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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Jul 17. 2024

적자생존이라는 오해

[북리뷰]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

 책의 두께는 다소 위압적이지만 담고 있는 메세지는 아주 간결하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이 이토록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신체적 우월함이 아닌 서로에게 협력할 수 있는 '다정함'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정함을 지향해야 한다. 이 단순한 메세지가 이 두꺼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메세지다.


 볼드 표시를 한 두 번째 문장이 책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저자는 인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번성한 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을 찾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인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결부시켜 우리에게 제시한다. 우리는 다정함을 다른 가치보다 높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 때문에. 주장하는 바가 아주 명확한 책이다. 그 따스하고 분명한 방향성이 이 책을 돋보이게 한다.





 때로 '과학적 사실'이란 말은 위험하다. 우리가 흔히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설처럼 퍼진 것이 실제로는 근거 없는 낭설일 수도 있고 비약된 것일 수도 있으며 설령 처음엔 정설이었던 것이 나중엔 뒤집히기도 한다. 이것들이 특히나 위험한 이유는 곧잘 차별이나 혐오를 정당화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차별'을 '차이'인 척 둔갑시키는 데 예로부터 과학만 한 것은 없었다. 인간의 사고 속에서는 어떤 과학적 사실도 완전무결하게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어서 언제나 차별에는 과학적 근거가 뒤따랐다. 세상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적자생존'이 그런 맥락에서 잘못 퍼진 믿음임을 지적한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폐단을 정당화시키는 마법의 말이었다. 강한 것이 살아남고 약한 것은 도태되는 것이 정당한 자연의 섭리라는 그 논리는 오래도록 과학적 사실인 체 하며 직·간접적으로 약자를 억압하는 데 쓰여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적자'란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짚는다. '강함'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개념인 '공격성'은 실은 우리 종의 진화 과정 내내 도태되어온 성질이며, '친화력'과 '협력성'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내내 발전시켜왔던 생존에 적합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정반대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알파 메일'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 역시도 완전히 잘못된 발상이라 볼 수 있다. '알파 메일'이라 함은 대체로 키 크고 돈 많고 남성적인 리더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이들이 권력과 여성들의 인기를 독식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가 은연중에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애초에 인류는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성'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줄곧 진화해왔고 그러므로 흔히 생각하는 '알파 메일'보다는 '프렌들리 메일'이 더 적합한 존재다. 테스토스테론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외형의 남자를 보고 여자들이 무의식중에 덜 가정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연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나도 여성으로 살면서 한 번도 '알파 메일'이라 불릴 법한 남자에게 끌려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연구 결과 그대로 그런 남자들이 관계에 진지하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을 가진 쪽에 속했다.


 한편 인간의 탁월한 친화력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전반부를 읽으며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의구심이 있었으니, 그건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알다시피 우리는 상상 이상으로 잔인한 생물이다. 쾌락을 위해 다른 종을 멸종시키기도 하고 얼굴도 모르는 개체들끼리 대규모 전쟁과 학살을 벌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인간의 이면에 대해서도 다룬다. 다정함을 생존 전략으로 내세운 우리가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비인간화'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타 집단에 대할 때 친화력을 관장하는 뇌의 어느 부분을 스위치 끄듯이 꺼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혐오와 차별은 늘 있어왔다. 이때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많은 언어에서 '원숭이' 내지는 '개', '돼지' 같은 표현을 공통적으로 쓴다는 점은 흥미롭다. 비인간화 작용이 무의식적으로 언어에서 드러나는 것일까? 저들 집단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며, 따라서 친화력도 동정심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정신적 기제는 생각해보면 너무나 무서운 발상이다. 하지만 이제껏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 왔던 일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잔혹성까지도 우리의 본성임을 받아들이고 경계해야 한다.


 실험 결과, 다른 집단을 가장 비인간화 할 때는 그 집단이 우리를 비인간화 한다고 느낄 때라고 했다. 혐오가 더 큰 혐오를 가져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일베'라는 사이트가 처음 나타났을 때 '메갈' 같은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저쪽 집단이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불 붙으면 혐오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우리가 다정함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예전 글 야생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배우는 것 (https://brunch.co.kr/@425f0970edf2452/14)에서 밝힌 적 있듯이 나는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이 지구를 살아가는 하나의 동물 종으로서 다른 동물들의 생태에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갖춘 전략이 있다. 그걸 보면서 인간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지 자주 생각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는 책이었다. 침팬지와 보노보, 개와 늑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생존 전략이 다정함에 있음을 명확히 밝혀주었다.


 '다정함'이라는 번역도 마음에 든다. 친화력이나 협력성보다는 다정함이라는 표현이 더 따뜻하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더 명확히 밝혀주는 것 같다. 저자가 내내 자신의 개에게서 다정함의 증거를 발견하는 점도 무척 사랑스럽다. 훨씬 지능이 높은 침팬지들이 아무리 시도해도 해낼 수 없었던 것들을 저자의 개 오레오는 단번에 해낸다. 오레오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저자가 늘 알고 있었다는 점도 인상 깊다. 나도 다정한 우리 개 댕이를 옆에 두고서 이 책을 읽었다. 개는 우리보다도 다정함을 더 탁월하게 발전시킨 종이다.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역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 개에게서 배울 수 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대표적인 유사 과학이지만 '개는 답을 알고 있다'는 제법 과학적인 문장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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