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다이어리, 기준을 만들기 전 체크할 사항
살짝 늦은 감이 있지만 한 번 사면 또 다른 걸 사고 싶은게 다이어리. 그러다 1월도 아닌 전년도 12월만 깔짝대고 버려두면 후회만 남는다. 요즘은 다양한 양식과 소재를 모두 '다이어리'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1년 기록을 위한 한 권의 노트만을 칭하기로 한다.
기록하기로 맘 먹은 후 무조건 하는 것이 바로 무슨 다이어리를 살까, 라는 고민이다. 나는 보통 다이어리나 노트 등 특정한 '권'으로 셀 수 있는 걸 '기록 소재'라고 부르는데, 10여년 동안 다이어리를 사고 버리고 사고 버리고 쓰고 후회하고 토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나름) 즐거웠지만 무더기로 남은 종이더미 속에서 깨달은 건, 특정한 기준 없이 서치만 하는 건, 향상보단 낭비에 가깝다는 것이다. 나만의 기준을 만든 후에는 선택폭을 조정할 수 있고, 대안도 체계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낭비될 일이 확 줄었다. 나의 기준이 뭔지 말하기에 앞서, 기준을 만들기 위해 고려했던 몇 가지 사항들을 소개한다.
선택 기준을 만들기 전, 고려해야 할 것들
무엇을 적을 것인가? To Do - Diary
어떻게 적을 것인가? 도구와 구성
왜 적는가? 기록의 목적
가장 먼저 정해야 할 사항이다. 무엇을 적을 것이냐에 따라 소재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투두는 해당 항목을 행했을 때 바로 체크가 되어야한다. 아침에 리스트를 적어뒀다가 점심에 할 일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기 편해야 하며, 크기는 작고 두께는 얇아야 할 것이다. 각자 크기와 두께에 대한 기준은 다르겠지만, 가진 소재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어떤 것을 주로 적을 것인지 최소한의 구상은 필요하다.
나의 경우
보통 이야기하는 '다이어리'는 일기, 그러니까 diary를 위해 쓴다. '할 일'을 체크하는 것 보다는 '한 일'을 적는 용도라는 의미이다. 그날 일어난 일과 나의 생각을 적는다. 투두 체크용이 아님을 사전에 명확히 했기 때문에 핸디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집에만 놓고 다니니 타인이 읽을 일이 없다. 나는 주로 다른 사람이 보면 사회에서 매장당할 내용을 적는다.
도구
꾹꾹 눌러적는 타입이라면 잉크펜보다는 볼펜이 나을 것이다. 속기하는 타입이라면 잉크펜이 적합하다. 나는 많은 내용을 빠르게 적어야하는 필사의 경우 잉크펜을 사용하지만 보통 0.38 굵기의 볼펜을 주로 쓴다. 종이를 긁으며 적히는, 표면에 방울지지 않는 그런 펜을 좋아한다.
워낙 눌러가며 글씨를 쓰다보니 내지도 중요하다. 나는 내지 120g 를 제일 선호하지만 아카이빙이 목적이 아닌 드래프트 노트같은 경우엔 100g도 불평불만없이 쓴다. 대학생 때 많이 쓰던 몰스킨을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데, 내지가 한지 마냥 얇다랗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가격에 그런 종이라니... 있다면 신명나게 쓰겠지만 옵션이 넘쳐나는 요즘은 다른 노트를 사용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구성
온갖 브랜드에서 각종 다이어리가 쏟아지는 요즘, 12월만 되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먼슬리, 프리노트, 주간계획 등 다양한 구성이 있지만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체크하는 건 위클리의 구성이다. 다양한 구성 중 '두 번째로 나은' 건 고를 수 없지만 '제일 별로인' 건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이건 정말 취향인데 나는 워클리 한 칸의 가로 길이가 한 페이지 길이인 위클리를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디자인을 사용하는 분을 볼 때마다 어떻게 쓰시는지 너무 궁금하다. 혀가 길어서 일기 쓰다보면 텍스트로만 가득 채울때가 많은데, 한 문장을 쓰다가 지루해져서 골아떨어질 것 같다. 그렇다고 아싸리 투두리스트를 적기에도 너무너무 불편하다. 분노에 차서 푸세식 세로줄을 긋는 파국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보통 이렇게 생긴 위클리를 선호한다. 가로도, 세로도 충분한 길이라 무엇이든 적거나 그리거나 붙이기 좋다 .
그리고 구성에 대해 또 개인적인 취향을 덧붙인다면. 나는 타공 형식의 그 어떤 소재(aka 육공다이어리)도 사용하지 않는다. 내지를 마음껏 바꿀 수 있고, 티켓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에 혹해 한 번 사용했었는데 - 19년도 쯤이었나. 육개월 정도 쓴 다이어리가 스스로를 토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그에 대한 로망을 곱게 접었다. (내게) 맞지 않다는 걸 알고난 후 유행에 조금 심드렁해졌으며, 보다 알맞는 방식을 찾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19년도 소화불량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뭔가를 사기 전에 나의 사용 방식을 미리 생각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나의 경우
일기용 소재는 되도록 단권화를 하려고 한다. 사용하다 만 물건이 쌓이는 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나중에 확인하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보통 왼쪽 페이지를 쓰다가 옆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쓰면서 생각을 확장시키는데 스프링, 육공은 그러기 힘들다. 그래서 다이어리 뿐 아니라 기록을 위한 모든 소재로 보통 양장을 택하며, 한 권만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일기용 소재(=다이어리)는 특히나 꼼꼼하게 고르는 편이다. 이런 글을 쓸 정도로 말이다 육공은 나 빼고 모두가 솔찬히 쓰는 듯하다. 짧지만 강렬했던 추억으로 남기겠다.
이건 To do-Diary의 구분과는 또 다른 영역으로, '이 소재'에 '그 기록'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질문이 구매에 앞서 꼭 필요하다.
하나의 페이지에 뭔가를 적는내는 것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갖다 버리지 않는 한 남아있기 때문이다. 효용을 위해 노션이나 블로그에 옮기기도 하지만 적어낸 내용 자체가 콘텐츠가 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사실,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취향으로 부상한 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이렇듯 한 페이지를 특정한 테마로 꾸미는 것이 목적이라면, 적기 보다는 어딘가에 드래프트 해두고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와닥닥 꾸미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캘린더나 메모 어플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이 경우 기록 소재는 드래프트 용과 아카이빙 용. 두 개로 늘어날 것이다. 기록하는 과정은 너무나 즐겁고 그 과정에 각종 취향을 녹이는 건 목적 자체가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아카이빙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잊지않고 적어두는 것. 가려지거나 생략되는 텍스트 없이 최대한 담아내는 것. 배치보다 빠른 정리를 우선으로 하는 것. 물론 여전히 스티커는 못 참고 무용한 것들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일기만큼은 효율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사실 지치고 병든 직장인으로서, 너무나 많은 곰돌이와 쿼카에 조금 혼미해진 것도 사실이다.
내 다이어리의 목적은 이것이다. 한 눈에 모아볼 수 있는 내 일상의 아카이브. 모양새와 관계없이 적을 수 있는 건 그 날 다 적는다. 그래서 내 일기장의 어떤 날은 오른발로 썼나, 싶은 부분이 많다.
이런 고민이 마냥 귀찮지 않은 이유는 어느 때보다 나에 대한 탐구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타입인가? 주로 무엇을 선호하고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가? 문항부터 선택지까지 직접 만드는 수가공MBTI라 할 수 있다. 무엇을 적고, 어떻게 왜 적어야하는지 생각하면 자신만의 기준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생긴 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A5 양장노트
2. 심플하고 각 칸이 넓은 위클리.
3. 내지 120g
4. 고무밴드는 필수
일년 내내 이것 저것 적고 붙이려면 안정감이 필수이다.
5. 월요일 부터 시작
주말 기록을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이 붙어있는 먼슬리를 선호한다.
6. 표지에 년도가 적혀있기
같이 보관될 다른 다이어리들과 구분이 편했으면 했다.
이런 기준을 갖고 2022년 다이어리를 찾아댕기기 시작했다. 찾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찾지 못했다. 기존 사용하던 다이어리에서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것까지 보완할 다이어리 있을까 찾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종류가 너무 많아서 텐바XX에 들어갈때마다 정말 토할 것 같았다(마치 나의 19년도 육공다이어리처럼). 실물은 없는데 명확한 니즈는 있는 상황.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는 고민에 빠졌고 결정을 내렸다.
필요한데 없으면 만들어써야지 뭐.
2022년은 불렛저널로 간다.
그렇게 나의 불렛저널 핫데뷔가 확정되었다.
그것은 즐겁지만 머리터지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스스로 불러온..재앙에 짓눌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