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 대한 생각 2.
비가 온다. 개를 키우고부터 비 오는 날이 달갑지 않다. 비가 오면 산책을 못 나가니까. 가끔 길을 가다 보면 우비를 입고 산책을 나온 개들을 만나긴 하지만 우리 댕이는 옷 입는 걸 질색한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휴무다. 크게 상관은 없다. 댕이는 그렇게까지 산책광은 아니다. 매일 하는 산책 하루 좀 쉬면 어때, 하는 느낌이다. 개를 키우기 전에는 개들이 산책이라면 다 환장을 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산책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고, 매일같이 1시간 내외로 산책을 한다. 다만 그게 그냥 당연한 일과 중 하나일 뿐이지 좋아서 날뛸 일은 아니랄까. 그래서 어쩌다 날씨 때문에 못 나가더라도 딱히 보채는 일은 없다.
산책을 나가더라도 댕이는 사실 잘 걷지 않는다. 간식으로 꾀어내거나 그냥 안아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1시간 산책을 한다고 하면 댕이가 자발적으로 걷는 시간은 20분이나 될까 말까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댕이는 수의사가 인정한 근육질 강아지다. '소형견 뒷다리가 이러기 쉽지 않은데'라는 말까지 들었다. 잘 걷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면, 사실 댕이는 새로운 곳에서 하는 산책을 좋아한다.
동네에서는 간식으로 어르고 달래야 겨우 몇 걸음 걸어주지만 새로운 장소에서는 다르다. 발걸음도 경쾌하게 찹찹 거리며 빨리감기를 한 것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냄새도 신중히 맡아주고, 가끔 갈림길을 만나면 신중히 고민한 뒤에 직접 결단을 내린다. 또, 어릴 때부터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자주 시간을 보내서인지 벤치가 나오면 꼭 앉았다 가야 직성이 풀린다. 올려달라는 무언의 압박에 댕이를 벤치에 올려주면 당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경치를 한참 감상한다. 그러다 내려주면 또 바로 태엽 감은 인형처럼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동네에서는 시큰둥하고 낯선 곳에 가야만 잘 걷는 댕이가 가끔 웃기기도 하다. 아는 길은 재미가 없는 걸까? 쪼끄만 게 이렇게까지 호불호가 확실할 일인가 싶다. 하지만 또 그 신나서 걷는 궁둥이를 보기 위해 매주 차를 타고 어디론가 나가게 되는 것이 집사의 마음이다. 다행히 동네만 아니라면 댕이는 여러 번 갔던 곳도 새로운 곳으로 쳐준다.
알면 알수록 댕이에게는 다른 개와는 구분되는 특징이 많다. 아마 모든 개가 그럴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잘 모를 때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지만 깊게 알아가다 보면 남과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저마다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그런 걸 알아가는 과정이 길들여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어린 왕자와 장미처럼 서로에게 단 하나의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댕이도 가족들에게 착실히 길들여지고 있다. 누나랑 단둘이 있는 날에는 오후까지 늦잠을 자고, 아빠랑 있는 날에는 으레 새벽 산책을 가는 줄 안다. 엄마한테 혼날 때는 유독 애교를 부린다. 쉽게 풀리는 걸 알아서이다. 그런 특성들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다.
댕이에게 길들여질수록 댕이가 특별해짐은 물론이고 다른 개들이 덩달아 사랑스러워지기도 한다. 다들 어떻게든 댕이를 닮아 있으니까. 아니, 내가 댕이와 닮은 점을 찾아내는 것 같다. 개만이 아니다. 길고양이들도 댕이와 닮은 구석이 있어 눈에 밟힌다. 언젠가 마주칠지 모를 길고양이를 위해 고양이도 없으면서 종종 편의점에서 츄르를 사는 사람이 되었다. 새를 무서워하는 편인데도 유튜브에서 앵무새 영상을 수시로 본다. 저 새가 저 집에서 얼마나 큰 기쁨일지를 생각하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저 녀석은 얼마나 저 가족에게 사랑을 받고 또 사랑을 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댕이가 연상되며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것도 길들여짐일까. 댕이를 대입하면, 많은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