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편소설 "애월"

수천수만의 새들이 해변가득 채웠다.

by 파르티잔

수천수만의 새들이 해변을 가득 메웠다. 폭풍을 피해 애월의 해변에 내려앉은 새들은 마치 날개를 가진 존재들을 위한 항구 같았다. 수현은 "날개를 가진 것들도 항구가 필요한가?" 혼잣말하며 무거운 배낭을 멘 채 터벅터벅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IE000851726_STD.jpg


어제 막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한 수현은 6천 원짜리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제주항에서 수현을 태운 택시 기사는 그가 돈이 별로 없다는 말에 능숙하게 "행복여인숙"이라는 곳에 내려주며, "여기가 근방에서 제일 싸요"라고 일러주었다. 여인숙 주인은 만 원을 받고 4천 원을 거슬러 준 뒤 사라졌다.


선원이나 노동자들이 주로 묵는 듯한 여인숙은 화장실과 세면대가 외부에 있었다. 제주는 따뜻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폭설이 내렸고, 온수가 나오지 않는 수돗물은 유난히 차가웠다. 그래도 두 평 남짓한 방은 따뜻했다.


늦은 밤, 라면이라도 끓이려고 물을 뜨러 나왔을 때 배에서 봤던 여자가 여인숙으로 들어왔다. 수현은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네", "좀 전에 배에서", "여기서 또 뵙네요", "네" 여자는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 방으로 사라졌다. 수현은 애월 해변을 걸으며 어젯밤 만난 그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도 인생의 폭풍을 피해 제주로 내려왔을까?'


수현이 무작정 남도로 향하는 배를 탄 이유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전화 때문이었다. "제주 사는 네 외삼촌이 한번 보자고 하더라." 수현은 의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한 번 만나본 삼촌이었다. 어머니는 제주가 고향이었지만 집안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고, 외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수현은 제주에 가본 기억이 없었다.


외삼촌의 존재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처음 알았다. '그런 외삼촌이 왜 나를 보자고 한 것일까?'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수현은 삼촌을 만난다는 핑계로 제주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폭설이 내렸고, 제주는 차가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여인숙에서 하루를 더 묵었지만 통행금지는 풀리지 않고 눈은 더 내렸다. 삼촌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수현은 삼촌의 주소를 보고 걷기 시작했고, 마침내 애월에 도착했다. 애월에 도착했을 때도 눈이 내렸고, 젖은 배낭은 더욱 무거워졌다. "한라산이라도 한번 가보려고 했더니…." 수현은 터벅터벅 눈 내린 도로를 걸으며 중얼거렸다.


"제설차도 없나, 이 동네는."

저녁이 되어서야 수현은 삼촌 집에 도착했다. 역시 삼촌은 집에 없었다.

문 앞에 붙여진 종이를 발견했다. "아버지 전화 받았다. 열쇠는 화분 밑에 있다. 쉬고 있어라. - 삼촌 -"

수현은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네."

방 안에는 어제 여인숙에서 본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아… 우린 좀 전에 봤던…."

"네…. 근데 누구세요? 여기… 제 아버지 집인데요."

"아… 그럼 우리 사촌지간이군요."

"아, 그러네요. 눈이 그렇게 내렸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아… 저도 걸어왔어요."

"아, 그렇군요.

이모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네…. 근데 삼촌은 어디 가셨어요?"

"죽었어요."

"네…? 아버지가 삼촌하고 이야기했다고 하던데요."

"정말요…? 이상하네요.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3년이나 되었는데요."

"근데…. 삼촌에게 딸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누구시죠?"

"저요…. 저는… 저는 동생인데요?"

"이름이 '고인혜'요."

"아… 그건 저희 엄마 이름인데요?"

"네…." 수현은 잠에서 깨었을 때 엄마가 수현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야…. 밥 먹어…. 헛소리 그만하고…. 삼촌이 너 좋아하는 갈치 보냈더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러닝크루 1편  트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