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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Nov 13. 2024

잘 살고 싶다는 사람의 절박함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산다는 것을 알기에는 내가 부족할지도, 또는 충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모호한 말장난 사이에서 오기는 '살고 싶다'는 의미. 살아 숨쉬는 모든 동체. 동물.물건에게 말할 수 있는 말이자, 고차원적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순수하고도 고결한 의미의 잘 살고싶다. (고결함? 생명의 고결함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르겠다. 인간으로서의 생물로서의 삶의 원론적인 이야기인것일까? 예전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는 주제지만 뚜렷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잘 사는 것과 그냥 사는 것의 차이는? 


 나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속을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잘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삶을 이어가고, 살아간다는 것.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는 것은 잘 살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잘 살고 싶다는, 경제적의 의미에서 많이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삶을 이야기할때면 돈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돈이 많으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우리. 그럼 그 많은 돈으로 무얼할꺼냐 물어보면 아주 소박한 이야기들이 많다. 여행을 가고 싶다. 명품을 가지고 싶다. 집을 사고 싶다. 등등. 가만히 들어보면 물질적인 성취가 있어야 이룰 수 있는 것들 같지만, 그 근본은 나의 마음. 나에게 주는 안정감. 행복을 바라는 말들이다. 또 한편으로는 잘 살고 싶다는 말은 현재의 삶을 잘 살고, 무난하게 보내고 있기에 보다 성장을 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니까 잘 산다와 산다의 의미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산다의 의미가 반드시 돈으로 연결이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그것도 잘-이 아니라, 그냥 살고 싶다는 말을 붙이면 말이다. 돈은 그냥 부과적인 가치일 뿐이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돈이 필요없지는 않다. 일전의 생각은 이미 밝힌바가 있다. 'https://brunch.co.kr/@4257guswjd/82 <<돈이 필요 없지는 않습니다만')

 나의 10대와 20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돈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지냈던 것 같다. 집이 어렵다고 하여, 교무실을 돌면서 교사용 문제집을 받아 전전했고, 처음 직장이라고 한 되도 않는 곳에서 한달에 8만원만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엔 그랬다. 영양실조를 직접 경험했던 때였으니까. 그래서 성공하고 싶었고,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면 돈이 따라올 것만 같은 '보편적인'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위말하는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있었다. 사람들은 독하다고 했다. 궁상맞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도 적어도 내가 가진 인간성을 버리지 않으며, 할 수 있는 선행을 하며, 소박한 삶을 살면서, 꿈을 꾸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당시의 나의 삶은 암울했지만, 잘 살고 있다고 토닥이던, 정말 잘 살고 있는 삶이었다.  그러다가 30대가 되면서 목을 죄어오면서 죽을동 살동하면서 살았던 지난날의 과거.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나를 쥐어흔들었던 가치관이 너무나도 피곤했음을 느꼈다. 조금씩 성취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돌아보자니 시시했고, 나를 곪아가게만 할 뿐, 살아가는 내내 삶이 아닌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과거가 왜 현재의 나에게 죽음을 암시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병든 사람.
병이 들어 곧 스스로 죽을 사람.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사람.

평범한 가정을 이루었고, 행복해한다. 누가 봐도 평범하고 완벽할지 모르는 그런 삶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오는 과거의 순간순간의 기억. 악몽.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들. 나의 부끄러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사는 것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요즘- 잘 살고 싶다에서 살고 싶다로 바뀌었다. 그냥 사는거보다 잘 사는게 중요하지요. 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그냥 살고 싶다가 아니라, 정말 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나'이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아주 기초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사는 것 자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에 희망을 품는다. 꿈꾼다. 다시, 나아가는 모습에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준다.

 

산다는 것.

사는 것.


사는 것은 쉽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면 살아지니까, 숨을 쉬니까- 그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사는 것이라기보다 생물로서의 생체반응을 띄고 있다.의 수준이지 산다는 느낌은 좀처럼 느낄 수 없다. 눈을 뜨고 무언가를 먹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현재의 시간을 하면서 흘려보내는 모든 행위가 사는 것. 내가 숨을 쉬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도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는 모르지만 노력하면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참 어렵다. 특히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람은 외부로부터의 자극. 사람과의 관계. 길고도 짧은 삶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생각하고 습득하면서, '나 자신'은 잃지 않은 채. 스스로를 계속 발전시킨다. 도태되기도 하고, 그 삶을 돌아보면서 변화한다. 그 긴 시간동안의 여러차례의 변화를 통하여 사람은 살아간다.

 과거에 매여있는 사람들은 한참을 떠돌다 살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하고, 스스로 삶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절박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살아간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평범한 사람. 나는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사는 것은 쉬운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쳐가면서, 지난 과거의 삶이 헛수고였지 않았을까 하는 혼란 속을 해집고 나니 삶의 무게. 일상의 유지가 얼마나 대단하고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각자만의 삶 속에서 견뎌온 무게도 달랐고, 환경도 달라왔다. 함께한 사람들이 달랐다. 그 환경과 함께 보내온 사람들은 처음엔 운이었을지 몰라도, 점점 자라면서 내가 선택하게 되는 것으로, 선택의 순간은 찰나였으며, 그 무게를 몰랐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쯤에는 이미 많은것이 변해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의미를 생각하기에 너무 어리진 않나, 너무 나이가 많지는 않나.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사는건 어려운 것이다.

 

 사는 것이 무엇이 어렵냐- 라고 한다면, 어렵다. 쉽다고 한다면 쉽다. 그것 또한 개별적인 차이가 있다. 내가 속해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기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마다의 기질이 있다. 받아들임이 익숙한 사람, 미숙한 사람이 있다.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그 개별적인 특수함에 달려있다.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성장과정에서, 기쁨, 슬픔. 불안, 초조, 행복, 까칠, 부끄러움. 등등. 수많은 감정을 가지며 살아가는데, 휩쓸려버린 감정에 매몰되기도 하고, 가볍게 넘기기도 하면서 하루 일과에서의 수십번도 변하고, 생기고, 뒤섞인 감정들에 충실하다보면 기력이 다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본능적인 감정에 충실하면서, 어른들로부터 감정을 다루는 것을 배운다.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상호작용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배운다. 점점 크는 아동들의 경우도, 각자의 주변환경에서 습득해온 것을 또래의 친구들과 공유하고 경험하면서 마찰을 빚고, 그 마찰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여러 감정들을 다시 수집하면서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완성된 줄 알았던 자아를 가진 어른들은 사회에 나와서 또다시 그 마찰과 수많은 감정들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면서 현재와 미래도 바라보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삶을 고쳐나가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면서 변화한다. 그것이 삶이다.

그것이 사는 것이다. 이런 지속적인 변화와 갈등. 마찰, 성장, 희열. 성취의 연속인 삶. 그런 삶은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가. 얼마나 멋진 일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가. 그렇기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이. 당신이. 또는 나 자신이 대견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잘 사는 것에 집착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잘 살기 위한 방법과 과정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목표된 바를 이루기위해 스스로를 제어한다. '제어' 그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나는 안다. 절제와 계획. 목표하는 바를 위하여 끊임없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업데이트를 하고, 수정한다. 그 과정이 즐겁기도 하지만, 즐겁지 않을때도 있다. 그러다가 성취를 하거나 좌절을 할 때. 잘 살기 위한 집착이 얼마나 힘들고, 진이 빠지고,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의 허탈감. 그 '잘' 살겠다는 집착이 나를 어렵게 만들고, 사는걸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인생을 내버려두고 막 살자.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하자. 라는 말은 아니다. 나의 다양한 감정을 존중하면서, 무리하지 말자는 것이다. 쾌락만을 위한 삶은 좌절과 부정적인 감정이 자랄 기회가 없어, 성숙하지 못하다. 성숙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주하는 순간, 살기 힘들다며 삶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을 포기는 하기는 싫고, 투정을 하면서 그 감정들을 뱉기 위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부여잡고, 그 감정들을 열심히 소모하고 버려버린다면 잠깐의 순간은 괜찮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 감정을 건전히 털어버리지 못한 채 병들어 버릴 수도 있다. 긍정적인 사고만을 가지고, 부정적인 사고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 결국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과 사고를 받아들이고 살아가야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런 우리에게 그냥 살면 되지.라는 말은 없다.


 평범한 삶이 목표라고 하는 순간부터, 나에게는 많은 것들의 변화가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평범이란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삶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어봤다.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가벼운 것에 대해 생각하자니 워낙 가벼운 일상이라 편안했지만, 무거운 것을 생각하고 나니, 가벼운 일상이 흔들리고 뒤틀렸다. 삶의 목표는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라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무거운 것부터, 가벼운 것까지-라고 생각한다. 무거운 무게를 견디면서 빠르게 변화해가는 나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삶에 대하여 생각하며, 살고 있다. 살고 싶다. 평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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