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이미 산으로 넘어가 어두웠다.
단편소설 “뱀사골”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매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쉽게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없었다. 봄이면 산으로 가고 여름이면 바다에 갔다. 가을이 오면 길을 걸었고 겨울이 오면 또 산에 올랐다.
겨울 산은 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해 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지리산 뱀사골로 향했다.
남원에서 뱀사골에 가는 버스는 눈 내린 여원재를 겨우겨우 기어가듯 올랐다.
운봉을 지나 인월을 지난 버스는 그나마 있던 승객을 모두 내려놓았다.
뱀사골에 도착했을 때 승객이라고는 나 혼자뿐이었다.
“요로코롬 추운디 산에 가시라고요” 버스 기사가 물었다.
“네”
“고닥새 눈이 허발라게 오게 생겼는디....위험하지 않을랑가요? 버스 기사는 내가 걱정스러운지 다시 물었다.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겨울 산에 익숙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나는 배낭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뱀사골계곡 옆 오솔길 따라 화개재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사람이 올라간 흔적이 없었다.
산길로 접어들고부터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며 산으로 향했다.
뱀사골 산장에 자면 되니까….
그리 멀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길은 생각보다 멀었고 힘들었다.
눈이 내린 산길을 미끄러웠다.
나는 몇 몇번 넘어지고 나서야 겨우겨우 올라갔다.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이미 산으로 넘어가 어두웠다.
.
산장에는 삼십 대 산장지기와 나 이렇게 둘 뿐이었다.
늦은 저녁을 막 먹으려고 하는데 등산객 한 명이 도착했다.
그는 검은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이런 눈길에 구두를 신고 올라오셨어요?”
“네….”
“미친놈 같죠”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그는 웃었다.
“어찌 그 차림새로 여길 왔어요?”
그는 술집에서 일한다고 했다.
하던 일이 잘못되었고, 도망치든 산에 왔다고 한다.
그는 허둥지둥 뱀사골에 왔고
아무 생각 없이 산에 오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 댁은 뭐 하러 이런 날씨에 여기까지 왔소?”
“저도 별생각 없이 왔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도 되고….
“우리 아버지는 중이요”
“중인데 결혼해서 나를 낳았잖소?
”절이 답답해서 고등학교 때 집을 나왔소.
몇 년을 대충 살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소.
이 술집 저 술집 전전하며 웨이터도 하고 뭐 요리도 하고
그리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지 뭐요?
아니 사실은 함께 술집에서 알던 여자가 있었는데….
네가 또 순정파 아니요!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요.
서로 사랑하고 뭐 그랬죠?
그런데요.
얼마 전에 헤어졌소….
외요?
뭐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인생 아니요!
그렇죠.
그래서 산에 갑자기 왜 오셨어요.?
어려서 내 친구가 지리산에 한번 가보라고 거기 가면
세상의 시름 반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왔소…
근데 배가 고픈데 밥 좀 주면 안 되겠소?
우리는 그렇게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그는 사라졌다.
밤새 함박눈이 또 내렸는데
그는 어디로 버린 것일까?
산장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그의 발자국을 확인할 수 없었다.
불현듯 그가 오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꿈을 꾼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산장에 있을 수 없었다.
내려가다가 그가 어떻게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산할까 하다가 다시 산으로 올랐다.
화개재에 올라가니 노고단에서 출발한 등산객이 보였다.
“혹시 양복 차림에 사내 한 명을 봤나요?”
“아뇨”
“그런 사람은 못 봤어요?’
“다시 걷다 보니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이 있었다.
혹시 양복 차림에 30대 남자를 봤어요?
“아뇨”
나는 다시 뱀사골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뱀사골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이 있었다.
“혹시 양복 차림의 30대 남자를 봤어요?
아뇨…. 그런 사람은 없었소?
그럼 혹시 산에 쓰러진 사람을 본 적은 없어요?
아뇨….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어요?
나는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럼, 그는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나는 다시 산으로 올랐다.
세석평전을 지나 장터목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천왕봉에서 일출을 봤다.
한겨울 천왕봉은 1초도 손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웠다.
얼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산에서 내려왔다.
백무동에 내려와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가 나왔다.
어젯밤 대전에 한 술집에서 여종업원이 살해 당했습니다.
범인은 함께 일하던 30대 남자로 현재 도주 중이며
남자의 고향은 남원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