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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티잔 Jul 12. 2024

#윤희 5편 마지막 편

#마지막 편 편지


윤희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 심장이 아팠다. 2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다행히 몸이 좋아졌지만, 윤희의 병 때문에 아버지는 구례의 땅을 모두 팔고 광주에서 날일을 나가야 했고 엄마는 식당 일을 해야 했다. 언니는 공장에서 일했다. 남동생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20년이 지났고 다시는 구례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 사이 윤희의  엄마 아빠 모두 돌아가셨다. 


윤희는 작은 회사 사무실에 경리로 일하다가 함께 일하던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 생활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해 여름 시작하는 때 운혁이 자기 집 앞마당에 들어섰을 때가 생각났다.


세살문 사이로 보이던 운혁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친절하게 이야기할 것을 윤희는 후회가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이유 없이 보고 싶고,  운혁이 자기가 탄 곳으로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윤희를 지켜보던 운혁의 따스한 눈길이 생각났다. 우리 마을까지 찾아왔었는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 윤희는 여름이 오면 매번 그날이 떠 올랐다. 


섬진강에 맑은 물과, 눈 쌓인 노고단, 기차를 타기 위해 걷던 길, 아버지의 오토바이, 윤희야 잘 잡아라 잉.. 하고 말하던 젊은 아버지의 등에서 느껴지던 온기, 모든 것이 윤희의 마음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지만, 그것은 오직 추억 속에 있을 뿐이었다. 


오래전 병이 호전되고 나서 윤희는 운혁을 찾은 적이 있었다.  


대학로 앞 서점 안에 운혁이 있었다.  전공서적을 읽고 있는 운혁을 보니 자신의 처지도 그렇고 옆에 있는 여학생을 보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갔지만, 윤희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다시 광주로 돌아왔다. 


그렇게 20년을 흘렀다.  윤희의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정에 약했다. 친구들의 빚보증에 IMF로 회사가 넘어갔다. 한 번 기울어진 살림은 일어서지 못했다.  


더구나 하나뿐인 딸은 지적장애가 있었다. 윤희의 삶의 빛은 없었다. 오직 빚이 있었을 뿐이다. 


결국 남편 빚 때문에 위장 이혼을 해야 했다. 


남편은 신용불량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윤희가  광주에서 구례를 이사를 온 것은 5년 전이었다. 


남편과는 가끔 연락했지만, 점점 소식이 없었다. 


윤희도 이편이 편했다. 


구례 봉서리의 작은 시골집에서 윤희와 윤희의 딸 서진이 함께 살았다.


윤희는 구례읍에 작은 반찬가게를 열었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엄마를 닮아 윤희는 음식을 잘했다.


구례읍에 반찬가게가 없어서인지 장사는 그럭저럭 되었다.


운혁은 가끔 구례에 찾았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서울로 가는 버스에서 윤희와 비슷한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날 윤희는 광주에서 구례로 내려왔다.


윤희도 구례 버스터미널에서 운혁과 비슷한 남자를 봤다.


20년 전의 운혁을 생각했을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지만 


운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혁은 윤희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그때의 모습이 아니지만, 


운혁은 윤희가 옛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운혁의 가슴이 스무 살 그때처럼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렸을 때 윤희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운혁은 구례읍을 몇 바퀴를 돌았지만, 


윤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5년이 지났다.



운혁은 시간이 생길 때마다 자석에 이끌리듯 구례를 찾았다. 윤희가 좋아했던 문척교를 매번 걸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다리를 건넜다. 다리 건너서 걷다 보면 벚꽃길이 나왔다. 운혁은 매번 벚꽃이 피면 동해마을까지 걸었다. 


그 꽂길 어딘 가에 윤희에 흔적이 있을 것 같았다.


“윤희도 이 길을 사랑했겠지.”  자전거를 타고 벚꽃길을 달리는 윤희의 젊은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함께 걸었던 그 여름날의 벚나무 길도 좋았다. 하지만 윤희를 찾을 수 없었다.


운혁은 윤희를 찾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5년 전 윤희를 봤을 때 옆에 윤희를 닮은 


여자아이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세월이 흘렀다.


운혁은 여전히 구례 읍에 자주 찾았지만,


이제 더 이상 윤희를 찾지 않았다.


운혁은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췌장에 암이 있다는 선고를 받았다.


운혁에게 남은 삶은 고작 6개월에서 1년이라고 의사는 짧게 말했다.


운혁은 치료를 거부했다.


남은 삶은 구례에서 보내고 싶어 운혁은 퇴사하고 구례에 내려왔다.


햇빛이 잘 비치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구례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반찬가게에서 윤희를 봤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윤희를 운혁은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반찬가게에 운혁이 들어왔을 때 윤희는 운혁을 바로 알아봤다.


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아는 척할 수가 없었다. 


이혼을 했지만 남편이 있었고, 장애가 있는 딸도 있고, 


이제 나이도 40대 중반 뭘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운혁도 반찬가게 창문 너머에 윤희를 봤을 때 


바로 알아봤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운혁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몇 개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3개월 불과할 것이다.


운혁은 매일 반찬가게에 들렀다.


 윤희는 운혁이 좋아하는  반찬을 항상 살폈고 할 수 있는 최대한 솜씨를 내었다. 


운혁이 자신의 반찬을 맛있게 먹는 것은 상상하면


윤희는 기분이 좋았다. 


둘은 여전히 모른척하고 지냈다.


어느 날부터  운혁이 반찬가게를 찾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운혁은 보이지 않았다. 


윤희는 덜컥 겁이 났다. 


말 한 번 하지 못하고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윤희는  운혁의 집에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몇 번 배달 주문을 했기 때문에 윤희는 운혁의 집을 알고 있었다. 


지섬 아파트 508호... 


"띵동 띵동


"아무도 없어요"


“어디 갔을까?”


경비 사무실에 물어보니 운혁은 집을 정리하고 


며칠 전 요양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어디 요양병원인가요?"


"거야 제가 모르죠?


"자기는 절대 구례를 떠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구례 요양병원 어딘 가에 있겠죠!"


윤희는 구례에 있는 모든 요양병원을 찾아다녔다.


윤희가 운혁을 찾았을 때 


운혁은 생명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곧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


운혁은 눈을 감았다. 


처음 윤희를 봤던 그날이 떠올랐다.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운혁의 눈에 윤희는 세상 그 누구보다 빛나 보였다. 


운혁은 윤희의 집을 찾아갔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윤희의 어머니가 챙겨주던 밥상과 


윤희가 만들어 주던 반찬가게의 반찬들....


운혁은 이제 그 반찬을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운혁은 그날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운혁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저…


 이 사람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것일까요?"


" 아... 마약성 진통제 때문입니다."


" 아마 곧 깨어나실 겁니다?


"그런데 누구 시죠?"


" 이 분은 한 번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었는데요"


"친구예요"


"아.. "


운혁이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윤희가 보였다.


스무 살 시절 그때 윤희의 모습이었다.


“운혁 씨.. 오랜만이에요.


저 윤희예요.


기억하시죠?


네. 그럼요.


언제나 기억하고 있었어요.


언제나요…


늘. 전 윤희 씨랑 함께 했는걸요.


윤희는 운혁의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저도 운혁 씨 항상 생각했어요.


윤희는 운혁의 손을 잡았다.


윤희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운혁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윤희는 운혁의  장례를 치렀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혁의 전화기엔 윤희의 반찬가게 전화번호뿐이었다.


윤희는 운혁을 동해 마을 앞 섬진강에 뿌렸다.


운혁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 반찬가게로 편지가 도착했다.


운혁이 남긴 유언장이었다. 


윤희 씨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네요.


대학교에 입학하던 첫날 기차 안에서 윤희 씨를 봤어요.


알 수는 없지만 윤희 씨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고, 


윤희 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윤희 씨를 찾아 동해마을을 찾았던 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섬진강을 바라보던 일


모두 기억 속에 각인되었답니다.


몇 번이나 윤희 씨를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제가 윤희 씨를 찾았을 때는 이미 결혼을 했었다 군요.


다시 구례에서 윤희 씨를 만났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윤희 씨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고백하고 싶어요.


윤희씨 항상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늘 보고 싶었어요. 항상 건강하시고 잘 사세요. 


운혁은 자신에게 남은 모든 재산을 윤희에게 남겼다. 


 윤희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반찬 가게에 처음 운혁이 들어왔을 때 


모른 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잘 가요..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대….   ...  끝


=====================


윤희와 운혁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종결 합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윤희와 운혁의 사랑도 멀리서 보면 희극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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