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정 Oct 04. 2024

인생을 작품처럼

나의 시 이야기

어린 시절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집에 있는 동화책을 다 읽고 나니,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엄마는 글감을 좋아하는 나에게 신문, 소설, 동시집 등 갖가지의 글들을 주었다.

그중에서 제일 매력 있었던 것은 단연코 '시'였다.


동화나, 소설처럼 기다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짤막한 글귀로 나를 사로잡았다.

읽고 싶어 하는 동시에, 쓰고 싶은 유일한 글의 장르였다.


반복되는 언어유희에서 오는 강렬함과 

나의 절제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던 은은한 매력이 있었다.

시는 그랬다.

제 멋에 취해, 과하더라도 아름다웠고,

제 멋을 숨기면서 생략하더라도 강렬했다.

난 그런 시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런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시를 쓰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백일장을 하더라도 나의 장르는 '시'였다.

내 마음을, 그 순간을 줄줄이 쓰고 있다가 멈추고,

속에 있는 말을 다 뱉어내고 난 그 작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자존감을 끌어줬고, 작품을 통한 나르시시즘은 재수 없기도 했지만, 숨기고 싶지 않았다.


등단도 시로 했었다.

어린 시절의 거침없이 쏟아내었던 시들을 잘 다듬어서 응모를 했고, 

어린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며, 주변 선생님들과 함께 과분한 존칭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은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고는 10년이 훌쩍 지났다.

꿈을 꾸던 소녀는 현실을 알게 되었고,

현실 속에서 각박한 이야기들에 둘러싸여서는,

직설적이고 냉담한 일상에, 시를 잃었다.


사회는 은유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스로에 대한 절제와 겸손은 없었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며, 표출의 형식이 어찌 되었건 강하고 크면 될 뿐이었다.

나도 그렇게 집단에 불만표출자, 사회불만과 불편을 내세우면서 바보가 아니라며 열내고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자잘하고 크게 싸우다 보니 지쳤다.

마음이 참 고됐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며, 눈을 감고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며, 설렘을 느끼고

구름에 살짝 가려진 석양을 보며, 슬퍼하던 나를 잃고 말았다.


낭만이 사라졌다.

낭만을 느끼기엔 너무 나이가 먹은 거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을 하루하루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시를 쓰고 싶었고,

마음의 평온을 다시 찾고 싶었다.

몰두할 것이 필요했고,

이것저것을 해볼까 했다.

나의 공허함을 채울 무언가가 있던가.


돌고 돌아 생각한 것이 바로, '글'이었다.

다시 글을 쓰고 싶었다.


비록, 국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어려운 어휘를 발휘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은은하게 내비치는 솔직한 나의 글.


인생을 작품처럼,

하나의 긴 모노드라마처럼, 또는 잔잔한 다큐멘터리처럼,

또는 한 편의 서사처럼.


잃어버린 나의 낭만을 찾아서,

여유롭고 아름다운 글을,

또는 현실의 분노에 찬 글을,

나의 색으로 펼칠 수 있도록.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인생이 거창해지도록,

나의 습관성 글을 담아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