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수만의 새들이 해변가득 채웠다.
단편소설 "애월"
수천수만의 새들이 해변가득 채웠다.
새들은 폭풍을 피해 애월의 해변에 안착해 있었다.
만약 새들이 머무는 항구가 있다면
그날 애월의 해변은 새들의 항구였을 것이다.
날개를 가진 것들도 항구가 필요한가?
수현은 혼자 중얼거렸다.
수현의 등 뒤에 커다란 배낭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수현은 터벅터벅 걸었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어제 막배로 제주에 입도한 수현은 6천 원짜리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제주항에 내렸을 때 배낭을 메고 있던
수현을 태운
택시 기사가
" 저 돈이 별로 없어요"라고 말했을 때 택시 기사는 능숙하게
"행복여인숙"이라는 곳에 내려 주었다.
"여기가 근방에서 제일 싸요." 택시 기사는 수련을 내려주고
떠났고 여관 주인아주머니는 "6천 원" 이라는 말을 내뱉고 거스름돈 4천 원 남겨 주고 사라졌다.
여인숙에 인근에서 일하는 선원이나 노동자들이 묵는 것 같았다.
화장실과 세면대가 밖에 있었다.
제주는 따뜻하다고 했는데 그날 제주엔 폭설이 내렸고
온수가 나오지 않는 수돗물이 유난히 차가웠다.
그래도 2평쯤 되는 방은 따뜻했다.
늦은 시간 라면이라도 끓이려고 물을 떠 오려고 나왔을 때
배에서 봤던 여자 한 명이 여인숙으로 들어왔다.
수현은 힐끗 그녀를 바라봤다.
제주로 오는 배에서 그녀를 본 기억이 났다.
"안녕하세요"
"네"
"좀 전에 배에서"
"여기서 또 뵙네요"
"네"
여자는 "네"라고 대답하고는 방으로 사라졌다.
수현은 애월의 해변을 걸으며
어젯밤 만났던 그 여자를 생각했다.
그 여자도 인생의 폭풍을 피해 제주로 내려왔을까?
수현이 무작정 남도로 향해 배를 탄 이유는
갑자기 걸려 온 아버지의 전화 때문이었다.
"제주 사는 네 외삼촌이 한번 보자고 하더라"
"아니 삼촌이 왜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한 번 만나본 삼촌이었다.
어머니는 제주가 고향이셨지만
집 안 이야기를 자주 하는 분이 아니었고
엄마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수현은 제주에 가본 기억이 없다.
외삼촌이라는 존재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처음 알았다.
그런 외삼촌이 왜 나를 보자고 한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들었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삼촌을 만난다는 핑계로 제주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폭설이 내렸고
제주는 차가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여인숙에서 하루를 더 있었지만
통행금지는 풀리지 않고 눈은 더 내렸다.
삼촌에게 전화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현은 삼촌의 주소를 보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월에 도착했다.
애월에 도착했을 때도 눈이 내렸고
젖은 배낭은 더 무거워졌다.
"한라산이라도 한 번 가보려고 했더니…."수현은 터벅터벅 눈 내린 도로를 걸었다.
"제설차도 없나. 이 동네는"
저녁이 되었을 때쯤 수현은
삼촌 집에 도착했다.
역시 삼촌은 집에 없었다.
"아버지 전화 받았다.
열쇠는 화분 밑에 있다
쉬고 있어라." - 삼촌-
문 앞에 붙여진 종이를 보고 수현은
열쇠를 찾았다.
"누구세요?"
"네"
아…. 여긴 제 삼촌 집인데요.
아…. 들어오세요.
방에 들어가 보니
그제 여인숙에서 본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아…. 우리 좀 전에 봤던….네….근데 누구세요?
여기…. 제 아버지 집인데요.
아…. 그런 우리 사촌지간이군요.
아. 그러네요.
눈이 그렇게 내렸는데 어떻게 여기까지….아…. 저도 걸어 왔어요.
아. 그렇군요.
이모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네….근데 삼촌은 어디 가셨어요.
삼촌은 죽었어요.
네….아버지가 삼촌하고 이야기 했다고 하던데요.
정말요….이상하네요.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3년이나 되었는데요.
근데…. 삼촌에게 딸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누구시죠?
저요…. 저는 ........저는 동생인데요?
이름이 "고인혜"요.
아…. 그건 저희 엄마 이름인데요?
"네…. "수현은 잠에서 깨었을 때 엄마가 수현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야…. 밥 먹어…. 헛소리 그만하고….삼촌이 너 좋아하는 갈치 보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