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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Jun 13. 2024

증오의 뒷면을 뒤집어 돌아보는 것

[북리뷰]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기억과 실제는 다를 때가 많다. 어떤 일을 겪을 때 우리는 그 일의 모든 면면을 기억하지 않는다. 일련의 사건이 다 마무리된 뒤에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기억한다. 그건 진실에 근접할 순 있겠지만 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온통 나쁜 일만 있었다고 생각한 시기에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남아있듯이.


 최은영이 이 일곱 편의 단편을 통해 하고자 한 말은 무엇일까. 많은 얘기를 끌어낼 수 있겠지만 내게 여운을 남긴 것은 사랑의 흔적이었다. 원망이라고 이미 내 안에서 다 결론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이 증거물로 남아버린, 낡은 사진 같은 사랑.


 그런 사랑을 인정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 같아서 하나로 붙어있지만 양쪽을 다 보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과 증오의 실체는 실은 애증이지만 우리는 한쪽 면만을 골라서 사랑 또는 원망이라고 이름 붙이며 안고 살아가는 것이겠다. 「답신」과 「이모에게」의 인물들은 고통스러운 자기 직면을 통해 이 증오의 뒷면을 발견하고 받아들인다. 내가 보호하려 했고, 한편으로 무시했으며, 끝내는 나를 아프게 배신한 언니에게 받았던 사랑이 있음을. 원망했고, 닮고 싶지 않았던 이모지만 당신의 방식으로 건넨 당신 나름의 사랑이 있었음을.


 상처를 덮어두고 내가 받았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뼈저리게 어려운 일인가. 특히 가족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소설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이 지점이다. 인물들이 고통스러운 자기 직면과 고뇌의 끝에서 결국에는 사랑을 말하며 끝맺는다는 것. 그건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코 비관하며 끝나지는 않는, 최종적으로는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 최은영의 특징이기도 하다.


 최은영의 글은 그런 면에서 어딘가 고행 같은 데가 있다. 아플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고통을 겪으려는 것처럼 누구나 갖고 있는 치부, 나조차도 그냥 모른 척 덮어두고 싶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자세히 묘사한다. 이만하면 충분한데 싶은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어떤 사명을 지닌 사람처럼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잊고 싶은 수치스러운 기억들과 숨기고 싶었던 못난 마음들을 헤집으며 마치 고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담담하게 날 것의 고통들을 분류하고 가다듬는다. 충분한 해답에 가닿을 때까지.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까지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지지만 끝내는 이상하게 치유가 되는 구석이 있다. 내가 손대기조차 두려워 엉킨 채 치워두었던 감정의 뭉텅이들을 나를 대신하여 정리해주는 것만 같다.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런 감정이 들었으며, 실은 이렇게 하고 싶었노는 무섭도록 정직하게 묘사한 감정의 가닥들이 내 삶의 몇몇 순간들을 뒤늦게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나의 과거와 화해하도록 길을 놓아준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왜 치유가 되는 것일까. 아마 사람에게는 불행을 파악하려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 이유를 따지는 사람은 없지만 불시에 들이닥친 불행 앞에서는 '왜?' 라는 질문을 놓지 못한다. 아마 생존을 위해서 나쁜 일을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본능으로 인간 본성 차원에 내재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최은영의 끈질긴 심리 고찰은 고통스럽지만 다 읽은 끝에는 뭔가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고통을 말할지라도 희망으로 향해 가는, 인간의 추한 면을 비추면서도 인간 혐오를 향하지는 않는 최은영의 방향성이 좋다. 「쇼코의 미소」때부터 쭉 이어져온 최은영 세계의 온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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