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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Jan 30. 2022

영국 탐험 1탄

부제 :스페인에서 보낸 특별 휴가 중

우리 가족이 스페인에 둥지를 틀게 된 때는 1998 년이었다.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맞아 국가부도를 내는 바람에 IMF 관리하에 있었다. 어려워진 나라살림과 더불어 기업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따라서 해외 주재원에게 제공되었던 주거비와 교육비와 차량지원비 등이 폐지되었다.


교육비를 주지 못하는 회사는 자녀들을 국제 학교 대신 학비가 무료인 현지 스페인 공립학교에 보내라는 입장이었다. 영어교육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주재원 가정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자녀들을 국제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고심 끝에 아이들을 현지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비싼 수업료를 내는 국제 학교를 택하지 않은 대신 학비를 절약한 돈으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스페인 살이는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던 나에게 준 휴가였으며 커다란 의미에서 한국을 떠나 해외여행 중인 상태와 같았다. 그러나 한국에서와 같이 남편은 직장을 다녀야 했고 학령기를 맞은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했다. 이런 쳇바퀴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스페인 살이라는 커다란 의미의 휴가 중 일상을 벗어나 실제 의미의 휴가를 보낸 첫 여행지는 영국이었다.


이제부터 커다란 의미의 해외여행 중 갖게 된 첫 번째의 실제 여행지이었던 영국 이야기를 풀어갈 참이다.


조기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정부의 정책으로 원어민 영어 교사가 우리나라 공교육 현장에 투입된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허와 실에 대해 많은 찬반 논쟁으로 우리 사회가 시끌시끌하기도 했다. 암튼 그런 영어 교육 정책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곳곳에서 원어민 교사들을 마주치는 일은 한동안 흔한 일이었다.


영문 학도이며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불혹의 나이를 지난 나는 영어 울렁증이 많이 해소되어 전철이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외국인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 배짱 좋은 아줌마가 되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지역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광범위하고도 미로 같은 전철망으로 인해 가끔 길을 잃는 외국인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내가 어찌 보면 주책일 수도 있게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가 말 걸기를 하게 된 것은 내가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산다는 일은 외로운 일이었다.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이 아니어도 누군가 말을 걸어 주지 않으면 가족 외에 얘기할 대상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맘껏 토해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 있었다. 그때 나의 서투른 말을 들어주는 인내를 발휘하며 말을 걸어 친구가 되어 주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외국 친구들에 대한 감사함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감사함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말을 걸었던 것이다.


아침 출근 시간마다 마주치게 되는 젊은 외국인이 있었다. 부천에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원어민 교사였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게 된 날 서로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 원어민 교사를 월요일 아침에 만나게 되는 날은 주말에 무엇을 하고 지냈냐는 의례적인 질문이 나온다. 그때 그 친구가 우리말로 굳이 해석하자면 서울 탐험을 했다는 "익스플로어(explore)"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 표현이 내게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 제목을 영국 탐험으로 한 이유는 그 친구가 썼던 표현이 생각나서이다.


그 친구에게 서울은 아프리카의 정글이나 북극과 같이 탐험해야 할 미지의 세계였던 것이다.

영국 또한 나와 아이들이 탐험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원시림과 같은 미지의 세계였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우리 가족의 영국 탐험기는 2탄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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