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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Apr 28. 2024

때론 낙관만이 나를 일으켜준다

[북리뷰] 조승리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나는 썩 긍정적인 편은 아니다. 썩 나약해서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약간의 비관주의가 진통제 역할을 해준다. 좌절 앞에서는 '어차피 이럴 줄 알았어' 같은 쿠션을 둘러줘야 그나마 덜 아프다. 그건 주먹이 날아오면 팔을 올리는 것처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인생이 잘 안 풀리다 보면 그런 방어기제가 어느 정도 습관화되는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밝은 사람이지만 살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일들을 지나오며 냉소적인 면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뭐든지 잘 될 거라는 식의 힐링 콘텐츠는 왠지 거부감이 든다. 입바른 소리만 하는 자기개발서도 내키지 않는다. 너무 밝고 구김살 없는 사람과는 친해지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런 나도 긍정을 끌어모으는 때가 있으니, 아주 큰 불행이 닥쳐올 때다. 작은 불행은 비관주의로 셀프 백신을 놓을 수 있지만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거대한 불행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럴 땐 어떻게든 끌어모으는 희망이 나를 지켜준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나는 일기장에 긍정적인 말을 썼다. 평소에 가장 싫어하는, 다소 오글거리는 무한 긍정의 말들이었다.


 -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나는 이겨낼 수 있어.


 비관주의가 더는 나를 지켜주는 농담이 될 수 없을 때, 오직 그런 낙관만이 나를 일으켜주었다. 나라도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해주지 않으면 정말로 무너질 것 같아서 긍정의 말들을 꾸역꾸역 되뇌었다. 그러다 가장 힘든 시기를 한 번 버텨냈을 때 낙관의 농담도 뱉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또 죽지도 않고 살아났네, 하고. 이 책을 읽으며 그게 기억이 났다.


 글의 목차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인간에 대한 작가의 미움과 애정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또, 아련한 추억과 뼈아픈 기억이, 깊은 절망의 골짜기와 반짝이는 자랑스러움의 순간들이 한데 모여있다. 그 모든 상반된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끝내는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제목으로 완성된다. 널브러진 깃발들 사이에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주저앉아도 보고 춤도 추어보는, 표지에 그려진 도도새의 그림이 함께 겹쳐진다.


 덩달아 나도 내 삶의 지랄맞음들을 돌아보게 된다. 지랄맞음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행복과 불행의 파도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때고 와서 나를 휩쓸어 갔다. 파도가 떠난 뒤 정리할 길 없이 어질러진 내 삶의 훈장과 상처들을 어떻게든 보듬고 살아가다 보면 이 모든 아픈 것들이 축제가 될까. 삶의 싫은 것들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조승리 작가는 그 첫 발자국을 뗀 것 같다. 그래, 축제는 아닐지라도 부여잡고 있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도도새처럼 나도 내 삶의 깃발들을 그러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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