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 대한 생각 1.
무엇에 대해 써볼까 하다가, 우리집 개가 떠올랐다.
우리집 개는 얼마 전에 만나이로 3살이 되었다. 개가 생후 5개월 쯤 우리집에 왔으니 개의 가족으로서 나도 이제 거의 3년차다. 개에게 3년은 참 긴 시간이라 눈에 보이는 건 다 입으로 집어넣던 파괴신이 이젠 제법 점잖아져서 집에서 별명이 '신사'가 되기에 이르렀는데, 인간에게 3년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니라서 아직도 서툴기 그지 없다. 일례로 얼마전 우리 개는 결석 수술을 했다. 우리가 과일이며 고기며 너무 많이 먹였던 게 원인이라고 했다. 항상 뭘 주기 전에는 '강아지 상추', '강아지 오렌지' 같은 조합으로 검색을 한 다음 줬는데도 자주 먹이는 건 또 달랐나보다. 동물병원에서는 이제 사료도 결석 전용 사료를 먹이고 간식은 아예 주지도 말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개 간식 하나 손에 들고 그 기대감 어린 표정을 보는 게 얼마나 큰 삶의 낙이고 행복이었는데. 무엇보다 서투른 가족들 때문에 우리 개가 영문도 모른 채로 삶의 즐거움을 하나 잃었다고 생각하면 울컥 눈시울마저 붉어진다. 그래, 영문도 모른 채로.
우리집 개, 실명을 밝히기는 부끄러우니 가명을 '댕이'라고 해보자. 나는 댕이와 함께 살면서부터 개에 대해 자주 쓰잘데기 없는 고찰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면 자주 나오는 키워드는 '영문도 모르고'이다. 사람과 함께하는 모든 것들이 개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의뭉스러운 게 많을까. 댕이의 표정을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산책 갈까?' 할 때 댕이는 늘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가족을 따라나선다. 우리는 댕이를 데리고 집 근처를 20여 분 거닐기도 하고 근처의 하천가로 1시간이 넘는 긴 산책을 가기도 한다. 어떨 때는 차에 올라서 근교의 공원에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 어떨 때는 무려 2박 3일의 여행을 떠난다. 그때마다 댕이는 한 번도 목적지를 알고 나선 적이 없다. 일단 씌워주는 대로 하네스를 입은 다음 영문도 모른 채 가족을 따라 걷거나 차에 실려갈 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래서 우리 어디가?' 하는 표정을 짓는 댕이를 보면 한 번씩 가슴께가 찌릿,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한테는 나올 수 없는 순도 100%의 신뢰빔을 쏘는 막내에 대한 사랑스러움과 고마움과 애틋함과 미안함과 안쓰러움, 뭐 그런 감정들의 합이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
그런 감정들이 꼭짓점을 찍었던 것은 아무래도 최근 있었던 결석 수술 과정이었다. 배변패드의 오줌자국에 옅은 분홍색이 섞인 것이 시작이었다. 겉보기에는 아픈 데가 없다 못해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았지만 엄마랑 나는 일단 댕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산책인 줄 알고 나섰던 길 끝에 동물병원이 나오자 댕이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떨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개는 참 불쌍하게 떨 줄 아는 동물이다. 배신에 몸부림치며 잔상이 남을 만큼 발발 떠는 녀석을 수의사 선생님의 손에 맡겼고 댕이는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만져지고 눕혀지며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5mm짜리 방광 결석. 소형견인 데다 수컷이라 오직 수술로만 제거가 가능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가족들은 수심에 잠겼고 댕이는 병원만 나가면 만사형통이라는 듯이 굴었다. 이제 진짜 시작인 줄도 모르고.
방광 결석 치료 과정은 그야말로 댕이의 입장에서는 영문 모를 일들 뿐이었을 것이다. 엄마랑 누나가 왜 갑자기 나한테 쓴 걸 먹이지? 왜 맛있는 걸 주지 않지? 왜 자꾸 간식이라면서 사료만 주지? 왜 나를 자꾸 이 못된 사람(수의사)한테 맡기지? 등등. 그 중 으뜸은 수술 당일이었을 것이다. 엄마랑 누나 품에 안겨 또 동물병원에 간 것도 서러운데 나쁜 사람(수의사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다) 손에 저만 남겨졌으니. 그리고 어느 샌가 잠들었다 깨어나보니 작은 상자에 갇혀 있고, 배가 죽을 만큼 아픈 상황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는 댕이는 낯선 곳에서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을 것인가.
그날밤, 당일 퇴원한 댕이는 밤새 끙끙대며 엄마와 나에게 번갈아 안아달라고 했다. 댕이에게는 그날 수술이 '엄마와 누나가 저를 낯선 곳에 두고 갔고 그 뒤에 엄청나게 아파졌다'는 식의 전개였을 수밖에 없을 텐데도 우리한테 의지하는 것이 고맙고 짠할 따름이었다. 그 뒤로도 약 먹이기, 소독하기, 실밥 뽑기, 수술부위가 부은 것 같다고 유난을 떠는 엄마와 누나 손에 병원 끌려가기, 넥카라를 썼다 풀었다 하기 등등 댕이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수모를 많이 겪었다. 다행히 지금은 무사히 회복해서 잘 지내고 있지만 그게 댕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환장할 일이었을지 종종 헤아려본다. 게다가 여전히 댕이는 간식을 먹지 못하고 있다. 간식인 척하는 사료만 먹고 있을 뿐. 이미 온갖 맛을 알아버린 개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간식?'이라는 말 뒤에 돌아오는 것이 이번엔 사료가 아니고 제발 북어나 대구껍질이나 육포이기만을 댕이는 아직도 매번 기도하고 있을지 모른다. 포기를 모르는 개니 아마 그럴 것이다. 그 모든 악행에 대해 설명해줄 길이 없음을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무런 설명도 못 들은 채로도 매번 나를 사랑해주어서 댕이에게 고맙다. 몇 번이나 배신당하고도, 그러니까 동물병원에 가고 나서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을 매번 해맑은 얼굴로 따라와주어서도 고맙다. 배신의 아픔을 알고도 남을 믿는 일이 어디 쉬운가? 댕이는 그걸 매번 해낸다.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