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테크 산업의 정책, 규제, 전망, 그리고 뒷이야기를 전해주는 타운홀 테크 뉴스레터 2021.11.1에 실린 글입니다. 뉴스레터는 여기서 구독하실 수 있어요.
CBDC :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약자입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입니다. 전세계 중앙은행의 80%가 CBDC 발행을 위한 연구나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하는 이유 :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면서 중앙은행이 여기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구요. 공신력 있는 새로운 지급결제수단을 만들어서 '현금없는 경제'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글로벌 트렌드 : 중국(2020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CBDC 시범사업을 하고 있고, 2022년 2월까지는 CBDC를 본격 발행할 예정입니다. 중국 정부가 알리페이, 위챗의 권력을 빼앗아오기 위해 CBDC를 발행한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미국(보스턴 연준이 MIT와 같이 연구하고 있는데,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 한국은행도 CBDC 발행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모의실험도 하고 있어요.
우울한 시나리오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아직은 모릅니다
은행 역할 축소 : 기존 은행예금의 일부가 CBDC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만약 CBDC에 이자가 붙는다면, 은행예금이 더 빠르게 줄겠지요. 그러면 은행은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서 예금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출규모를 축소해야 합니다. 수익성이 나빠집니다. 수신 부족에 내몰리면 MMF나 CMA를 수신해서 그것으로 대출이나 해외자산운용을 할 수도 있습니다. 증권사와의 경계가 흐릿해지네요.
중앙은행 비대화 :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한국은행이 은행에 추가로 대출해주면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한국은행이 민간은행에 갑질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대출해줘라~ 저기 대출해줘라~" 라면서 말이죠.
민간 지급수단의 퇴장 : 사람들이 한국은행이 발행한 CBDC로 결제하면, 민간 지급수단인 신용카드나 XX페이 같은 것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현금을 제외한 모든 지급수단은 지급과 결제의 시차가 있는데요. 이 시차를 메워주고 있는것이 민간 지급수단입니다. 만약 CBDC가 발행되면 이 시차가 거의 없어지기 때문에, 신용카드나 XX페이의 역할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확정 아님 : 한국은행이 맘대로 할 수는 없는 사안입니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에요. 국회와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이 한국은행의 공식 입장입니다.
한국은행법 개정 필요 : 한국은행법 제28조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심의.의결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CBDC 발행 근거를 넣어주거나, 최소한 현행법과 충돌이 없게 개정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금통위 심의.의결 사항 중 '한국은행권 발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화폐의 발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으로 바꾸면 CBDC 발행의 법적 근거가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법 제정 필요 : 필수는 아니지만, 발행 근거 뿐 아니라 CBDC의 디테일을 법에 규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디테일을 정하지 않고 시작하면 대혼란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입법 문제이므로 국회 심의 필수 : 사회적 합의를 모으고 법안을 마련하는데 3~4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기업, 개인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니 꽤나 시끄러울 것이고, 쉽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개헌하는 것만큼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 차원의 준비 : 이주열 한은 총재의 발언으로 미루어 보아, 정부와 국회가 도입 결정을 해주면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이 기술적/제도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국회 입법 : 서병수 의원이 CBDC의 발행근거를 신설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지난 9월에 발의했어요. 그러나 정황상 한국은행과 교감 하에 발의한 건 아닌 듯 합니다. 서병수 의원이 발의한 한국은행법에 대한 반응 을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소엔 조용한 사이트인데 CBDC 반대 의견이 1만건 이상 달려있습니다.
2021.8~2022.6 모의실험 : 한국은행이 카카오의 자회사인 그라운드X와 함께 CBDC 모의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모의실험 내부 상황은 외부에서 알기 어렵습니다만, 한은이 지난 5월 입찰 공고한 CBDC 모의실험 연구사업의 입찰제안서에 드러난 사업 구조를 잠깐 확인해보겠습니다.
1단계(2021.8~2021.12) 실험
1-1 환경조성 : 중앙은행과 참가기관이 공동으로 거래 검증 및 원장 기록 권한을 보유하도록 허가형 분산원장을 구축합니다. CBDC 모의실험 환경을 클라우드에 마련합니다.
1-2 기본업무 구현 : CBDC 제조‧발행‧환수, 참가기관 전자지갑 발급, 이용자 전자지갑 관리, 예금과의 교환, 송금 및 대금결제 등 민간주도의 CBDC 유통에 필요한 기본 업무를 구현합니다.
2단계(2022.1~2022.6) 실험
2-1 신기술 적용가능성 검토 : 프라이버시 강화(Privacy Enhancing Technology),오프체인 통신 프로토콜, 분산원장 확장성 (이종 분산원장 연계 등), 전자지갑 키 관리 등과 관련된 최신 IT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합니다.
2-2 CBDC 업무 확장 : 스마트계약 개발 및 관리, 법원의 집행업무 지원(CBDC 동결 및 강제이전) 등 중앙은행 관련 업무의 기능적 확장, 국가간 송금, 디지털자산 구매, 오프라인 결제 등 유통업무를 확장하고 AML/CFT 등 관련 규제 준수 방안을 마련합니다.
2-3 테스트 설계 및 수행 : CBDC 단위업무의 정상 처리 여부, IT시스템의 성능(거래처리 속도 등), 안정성, 보안성 등을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수행합니다.
여론수렴 작업 : 2022년 6월 모의실험이 끝나면, 한국은행이 보고서를 내고 의견수렴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때 타운홀 핀테크, 타운홀 블록체인에서 보고서 내용을 정리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반대 의견들 : 다른 가상자산 가격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사이버 보안, 해킹, 프라이버시, 국가의 통제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화폐개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 돈을 못쓰는 것이냐"부터 해서, 아주 근본적인 질문들이 쏟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입법 :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 때쯤이면 CBDC라는 뜬구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 디테일한 텍스트의 형태로 볼 수 있게 됩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2024년 4월 전에 입법을 하지 못하면 모멘텀을 다시 찾는 데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사소한 규제 하나 만드는데도 몇년 걸리는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개헌 문제도 그렇습니다. 국회가 4년에 한번씩 구성될 때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거든요.
지난 9월 15일 금융연구원 세미나에서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의 발언을 소개해드립니다. 상당히 비관적인 톤입니다.
"BIS(국제결제은행) 분위기를 좀 말씀드리면, BIS CPMI 회의에 각국 중앙은행 금융결제국장들이 모인다. 그 중 1/3은 경제학자, 1/3은 변호사, 1/3은 IT 전문가다.CBDC 얘기가 나오면 변호사들은 굉장히 비관적이고, IT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분위기이다. 업계동향이다"
"전세계 중앙은행의 80%가 CBDC 연구를 하고 있지만, 절반은 뭔가에 홀려서, 절반은 억지로 남들이 하니까 하고 있다. 연구를 하면서도 이걸 언제 발행하겠다, 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중앙은행은 거의 없다."
"한국은행에서 하고 있는 실험은 컨셉츄얼한 모의실험이다. 아마 그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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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들어온 국회에서 5년간 귀중한 육체노동+두뇌노동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러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 스타트업 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은 뉴욕대(NYU) MBA에서 공부하며 뉴스레터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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