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가의 버드나무 Feb 16. 2022

스페인의 교장 선생님

서구에서 들어온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기까지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또한 그와 더불어 민주주의적 가치관은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의 가부장적 가치관과 많은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공자의 가르침은 조선시대의 건국이념이자 통치이념이었으므로 오백 년 동안 공고한 기반 아래 한국인의 무의식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따라서 여전히 유교의 장유유서를 존중하는 권위주의적인 꼰대 문화가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등의 전방위적인 분야에서 판을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네티즌으로부터 신상 털기의 대상이 되면 뼈도 못 추리는 상황이 되기 쉽다. 이른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 란 말이 진리가 되지 오래다. 이는 공직자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공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잣대가 참으로 엄정해졌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어 있어 자신들의 행위가 만천하에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지위와 권력을 가진 권위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부리는 갑질과 횡포에 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20년 전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당시  내가 몸담았던 직장의 상사들은  함부로 말을 걸 수도 없는 참으로 무섭고 권위적인 분들로 기억된다.   모든 직원들이 근무하는 작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워대며 여성 직원을 상대로 성희롱을  일삼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경우 불같이 호통치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그때부터 인생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20대 초반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우리 사회가 여성 및 사회적인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상당히 배려하고 존중하는 시대가 되었고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 년 전 내가 살았던 나라 스페인은 민주주의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는 나라였다. 물론 그 나라도 중세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주의가 정착되기까지 오랜 기간 계층 간 갈등이 있었고 많은 희생과 산고를 치른 결과로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것이었다.


이방인으로서 내가 가장 민주주의를 실감 나게 느낀 현장은 아이들이 다니던 스페인 공립학교였다. 학생들을 도와주고 섬기는 입장에서 친절하고 비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교사들의 모습은 참으로 신선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와 다른 이색적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스페인의 교장제도였다.


스페인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교사들이 1 년의 임기로 번갈아가며 맡는 당번제에 의해 결정된다.

당번제에 의해 일반 교사 중에서 선출된 교장은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는 수업을 담당하지 않는다.

1 년의 임기 동안 오로지 상부 교육당국에서 보내는 공문을 받아 공문대로 학교의 행정을 담당한다. 그리고 학부형을 대상으로 하는 민원업무에 주력하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사는 동안 아이들을 학비가 비싼 국제 학교가 아닌 공립 초등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 우리 부부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를 방문하였다. 

학교를 방문한 우리 부부를 처음으로 맞이한 분은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우리나라로 치면 전학 및 학부모 대면 상담 업무를 담당하신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의 인적 사항 및 스페인에 오게 된 경위 등 일반적인 상담을 하셨다. 그리고 상담을 마친 후 아이들을 소속될 반으로 직접 안내하고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소개하는 일까지 하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학생의 학부모가 특별한 사유가 없이 직접 대면해서 상담받는 일은 흔하지 않다. 교장선생님은 특별한 용무 없이는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교장은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행정적인 모든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특별한 권한도 없었고 교육 일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보직이었다.


우리 아들이 스페인 학교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같은 반 스페인 남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앞서도 밝힌 적이 있었다. 그렇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 발생했을 때도 우리 부부와 상담을 하고 그 일을 처리한 분도 교장선생님이었다. 그 당시 스페인 교장선생님은 우리 아들이 겪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거듭 사과하시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 쓰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그리고 가해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올바른 지도를 하시고 우리 아들에게 사과하게 하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하셨다. 그 후 우리 아들은 현지 스페인 친구를 사귀며 학교생활을 잘했다.


스페인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은 특별 대우를 받는 지위가 아니며 특별한 권한도 없었다. 오히려 학교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스페인 교사들은 오로지 교육 업무에만 집중하는 일반교사의 업무를 교장직 업무보다 더 선호했다. 


이와 같이 교육의 일선 현장에서 근무했던 교사들이 차례대로 당번을 맡아 교장직을 수행하므로 스페인의 교장선생님은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교육현장의 소리를 교육정책에 반영할 수 있었다. 즉 학생과 학부모 및 교사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을 직접 대면하는 교실과는 동떨어진 교장실이란 이름의 특별히 분리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나라의 교장 선생님과 직접 교실에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분 중 누가 더 교육현장의 실태를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누가 더 현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할 수 있을까?


자칫 인종차별로 비화될 수도 있었던 일을 이방인인 약한 소수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주셨던 스페인의 교장선생님은 구호나 이념이 아닌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 녹아진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 나라의 교장제도 또한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 녹아들어 가 정착된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였다. 참으로 부러운 제도였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의 체육 수업 모습.


작가의 이전글 스페인의 까마롯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