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물 시설관리원입니다,

둘. 부속품은 시계방향으로 조인다.

by 행주

10층 짜리 회관 건물에서 시설관리를 시작한 나는 격일로 번갈아가며 교대근무를 섰다. 깜깜한 밤에 후각이 유독 예민해졌는데 외곽 순찰을 돌때 바람에 실린 냄새에 계절을 느낄 수 있었다. 계절의 냄새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몇 번의 계절을 반복했다는 것이고, 시설관리의 업무란 것도 그런 반복의 반복이었다.


설비 도면도 볼 줄 모르고 밸브를 잠그는 방향도 모르던 때 소위 사수는 절대 쉽게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거기에 지지 않으려고 밤새 건물 내에 있는 배관 비트를 기어다니며 몸으로 배관의 위치를 익혀갔다 . 한가지 재밌는 것은 후에 많은 건물을 경험했지만 도면과 실제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현장을 먼저 가보는 버릇은 나의 밥벌이의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


그때는 유독 건물에 라디에이터가 많았는데 따뜻한 온수의 방열로 훈기를 내야했기에 물이 흐르는 관은 열전도율이 좋은 동관을 많이 썼다. 동관은 전도율이 좋은 대신 강도가 약하기에 십년 쯤되면 터지기 일쑤였다.


사수는 터진 라디에이터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에 가까운 뜨거운 물을 보다가 나를 놀리듯 보며 교체를 해야하니 물을 잠궈보라 했다. 아마 밸브의 위치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 나를 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현장이듯 매번 야간근무의 밤을 가득 채웠던 비트 안의 순찰은 효과가 좋았다.


배관은 공급관과 환수관 그리고 스페어로 둔 바이패스관을 잠궈야하는데 비트를 기어들어와 잠그고 나오자 사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머쓱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뭐하고 서있어? 라디에이터나 빨리 풀어. 배고프다. 빨리 끝내자.


배관과 라디에이터 사이의 이음부를 풀어보라 했을때 파이프렌치를 들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이음부가 고착된 상태라 두 방향 다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사수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공구질도 못하는 놈이 잘난체 하냐?


내 손에 쥔 파이프렌치를 뺏고선 시계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힘을 주며 여러번 끊어서 풀어내는 사수에게서 시계 방향은 조이고 반대 방향은 풀린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 깨우쳤다. 유레카. 나는 그 후 만번의 유레카를 불렀다.


그 사수는 껌벙이 형이었다. 왜 껌벙이라 불렀는 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껌벙이라 불렀다. 형이 나의 이름을 불러준 것은 일년이 지나서였다. 장마철 폭우 속에 역류된 하수도를 뚫고 감나무를 전지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형을 업고 병원으로 뛰었고 기록적인 폭설에 며칠째 눈을 치우고 다시 쌓인 눈을 치우다가 언 몸을 짬뽕으로 녹인 후였다.


형은 늘 나의 야간 근무 때 와서 저녁을 얻어 먹고 갔다. 특전사 출신과 지역의 유명 은행의 정직원이었던 이야기는 늘 저녁 후 혼자 마시던 막걸리 한사발의 안주 같았다. 유독 여름 냄새가 많이 나던 밤 형은 나에게 말했다.


사실 여기는 종착지 아이가.


그런가. 그에게는 종착지. 아마 과거의 영광 속 은행원이 프랑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었다면 당직실 소파에 기댄 채 치킨과 막걸리를 먹던 그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된 과거의 황제일 것이다.

그의 말 속에 있는 모호한 계급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과거가 없고 그와 있던 그 밤이 출발지였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날 형은 출근하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소장에게서 전해들은 말로는 정수기 영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파이프렌치를 돌리는 방향과 사수의 방향성을 알려주었지만 난 내 후임이 들어온 후 그와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선후임의 호칭부터 없애고 서로를 부를 때 기사님이란 말로 그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일년 경력이 뭐 대수인가. 우린 어차피 긴 종주에 같이 선 처지일 뿐이었다. 나는 업무 매뉴얼을 만들고 주간에 매일 같이 순찰을 돌면서 현장 인계도 했고 젊은 객기도 받아줬다. 서로 오해도 있었지만 또 쉽게 풀었고 훗날 나는 기계로 그는 전기로 분야를 나눠 진로를 개척 했으니 윈윈인 셈이었다. 우리는 그랬다. 마치 예외처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야 조여지는 이음부가 있듯.


그리고 또 1년 후 이직을 할 때 좀 더 큰 센터로 가게 되었다. 껌봉이 형을 그 이후 만날 순 없었지만 가끔 내 다이어리에 그의 이름을 적어볼 때가 있다. 가끔 생각나는 것이 짙게 머무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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