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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티잔 Oct 24. 2024

참교의 키드의 생애 9편 도쿄

그들은 곧 동거를 시작했다


9. 도쿄

도쿄의 봄은 매화로 시작해서 벚꽃으로 이어졌다. 나경은 일본에서 생활이 즐거웠다. 해야 할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했다.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학교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부를 잘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딱히 하고 싶었던 공부도 아니고 관심이 가는 분야도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가라는 과에 입학했고 그저 그런 학점을 받았다.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도쿄에 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나경은 종종 군대에 있는 수현에게 편지를 써볼까 생각했지만, 하지 않았다. 벚꽃이 피면 수현과 함께 걸었던 그길과 그시절이 생각났지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수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경은 일본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도 나경처럼 학생이었다. 그들은 곧 동거를 시작했다. 도쿄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은 니시하라이근처였다. 그들은 쉬는 날이면 아라강을 산책했다. 주말에는 많은 아이들이 야구를 했고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의 치열함과 다른 일본 생활의 나른함이 주는 평화가 좋았다. 역사 민중 독재 권력 해방 이런 단어들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비켜서 있는 지금이 나경은 좋았다.

아라강은 이타마현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스미다강(隅田川)과 나뉘어 도쿄만으로 흐르는 길이 173km 강이다. 일본에서는 강폭이 가장 넓은 강이었고 수도 도쿄로 흘러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서울의 한강 같은 강이었다.

나경은 여기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크면 야구하는 아이를 보러 오고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고 때로는 조깅하거나 이자카야에서 남편과 술 한잔하는 평범한 생활을 꿈꿨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남자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나경은 소심하지만, 배려심 많은 그가 좋았다. 하지만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일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는 나경은 결국 그 남자와 헤어졌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다시 수현이 생각났다.

한국으로 돌아가 수현을 만나야겠다고 나경은 생각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수현은 1년 동안 공사판을 전전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집회장이 아니라 도서관을 찾아갔다.

한때 자신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귀퉁이에 쌓여 있는 먼지 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현은 달랐다.

노태우 정권이 끝난 학내 분위기는 더 이상 학생운동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시기였다.

김영삼 정권은 학생운동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과거의 방법에서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학부제였다.

학생운동의 기본이 되는 것은 학생회였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학생회를 찾아오기 마련이고 학생회 활동이나 엠티를 통해 친해지게 되고 그러다가 집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만든 5.31일 교육개혁안으로 학과가 사라지고 학부제로 전환되면서 신입생들에게 학생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학생회 역시 힘을 잃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수현은 학부제를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수현이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던 학생들도 운동권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제대하고 복귀한 학교는 더 이상 그런 응원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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