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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Feb 10. 2022

스페인의 페스까도

스페인 도시의 주된 주거형태는 주상복합 아파트이다. 그런 스페인 건물에는 0층이 있다.

0 층은 우리나라 같은 동양권에서 1층이라 불리는 공간이다.


영국에서는 이 영층을 그라운드라 부르기도 한다.

스페인에서도 엘리베이터에 그라운드의 알파벳 첫 자인 g로 층을 표시한 것을 볼 수 있다.

0 층을 지상층이라 생각하는 공통의 개념을 유럽인들이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주상복합 아파트의 지상층 즉 0층은 필로티 구조로 주차장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상권이 발달된 도심에선 이 필로티 구조에 외벽을 세워 상가로 활용된다.

지상층에 세워진 상가는 각종 생필품을 파는 가게를 비롯해 카페나 바 등 다양한 종류의 상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상가에는 우리나라처럼 요란한 대형 간판이 아니라 미술 작품이라 해도 손색없을 예쁜 디자인의 소형 간판이 걸려있다.


그 상점들 중에 이방인인 나의 눈을 끄는 가게가 있었다.

스페인어로 페스까도라 불리는 생선가게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생선 가게를 연상해보면 비린내와 더불어 깨끗한 느낌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날 최신식의 기업형 마트나 백화점의 생선코너를 가면 깨끗하게 손질되어 포장된 생선을 살 수 있다. 매대에 진열된 생선을 소비자가 고르면 손님이 볼 수 없는 매대 안쪽으로 가서 생선을 깨끗하게 손질하여 준다.  

그러나 수산물만 파는 재래식 수산 시장이나 일반 재래시장 한쪽 코너에 몰려 있는 생선가게들은 예전에 비해 깨끗해졌지만 아직도 쾌적하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생선을 파는 상인들은 지붕이 있다고 해도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열악한 노천의 환경에서 생선을 손질해서 파는 형편이다.


오늘날은 우리나라에서 생닭을 직접 파는 일은 없다.

소비자들은 닭 전문 공장에서 위생적으로 손질되어 포장된 닭을 사다 요리만 하면 된다.

그러나 70년대 당시 우리나라 재래시장에서는 생닭을 팔았다. 상자 같은 닭장에 가둔 닭을 손님이 와서 고르면 장사꾼이 그 닭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고 끓는 물에 넣어 털을 뽑아서 주었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재래시장을 갔던 나는 닭이 도살당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광경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70 년대라도 소나 돼지는 도축시설에서 도축되었다. 

소비자는 손질이 다 되어있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정육점이라 부르는 육가공 전문점에서 살 수 있었다.

만일 소나 돼지가 도축되는 장면을 본다면 그 누구도 충격적인 도살 장면이 떠올라 그것을 맛있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배려한 조치로 인해 소나 돼지는 손질이 잘 된 가공상태에서 식재료로 팔렸는지 모른다. 

다만 당시에도 우리나라에서 소나 돼지의 도축 문제는 고려했어도 닭에 대해선 그런 배려가 적용이 안 되었을 뿐이다. 오늘날도 중국이나 동남아 재래시장을 가면 생닭을 즉석에서 잡아주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되고 삶의 질이 높아짐에 따라 생명체를 식재료로 가공하는 문화도 함께 발달하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생닭을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도축하는 문화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생선가게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위생적인 것과 비위생적인 면이 여전히 혼재되어 있다.  

생선 대가리가 잘리고 내장이 쏟아지고 생선이 토막 내어지는 것을 보고도 나는 태연했다. 

닭이 식품으로 가공되는 과정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나이지만 생선에 대해선 무심하게 당연시했다. 

그러나 우리 아들은 시장에서 사 온 조기의 비늘을 긁어내고 내장을 긁어내며 손질하는 모습을 보고 우웩 소리를 내며 몸서리를 친다. 사소한 것이지만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즉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그러니 20여 년 전 스페인에서 생선이 손질되는 과정을 보여 주지 않았던 깨끗하고 아늑한 생선가게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생선가게는 사진관이나 정육점 그리고 옷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층 한 점포에 생선만 파는 전문점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가게 전면이 깨끗하게 닦인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 통유리 너머로 깨끗한 가게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생선 가게 출입문 앞에 영업시간을 알리는 안내 표지가 붙어있었다.


아브리도(open이란 뜻의 스페인어):11:00. a.m.

세라도(closed란 뜻의 스페인어 ): 8:00.p.m.


내가 생선가게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때는 3 윌쯤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약간 쌀쌀한 초봄이었다.

그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점포 안은 따듯하고 아늑했다. 

생선을 팔아서 생선가게이지 커피를 팔면 카페로 얼마든지 변신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었다.


타일로 장식된 매대 위에는 얼음이 깔려있었다. 그 위에 생선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달리 통생선이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생선의 대가리 부분뿐 아니라 뼈까지도 제거된 생선살과 토막만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횟집에서 살아있는 생선을 손질하여 생선살을 발라내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진열된 통생선을 소비자가 고르면 가게 주인이 그 생선을 칼로 탕탕 토막을 쳐서 소금을 뿌려 주는 것 을 기대하고 들어갔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또한 얼마나 큰 생선이길래 머리와 뼈 부분을 제거했어도 커다란 살덩어리로 진열되어 있는지 신기하고 놀라웠다.

생선가게 주인은 어떤 생선을 원하며 몇 마리가 아니라 몇 킬로를 사고 싶냐고 내게 물었다. 

우리나라 정육점에서 있을 법한 대화였다.


스페인에서는 물고기도 소나 돼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었다. 

생선가게 주인은 가게 문을 열기 전 그날 입고한 생선들을 요리하기 쉽게 미리 손질을 해 놓는 것이었다. 

같은 종류의 물고기라도 다른 조리법으로 조리하니 손질법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소고기처럼 깨끗이 손질된 생선 살을 필요한 양만큼 사다 요리를 한다. 

발라놓은 생선살을 사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생선가스를 해 먹는다. 

그러니 생선가게에서 미리 생선살을 넓은 포처럼 발라 내놓는 것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생선은 대구나 연어 같은 비교적 큰 생선이다. 

그 큰 생선 한 마리를 다 사가면 식구가 적은 가족은 오랫동안 그 생선을 집에 두고 먹어야 할 것이다. 

남은 생선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냉동되었던 식재료의 맛과 질은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스페인 주부들은 거의 매일 장을 보는 편이다. 

주로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다 보니 그날그날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서 조리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맛있게 요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리 문화 때문인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높았던 20년 전에도 대부분의 스페인 가정에는 우리나라처럼 커다란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식문화에 의해 생선가게에서도 큰 생선을 잘 손질하여 살을 발라 놓거나 토막을 미리 쳐놓은 상태에서 손님이 원하는 만큼 소량으로 나누어 파는 것이었다. 합리적인 생각이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생선은 비교적 작은 편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선가스보다는 조림이나 통생선구이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생선을 사고파는 풍속도가 스페인과 다른 것이다.


서로 선호하는 생선의 종류와 생선의 크기 그리고 조리법의 차이로 인해 생선을 손질하고 파는 모습에 차이가 있음을 즉 문화적 차이를 발견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다만 우리나라의 생선가게는 그리 쾌적한 분위기는 아니란 것이 마음에 남았다.

스페인의 페스까도는 냉난방시설이 되어있고 대기하는 손님을 배려한 아늑한 안락의자도 놓여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선가게는 젊은이들이 선호하지 않는 직종이라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주로 일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또한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방문했던 스페인 페스까도에는 30 대로 보이는 곱게 화장을 한 젊은 여인이 생선을 팔고 있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방수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주방장용 모자를 쓰고 작업을 하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전문적인 프로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매대 위엔 얼음에 채워진 생선뿐 아니라 저울과 작지만 예쁜 꽃화분도 놓여 있었다. 또한 영수증 주고받기를 잘 실천하기 위한 컴퓨터와 연결된 금전출납기가 놓여 있었다.


생선 가게 주인에게 생선가게는 자신이 일해야 할 직장이다.

자신의 일터를 깨끗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일은 손님을 위하는 일뿐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으며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소신 있고 자부심 가득한 직업관이 있음으로 작업장도 예술가의 눈으로 보고 가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스페인 사람들의 지혜와 철학을 나는 페스까도에서도 정육점에서도 과일 가게에서도 레스토랑의 주방에서도 많이 목격했다. 


내 관념 속에 지저분해도 용서가 되는 그런 곳마저도 관리에 대한 철학과 소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손질된 연어.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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