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근네모 Jul 04. 2022

장마철과 개

개에 대한 생각 3.

 요즘 매일같이 비가 온다. 그러고 보니 장마라고 했던 것 같다. 무슨 6월에 벌써 장마가 오는지 모르겠다. 아니, 장마는 원래 이때쯤 오던가? 수십 번 계절을 겪어도 장마가 언제쯤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일상의 쳇바퀴 속을 구르기 급급한 내게 계절의 변화란 늘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올해도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장마가 한창이다. 매일 습기에 들러붙는 살을 쩍쩍 떼어내며 쳇바퀴를 구르고 있다.


 개는 어떤가.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곁에 있다고 해서 생각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멍하니 엎드려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짐작할 수는 없다. 개도 과연 장마란 것을 알까. 이맘때쯤이면 비가 주구장창 쏟아지는 기간이 온다는 것을. 그래서 산책을 나갈 수 없고, 그친 틈을 타 잠깐 나간다 해도 진흙탕을 밟고 결국 목욕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뭉근한 습기 속에 왠지 모르게 개가 평소보다 쳐져 보인다. 이건 내 기분이 반영된 것일까. 습기와 빗소리와 내 시선 속에서 개는 말없이 엎드려 있다.


 그럴 때 개 옆에 가서 슬그머니 누우면 뭉근한 개 냄새가 풍겨온다. 누구는 비린내라 하고 누구는 꼬순내라고 부르는 묘한 냄새는 비 오는 날이면 유독 진해진다. 나는 꼬순내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 중독성 있는 꼬순내를 듬뿍 들이마시며 댕이를 쓰다듬는다. 엎어져 있는 털뭉치의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길게 쓰다듬으면 두 귀가 손길에 맞춰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무심한 얼굴로 길을 터주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장마철엔 누가 닿기만 해도 짜증이 치밀기 마련인데 개만은 왜 예외일까. 닿아도 끈적거리지 않고 포근하다. 뜨거운 열기조차도 달갑다. 물론 개 입장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를 쓰다듬으며 중얼중얼 묻는다. 댕이야, 너도 습해서 짜증 나? 털이 습기를 머금은 게 느껴지니? 몸이 막 무겁고 그래? 아님 그냥 졸린 거니. 지금 장마래. 이번 주 내내 올 거래.


 물론 댕이는 대답이 없고 눈만 꿈뻑인다. 말 없는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끝없는 혼잣말과 질문의 연속이다. 나는 늘 스토커처럼 댕이에게 궁금한 게 많다. 이 긴긴 장마, 너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꿉꿉하지는 않은지. 선풍기 바람이 너도 시원하게 느껴지는지. 에어컨 바람에 혹여 촉촉한 코가 마르지는 않는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끊임없이 물을 거리가 생기는 것이 집사다. 댕이야, 지금 어때. 불편하지는 않니. 대답은 없지만 그렇기에 더 집요하게 물어보게 된다. 늘 말 없는 녀석의 불편함을 내가 미처 못 알아챌까봐.


 그러다 보면 가끔은 정말 확실한 대답이 돌아올 때도 있다. 계속되는 내 물음에 댕이가 슬그머니 일어나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 도로 엎드린다. 앞발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는 뿜어내는 긴 한숨이 열 마디 말보다 분명하다. 아쉽지만 잠시 물러날 때다. 다시 치근덕거릴 타이밍을 위하여. 늘어진 댕이에겐 미안하지만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사랑해서 그렇다고 변명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길들인 단 한 마리의 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