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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Apr 01. 2024

1화.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오늘도 물론 나는 잘 지내고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뜬끔없는 코로나에 걸려서 아팠고,

여전히 후유증으로 아프다.

오늘은 류마티스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이사를 하고, 일을 그만두면서

평범한 주부의 삶을 지내고 있지만,

매일매일이 평범하고도 별일인 듯 별일 아닌 일과를 보내고 있다.


연락하는 친구들에게는 오늘 병원 다녀온 걸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오늘은 류마티스 검진 있어서 병원 다녀왔어! 피를 11통이나 뽑았지 뭐야?!'

정말 시시콜콜하지만 일상 속에서 벌어진 별일이라고 신나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갑자기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에게 잘 지내지?라고 안부 한번.

몸은 건강하지?라고 인사 한번 한다.


다들 별일 없다고는 하지만, 회사에서도 별일.

건강상에서도 별일. 연애상의 별일 등등. 참 많은 일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할 일이 참 없다.

이 소식을 들으면 '갑자기?'라는 반응이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그냥. 갑자기.


애석하게도, 내 신변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자신의 삶이 늘 치열하고 바쁘니까.

보람차게 보낸 것에 대한 뿌듯함과, 기막힌 일을 겪고 화가 잔뜩 나있기도 하니까.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을 타인이 나의 또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엔 너무 바빠 보인다.


그래서. 

그냥 나는 오늘도 잘 지내고 있다.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속에 담아두기도 한다.


오늘은 내가 류마티스 질환을 알게 된 지 7개월 정도 된다.

처음 류마티스라는 이야기에 너무 놀랐고, 슬펐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극강의 T인 친정식구들은, '갑자기?'라는 반응과 내가 몸관리가 부실해서 그랬던 건 아니냐며 원인을 찾기 급급했다. 가족들의 반응에 무척이나 짜증이 났었다. 현재의 내 몸상태와 감정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늘 몸이 약한 편이었다. 잔병치레도 많은 편이었고, 원인을 알 수 없이 아픈 경우가 많아서 속으로 홀로 참아낼 때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나의 병 소식은 '갑자기?'라는 식의 생뚱맞다는 반응을 받아야 했다. 물론 친구들은 아니었다. 걱정해 주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아픈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늘 어렵다. 반응들도 가지각색이지만,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내 병을 가벼이 말하는 것도 싫고, 너무 심각하게 여겨서는 '이거는 해봤냐, 저거를 해봐라.'라는 식의 반의료인인척 이야기를 하는 반응도 싫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 놀랬겠다. 몸은 아프지 않니? 우리 앞으로 건강관리 잘하자.라는 깔끔하고 담백한 위로를 듣고 싶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반응을 누군가 알아채고 말해주기는 힘들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참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참 외로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많아지니, 말할 소재는 많아지지만,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입이 점점 무거워지고, 피로감도 커진다. 


 오늘도 갑자기.


[나는 잘 지내고 있지만, 가볍게 정기검진을 했는데, 피를 11통이나 뽑았어. 

처음에는 내게 류마티스라는 말을 듣고 정말 무서웠는데, 지내면서 보니 별거 아니더라고.

신랑도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고 있고, 건강관리 잘하고 있는 중이야. 곧 검사결과 보고 또 진료는 봐야겠지만,

오늘 그래도 많은 피를 뽑고 나니 별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 다들 건강관리 잘하고, 남는 건 건강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새삼 알게 되더라고. 오늘 검진은 갑자기는 아니고, 예약되어 있었던 거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묘하긴 하더라. 피도 많이 뽑은 만큼 맛난 거도 먹고 푹 쉬려고. 오늘 하루도 힘내고, 즐거운 한 주 보내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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