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집의 터줏대감
선이가 속리산의 싱그러운 숲길을 걷던 중, 우거진 수풀 사이로 낡았지만 기품이 서린 기와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문 옆에는 투박하면서도 힘 있는 필체로 '도깨비집'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는 누군가 정성껏 차려놓은 시루떡과 막걸리 한 사발이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이 터를 지켜온 주인에게 바치는 이웃들의 소박한 공물인 듯했다.
담벼락 너머를 살피던 선이는 공중에 양반다리를 하고 둥둥 떠 있는 기이한 존재와 마주쳤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탄탄한 상체에 강렬한 붉은 바지 하나만을 걸친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가장 먼저 선이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의 콧잔등 위에 깊게 패인 세 개의 고랑이었다. 마치 대지진이 훑고 지나간 험준한 골짜기를 얼굴에 옮겨놓은 듯한 그 기이한 형상은, 그가 살아온 수천 년 세월의 굴곡을 묵직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허허, 문패 보고 놀랐느냐? 여기가 바로 그 소문난 도깨비집이니라."
선이가 발소리를 죽였음에도 터줏대감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짐짓 엄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슬며시 뜬 눈가에는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는 인생살이의 거친 고개를 넘다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도움을 청하면, 그 세 개의 깊은 골짜기를 만지작거리며 지혜를 빌려주곤 했다.
선이는 터줏대감의 험상궂으면서도 정겨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어르신, 왜 콧잔등에 골짜기(고랑)가 세 개나 깊숙이 패여 있나요? 그렇게 인상을 쓰고 계시면 숨 쉬기 불편하시진 않으세요?"
선이가 장난스럽게 묻자 터줏대감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호탕한지 주변의 나뭇잎들이 파르르 떨렸다.
"불편하고말고! 하지만 이 고랑들은 사람들이 평생을 씨름하며 스스로 파고드는 세 가지 마음의 수렁—집착의 늪, 미련의 골짜기, 그리고 두려움의 단층—을 뜻하지. 나는 이 고랑들을 내 얼굴에 깊은 주름으로 새겨두고 매일 스스로를 다스린다네. 내가 먼저 이 깊은 고랑들을 '이해와 용서'로 메워 평지로 만들어야, 길 잃고 찾아오는 남들을 도와줄 것 아니냐?"
그는 자유분방한 한량 같으면서도, 정작 삶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이제는 허허실실 웃어넘기는 '진짜 도깨비'의 정수(精髓)를 보여주고 있었다. 선이는 그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신통력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짐을 탈탈 털어버린 덕분에 영혼의 밀도가 깃털보다 가벼워진 결과임을 직감했다.
"그럼 문 앞에 차려진 저 맛있는 음식들은 어르신이 다 드시는 건가요?"
"에끼, 이 사람아! 내 몸이 이렇게 가벼운데 저 무거운 것들을 먹어서 무엇하겠느냐? 저건 내 차지라기보다, 숲속 배고픈 짐승들의 잔칫상이 되곤 하지. 덕분에 이 집 터는 사시사철 산짐승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네. 하하하!"
터줏대감은 콧잔등의 첫 번째 고랑인 '집착'을 슥 문질러 보였다. 선이는 굳이 많은 말을 섞지 않아도 그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있었다. 세상의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 대접에 머물지 않고 다시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마음. 그것이 바로 터를 지키는 어른의 품격이었다.
두 사람은 눈빛으로 깊은 인사를 나누었다. 선이는 그 당당하고 여유로운 터주의 미소를 가슴에 새기며 다시 길을 채비했다.
[도깨비 윙크]
"중력은 무거운 놈만 골라서 괴롭히는 스토커야. 가벼워지면 놈도 널 못 잡지."
물리학자들도 골치 아파하는 게 있어. 거대한 ‘중력(현실)’과 미세한 ‘양자(가능성)’가 서로 섞이지 않고 싸운다는 거야. 중력은 ‘질량(무게)’을 가진 것만 귀신같이 찾아내서 바닥으로 쇳덩이처럼 잡아매거든. 우리가 땅에 붙어사는 건 몸무게라는 질량이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져. 빛(광자)처럼 질량이 ‘0’에 가까워지면 중력의 사슬을 끊고 파동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단다. 터줏대감이 공중부양을 하는 비결? 간단해. 욕심, 미련, 두려움... 이 세 가지 마음의 질량을 싹 비워냈기 때문이야.
너는 지금 어때? 혹시 고민의 무게 때문에 중력에 잡혀 꼼짝 못 하고 있니? 마음의 주머니를 뒤집어서 탈탈 털어봐. 네 존재가 입자가 아니라 ‘파동’처럼 가벼워지는 순간, 지긋지긋한 세상의 중력도 더 이상 널 붙잡지 못할 테니까.
비워야 양자가 된다. 훨훨! (찡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