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척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이 잘되는 것을 볼 때도 부러움이 먼저 나서는 감정이 아닌가. 진짜 친구를 알아보는 방법에도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는지가 그 척도라고 하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꽤나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면 항상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러워할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질투라는 감정에 휩쓸려 상대를 밉게 볼 때도 있었다.
10년쯤 전이었던 것 같다. 동네 엄마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꽤나 큰 동네 모임이 생겼다. 엄마들의 모임이라 그런지 자식을 내세운 은근한 경쟁을 하기도 하는 모임이었다.
그중 한 엄마는 아이의 학업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엄마였는데 그 아이가 받지 못한 상장이라도 다른 아이가 받는 날에는 앞에서는 잘했다 축하하고 뒤에서는 험담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다 보니 모두 겉으로는 친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시기와 질투가 가득했다. 나 역시 이런 관계 속에 깊이 들어가 보니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질투하기도 했다.
사적인 자리도 자주 가지다 보니 부부동반으로 여행도 다니고 술자리도 자주 가졌다. 다섯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부모님 소유의 집에 문제가 생겨 골머리를 앓던 한 엄마에게 식사도중 전화가 한통 걸려왔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물론 그런 일에 까지 질투를 하거나 안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소식을 전해 들은 또 다른 엄마의 반응에 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가 좋은 소식을 듣게 된 엄마를 안아주며 너무 잘됐다고 박수도 치고 통통 점프를 뛰며 기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 둘의 관계 역시 친하게 지내면서도 서로를 견제하고 질투하던 사이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운 광경이라 생각했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 눈에는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있다고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 하나에 그 관계에서 생겨났던 안 좋은 감정들은 대부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부자인 친구도 부럽고 예쁜 친구도 부럽고 손재주가 좋은 친구도 부럽던 내게, 누가 잘되면 배가 아프기도 하고 가끔은 질투도 하던 내게,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저렇게 기뻐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새로운 장면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머릿속에 박혔던 것 같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정말 잘됐을 때 나는 저렇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친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 친구에게도 이렇게 진심으로 기쁜 일을 함께해 준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에선 순식간에 많은 것들이 고쳐졌다. 그때 상황이 누구와 비교해서 누가 잘되었다거나 하는 그런 것을 축하하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의 일에 진심을 담아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한다. 여전히 못난 마음이 고개를 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날의 일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는 대신 진심으로 그 성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또 나 자신에게도 더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는 것은 단순히 그 타인을 응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까지도 풍요롭고 성숙하게 하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는 결국 나 자신을 괴롭게 만들기만 할 뿐.
진심으로 기쁨을 나눌 수 있을 때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유대감은 더욱 돈독해진다. 진심 어린 응원이 가지는 힘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