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Sep 28. 2024

나는 누구인가?

자아 찾기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춘기가 무엇인지, 2차 성징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는 나지 뭐! 나는 누구인가 대체 무슨 소리야?' 하면서 크게 책 속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 책을 읽던 시기에 나에겐 아직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더 생각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에게 한창 첫 생리가 찾아오고 예민한 시기가 올 때도 나는 이상하리 만큼 오랫동안 그런 소식이 없었다.  보통의 친구들보다 2~3년이나 늦게 2차 성징이 나타났고 사춘기가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찾아온 덕분(?)인지 나는 꽤나 폭풍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사춘기가 찾아온 그 당시 IMF가 겹치면서 집안의 경제 상태는 쌀을 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 그런 덕분에 부모님은 더욱 예민해지고 더욱 다툼이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데 우리 집엔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화를 냈고, 아버지를 극도로 무서워해 평소 말 한마디 거는 것도 잘하지 못했던 나는 용기 내어 말한 육성회비를 거절당하며 학교까지 그만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IMF의 여파 때문인지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이 늘어났고 담임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따로 불러 상담을 하셨었다. 학교를 다니기 싫은 건 아닌지 가정형편은 어찌 되는지 상담 후 학교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지원해 준다며 학교를 그만두지 않을 수 있으니 걱정 말아라 하셨고 상담 내내 울다가 겨우 진정하고 서류 몇 장을 받아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학교는 계속 다닐 수 있었지만 이때 충격 때문인지 안 그래도 너무나 싫었던 아버지가 이제는 형체가 보이는 것조차 치가 떨릴 만큼 미웠다. 엄청난 반항기가 시작되었다.


"학교? 아빠가 다니지 말라던데?"

등교를 거부하고 방황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성인이 되기도 전에 술을 마시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도 했고 출석일수가 모자라 유급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때는 어찌 그리 아무 생각 없이 하루살이처럼 내일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하리만큼 멍청했다.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썩으셨을지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들이 날 이렇게 만든 거라며 원망만 하던 시기였다.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는 늦게 찾아온 만큼 끝도 늦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방황은 계속 됐고 어쩌면 그 비슷한 방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처럼 그렇게 바보같이 멍청하게 살아가고 있진 않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나 자신을 연구하는 시간을 꽤나 보내고 난 이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이란 없다는 듯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희망 가득한 내일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웃고 싶지 않아 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