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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개 Feb 21. 2022

친구, 나의 인터뷰이가 돼라.

INTRO : 마지막이자 두 번째  


어찌 됐든 시간은 흘렀다. 


어느 날, 야근을 하는데 주변이 문득 조용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도 없었고 적막이 사무실에 맴돌았다. 나는, 참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밀린 일들이 많았지만 하면 되는 거였고 나에게 달린 일이기에 무기력하지 않았다. 키보드를 톡톡 두드렸다. 


부모들이 애들을 다 키웠다 싶으면 동창회를 그렇게 찾는다고 한다. 한숨 돌리며 여유롭게 예전을 떠올리는 것이다. 비유가 요상하지만 어쨌든, 그때의 나도 예전을 생각했다. 특히 그때 무수히 들었던. 거지 같지만 신세를 진 위로를. 그건 정말 당연한 일이었을까. 나는 궁금해졌다. 


신세를 진 이유는 위로가 실제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왜 위로가 되었느냐. 나만의 사건이 아니니 이유가 너에게 있는 것도 아님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거지 같았나. 나는 이 감정에 대해 깊이 고찰한 바 있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무기력하다. 안팎에서 찌르고 긁어서 힘없는 와중에 조금은 평안해졌지만 그것이 당연하다는 판단은 왠지 어딘가에 갇혔다는 억울함이 들게 했다. 그럼에도 세상의 작은 모퉁이라도 엎어버릴 힘이나 파헤칠 기력이 없었다. 나는 포근한 무기력을 껴안고 휴식을 취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을 때 오는 묘한 편안함이 있다. 


거지 같다고 외치는 나의 분노는  좌절과 무기력에서 기인했다. 왜, 당연히, 그래야 하는가. 그렇게 생겨먹은 세상이라면 세상을 바꾸면 되잖아. 거친 K-언어 세계에선 죽는다 뒤진다 죽여버린다가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그렇다고 내뱉은 모두가 말을 뱉자마자 뛰어내리거나 칼을 꽂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당시의 죽겠다엔 단전에서 올라오는 뭔가가 있었다. 모두가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부둥부둥해 줄 필요는 없으며 그걸 바란 적도 없다. 모두가 각자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누군가-혹은 무언가에게 묻고 싶다. 


그러다 뭔가를 알아보고 싶어 졌다. 여전히 지친 데다 조금 낡기까지 했지만 어딘가 푹푹 구멍이라도 뚫어볼 힘은 남아있으니까. 며칠 후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 


**


(모) 인터뷰이 구합니다(집)


✔️ 모집 기준: 내 친구. 즉, 내 얼굴을 알고 이 블로그 글을 볼 수 있는 사람. 

✔️ 현 직무 혹은 직장에 만 1년 이상 근무한 자

✔️ 자신의 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 

(완벽하게 알지 않아도 좋습니다.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넘겨주시면 됩니다)

✔️ 인터뷰어(me)와의 대화가 인터넷, 책자 등으로 공개되어도 괜찮은 자

 (대화하면서 나오는 사생활 언급은 당연히 제외합니다. 그 정도 상식은 있는 여러분의 친구 승개)


연락 주세요 친구들아.

승개 드림


**


많은 친구들의 시작이 나와 맞닿아있다. 그들 대부분은, 나와 마찬가지로. 사회인이 된 지 5년이 채 안됐다. 새내기는 분명 아닌데, 그렇다고 뭔가를 꿰뚫고 있는 건 아니다. 아주 애매한, 병아리도 닭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닭도 아닌… 병아리에서 중닭으로 넘어갈 듯 말 듯한 그런 시기에도 이름이 있을까? 비유할 건덕지도 없지만 나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일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과 기준을 쌓아가는 시기. 중심을 잡아가는 단계… 말이라면 얼마든 붙일 수 있으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각자 조금씩 낡고 병들어있었지만 그래도 하나같이 예전보단, 그때보단  살만하다 했다. 각자의 고민과 결정과 시간들, 그리고 추가로 각자의 이것저것. 그 모든 것들이 겹쳐지고 섞여 하나의 태도가 되고 앞으로 할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거지 같은 경험은 잊을수록 좋은데 그런 건 징글징글하게 붙어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없던 일처럼 여기자 약속해도 문득문득 그때의 자국이 묻어 나올 때가 있다. 기분 더럽다.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너는 첫 직장생활은 어땠니. 술안주로 짤막하게 들었던 일화가 있을 거고, 알았던 세월보다 깊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때보다 낡았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직장인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거다. 그것들이 꼭 벌어졌어야 하는 일이었을까, 하고. 그리고 만약 그 거지 같은 위로가 기어이 사실이고, 그 따위가 당연한 세상이라면… 조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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