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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Apr 11. 2022

하루에 하나

언덕 위 어르신

모처럼의 화창한 날씨.

미세먼지 없고, 바람이 선선히 불며 ㅡ

푸르른 완벽한 퍼런 날씨.

좋은 날씨는 육아를 하는 나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울함을 더하기 딱 좋다.

주말에는 남편과 돌아다니며 놀기 좋은 고마운 날씨지만 평일에는 홀로 말 못 하는 아이와 집에만 있다 보면 창밖 너머의 세상에 울적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고로, 나는 아이를 메고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숨을 헥헥거리며 오르는 언덕.

정확히 언덕이라기보다는 산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들과 굽이진 숲길은 딱 산이었다.

우울할 틈 없이 힘겹게 오른 언덕. 그리고 전망대까지 오른다. 선선히 부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 품에 있던 아기도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 까륵거린다.

아기를 안고 둥기둥기하던 때, 내 등 뒤로 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ㅡ 아기 소리가 어디서 들리나 했더니, 너구나"

"안녕하세요."


어르신을 보고 나는 아기를 안은 채 깊게 인사드렸다. 검은 모자를 쓰고 계신 어르신의 웃는 얼굴의 눈가 주름이 둥글게 패인다.

그리고 정적.

바람은 쉬이쉬이 불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고요했다. 아기는 이 좋은 날씨에 버둥거리며 세상보기에 집중했다.


" 여기 사람인가요?"

"아, 아니요. 여기 내려온지는 1년이 안됩니다. 신랑 따라왔습니다."


어르신은 먼 산 너머에 시선을 옮긴다. 내가 있는 곳은 도시가 된 지 얼마 안 된 신생도시라,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타지 사람이었다. 이를 염두고 건넨 질문이었다.


"여기가 이제 도시로 불리지만, 여전히 시골이랍니다."

"네.."

"그래서 공기가 참 좋아요."

"네, 정말요. 예전에 지내던 곳은 늘 미세먼지도 나쁘고, 이런 푸른 하늘 보기가 귀했는데 ㅡ 너무 좋습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어르신은 나의 말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전에 살던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깨끗하고 가벼운 공기. 푸른 하늘. 나를 우울하게 하는 완벽한 날씨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나의 기분을 풀어주기도 하는 고마운 곳이었다.

마음이 풀린다.

아기는 내 마음을 아는지 들썩이며 옹알이를 한다.

안고 있던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조금 더 바람을 공기를 느끼기로 했다.


"여기"


어르신은 꼬깃한 천 원을 내 손에 쥐어준다.


"괜찮습니다."

"아기가 이뻐서, 그래서."

"감사합니다. 마음만, 괜찮습니다."

"아기가 이뻐서, 요구르트라도 사주세요."

" 괜찮은데."

"조심히 들어가요 ㅡ"

" 감사합니다. 어르신, 살펴가셔요."


아기는 손에 천 원을 쥐고 물끄러미 본다.

이게 무엇인지는 알까? 웃으면서 펄렁거려본다.

어르신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이른 오전. 낯선이 와의 짧은 대화와 어린 아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어르신의 뒷모습은 정겨웠다.


아기의 손에서 천 원을 거둔다.

언덕을 천천히 내려간다.

숲길 사이사이 부서지는 햇살에 걸리는 선선한 바람이. 내 마음을 간지럽힌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낯선 이의 짧고 간결한 대화가,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 찰나를. 별거 없었던 같은 그 순간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음을.

아기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순간. 그 짧은 대화에도.

 훈훈했던 먼저 내민 손길이. 너무 감사했던 천 원.


은행으로 바로 갔다.

아기의 통장에 입금했다.


언덕 위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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