발음을 접할 기회는 전무했던 시대이며 영어사전에 나오는 발음 기호를 보고 읽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문법 위주의 읽고 쓰기 교육으로 읽고 쓰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으나 듣고 말하기는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고충이 있었다.

그래서 왠지 원어민 사회에 가면 실력이 확 늘 것 같은 기대에서 미국이나 영국에 가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해외여행마저도 쉽지 않은 때였으니 해외에 나가 산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그야말로 꿈으로만 간직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공대를 나와서 영업과는 거리가 먼 분야인 연구소에서 냉장고 소음을 연구하고 있었다.

남편이 영업 분야에 종사했다면 혹시나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결혼을 통해서도 내 꿈을 이룰 기회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30 대 후반에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겼다.

비영어권이란 아쉬움은 있었지만 남편이 스페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영어권에 가서 살고 싶은 내 꿈을 완벽히 이루진 못했지만 이국적인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또한 지루해지기 시작했지만 당장 때려치우기엔 아까운 직장 일로부터 공식적으로 잠시 떠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또한 시월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를 돌보아주시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기보다 어찌 보면 각자의 다른 입장에서 볼 때 시모가 나를 모셨을지도 모르는 피차간의 인내의 시간으로부터 피차가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남편이 가끔 말했다.

자신이 나에게 휴가를 준 것이라고.....

회사에서 일하느라 같이 놀 수는 없지만 아이들하고 멋진 휴가를 보내라고 했다.

참으로 감동적인 멘트였다.

그렇게 고맙게도 나는 해외에서 휴가를 얻게 된 것이었다.


그 휴가 기간 날마다의 일상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직장을 다니느라고 늘 허겁지겁 바쁜 가운데 남편과 아이들에게 따듯한 식사도 챙겨주기 버거웠는데 여유롭게 가족의 식사를 차려 줄 수 있다는 기쁨이 있었다.

또한 남편 와이셔츠 칼라를 솔질해가며 깨끗하게 손빨래를 해서 반듯하게 다림질해 줄 수 있었고

양복바지 주름을 세워 줄 수 있었다.

또한 아이들의 점심을 집에서 챙겨주고 등하굣길을 배웅해 주고 맞이해 줄 수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의식주와 관련된 일 즉 쓸고 닦고 빨래하고 음식 준비하는 살림살이를 하며 보통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직장을 다니느라 그 보통의 일상을 즐길 여유도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스페인 살이가 즐거웠다.


외국에서 살았다고 하면 여행을 많이 했을 거라는 통념을 갖고 계시는 분이 많다.

그 통념은 맞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남편은 주재원이란 회사에 얽매인 신분이고 학령기에 들어간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했다.

한국이 아닌 스페인이란 외국에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장소의 변화만 있는 늘 같은 패턴의 삶이 지속된 것이다.


여행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여름휴가 때 그것도 일주일이라는 기간에 집을 떠난 정도였다.

그러니 외국에 산다고 해서 여행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태어나고 자랐고 부모형제와 친구가 있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산다는 자체가 큰 의미에서 여행 중인 것이다.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가는 자체도 여행이었다.

주말 점심때 스페인의 아담한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식사를 하는 순간도 여행 중이었던 것이다.

지은 지 이삼백 년 된 집들이 늘어선 구시가지의 돌로 포장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체도 여행이었다.

잠시 카페에 들러서 남편과 같이 카페 콘 레체나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가끔은 하몽과 초리소를 안주로 하여 와인을 마시던 순간도 여행을 즐기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의미의 여행 중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해외에서 날마다 여행을 한 부러움의 대상인 것이다.


글쓰기의 소재는 보통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내 글의 소재 또한 스페인에서의 2년간의 휴가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가끔 스페인 살이를 추억하며 글을 쓰면서 회의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의 경험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쓰인 글은 일반 독자들이 공감하기에 머나먼 딴 세상의 일이기도 한 한편으로 사치스러울 수 있는 자기 과시의 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은 친구가 자기가 가보지 못했던 나라의 일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러면 다행이다.


누군가에게 간접적이지만 새로운 경험이 되면 좋겠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고 남들에게 발표하는 자체가 과시이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며 행복하시면 그 또한 기쁜 일이다.

주재원 가족들과 야유회를 즐기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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