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아파트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공간이 있다.
바로 까마롯데라는 공간이다.
스페인어 사전에 의하면 까마롯데는 선실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선실이란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까마롯데는 아파트 입주 세대에 제공된 세대밖에 위치한 창고였다.
주차공간을 배정하듯 각 세대별로 배당된 까마롯데 출입문 앞에는 호수가 적혀있고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의 까마롯데는 아파트 꼭대기 층에 있었다. 건물의 맨 위층에 세대수만큼 창문이 없는 원룸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당장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에 아까운 물건이나 가끔씩 쓰는 물건과 잡동사니들을 이곳에 보관해 놓을 수 있었다.
어떤 아파트는 이런 서비스 공간이 건물 지하에 있기도 했다. 이 경우는 햇빛이 차단되어 늘 서늘하므로 포도주를 저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포도주 저장고의 의미를 갖는 보데가(bodega)라 불리기도 했다.
세대 밖 창고인 까마롯데가 같은 층에 있는 아파트도 있었다. 즉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같은 층에 작은 원룸 형태의 창고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 공간이 있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 공간은 창문도 없고 난방시설이 안 되어 있어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기 불편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선보이고 있는 물품보관소 같은 형태이다. 그야말로 까마롯데는 잘 쓰지 않는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이런 창고를 집안에 배치해도 될 터인데 굳이 외부에 설치한 이유가 궁금했다.
보통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은 주거 공간으로 그리 선호되지 않는 층이다. 왜냐하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맨 위층을 창고라는 서비스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지하층의 경우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므로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기 힘들다. 80년대 건축된 우리나라 아파트의 지하층은 난방이나 전기나 상수도 관련 기계설비 장치가 있거나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런 공간을 포도주가 주요 식재료인 스페인 사람들은 포도주 저장고로 활용하고 있었다. 온도 변화가 심하지 않아 포도주의 풍미를 지켜주는 훌륭한 보데가 즉 포도주 저장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사람이 살기에 불편한 공간을 창고로 지혜롭게 활용을 한 것이다
같은 층에 위치한 창고는 엘리베이터 옆에 위치했다. 엘리베이터의 소음이 나는 곳에 창고를 설치함으로써 각 세대는 엘리베이터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지는 효과가 생긴다.
이렇게 너무 덥거나 춥거나 시끄러워 주거하기에 불편한 공간에 까마롯데가 있었다. 주거공간으로 쓰기에 안 좋은 조건을 가진 외부로 수납공간을 빼냄으로써 내부 공간을 더 넓히고자 하는 공간 활용에 대한 건축 설계자의 세심한 배려로 읽힌다.
까마롯데라는 우리 문화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인해서인지 스페인 사람들은 웬만해서 물건을 잘 버리지 않았다. 아니면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그들의 가치관 때문에 까마롯데가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의 스페인 친구인 요스씨는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자기 아들이 쓰던 골프채를 우리 아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까마롯데 안에 요스씨의 아들과 딸이 쓰던 장난감이나 유모차 등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자녀의 물건을 보관하는 이유가 손자녀에게 물려줄 계획이라고 했다.
가정의 소소한 물건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그들의 민족성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되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