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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Aug 04. 2022

하루에 하나

누구나 나를 싫어할 수 있다.

다들 안다.

내가 잘했든 못했든 ㅡ 어떤 계기가 있어서, 또는 없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직접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참 당혹스럽기도 하고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나는 소심쟁이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

밝은 척을 하면서도 내 말 행동에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두려워한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만났다.

처음에는 좋아해 주다가도 싫어하는 사람.

나를 싫어했다가도 좋아해 주는 사람.


후자의 경우는 별 신경을 안 쓰지만

전자의 경우는 무척이나 신경 쓰이고 그 이유를  나를 통해 찾으려 한다.


"그분은 왜 나를 싫어할까? 내가 그때 그렇게 말해서인가?"라고 말하면 신랑은 말한다.

"그냥 너가 싫어서야, 이유가 없어. 왜 그 이유를 너에게서 찾아?"

"내가 기억하지 못한 어느 기분 나빴던 부분이 있었던 걸까? 물어보고 사과해야 할까?"라고 하면

"너가 그렇게 생각해도 없다면, 없는 거겠지. 좋아하는데 이유 없고, 싫어하는데 이유 없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어."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걸..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고, 잘못했다면 사과하고 싶어."

"그럴만한 일이 있긴 했어"

"내가 생각하기엔 없어."

"누구나 널 싫어할 수도 있어. 그냥 안 맞는 거야. 넌 아직도 사람 관계에 있어 신경 쓸 에너지가 남아있니?"


맞다. 그 말이 맞았다.

누구나 나를 싫어할 수 있다.

이것 말고도 신경 쓸 것은 많다.

하지만, 누군가가 날 싫어하고 ㅡ 싫은 티를 낸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는 다양하다.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사람들에게 모두 맞춰줄 수는 없지만, 맞춰줌으로 인해서 나를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ㅡ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말수가 줄어든다.

말 한마디에 오해가 생길까, 너무 오지랖일까?

젊은 나의 나는 싫어할수록 다가가고 부딪혔다.

지금의 나는 나를 싫어할수록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말을 줄인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던 나는

점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열의 없는 식은 사람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조금씩 내려놓고 나면, 익숙해지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쏟을 에너지가 생긴다.

틀어진 관계를 잡으려다가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놓치지는 말자.


누구나 나를 싫어할 수 있다.

이유는 나로 비롯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냥 그 사람은 나랑 맞지 않는 것이다.

관계에 대해 너무 매달리며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

다른 이를 둘러보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하고 아껴주자.


누구나 나를 싫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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