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간 기록하며 찾은 '나'

누구보다 어려운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

by 승개

일기를 쓰며 좋은 건 내가 어떤 특성의 인간인지, 한정된 영역 안이라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다른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건 적는 내용 뿐 아니라 기록하는 행위 자체에도 해당된다. 15년 동안 일기와 각종 기록을 하며 알게된 나의 특성과, 이 특성을 알게됨으로써 아흔 살 인생 동안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정리해보려 한다.

* 나는 일기를 주로 보통 '다이어리'라고 부르는 양장노트의 위클리 부분에 적어왔다.


1. 나는 의식적으로 프리노트를 펑펑 써야한다.

아끼려고 사렸다가 쓰지도 못하고 비워둔 채 버린 적이 많았다.


이렇게 괜히 머리 굴리다 본전도 못 찾곤 했다. 뭐든 필요를 떠올렸을 때 바로 접해야 한다. 업무, 물건, 사람 등 모든 영역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미래에 모든 걸 미뤄두는 대신 지금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은 너무나 빠르고 내 몸은 한 개이다. 적재적소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맘 먹는다고 내가 하루에 천만원을 쓰고 노트 이억개를 살까? 나는 나를 아는데, 그럴 깜냥이 없는 인간이다. 그래도 방향성을 최대한 저 쪽으로 두어야 조금씩이라도 변하겠지. 내가 나를 다룰 방법을 깨닫는 중인 것 같다.


2. 나는 단권화에서 최대치의 효율을 발휘한다.

한 권에 하나의 테마만을 쓰면서 그렇게 여러 권을 쓰면 어떨까, 그렇게 꿈꿨던 어린 날이 있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어렸다) 정말 다양한 노트를 사고 찌지구리하게 쓰고 남기고 버리고 다시 다짐하는(우우~).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의 이상과 실제 특성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당연하지만 어린 시절이라면 크게 한 방 먹어야 알게되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말도 안되는 다양한 물건을 샀었는데 취향과 특성을 찾기 위해 필수로 거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게는 방정리부터, 크게는 업무계획까지. 첫 빠따(!)에 세세하게 정리하기보단 드래프트로 모아놓고 한 번에 체크하는 쪽이 늘 효율적이었다. 기록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소재의 home 역할을 하나 설정해두고, 생각나는 걸 두서없게나마 먼저 적어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덱싱(색인) 습관이 생겼다. 개인 프로젝트도 하고 회사 업무도 하고 집에서 들키면 감옥갈 내용의 일기도 써야하는 입장에서 정말 딱 하나만의 노트를 쓰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권수에서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기 위해 나름의 인덱싱 구조를 만들어서 활용했고, 이 구조는 지금도 계속 보완하며 신나게 쓰는 중이다.


3. 나는 귀염깜찍 '다꾸'에는 할당된 능력치가 '없다'

라떼는 네이버 카페에 다이어리꾸미기란 카페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라떼엔 정말 대단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와 페이스북 모두의 기능을 하고 있었달까. 거기서 다들 깜찍한 다꾸를 했기 때문에 나도 그런 식의 '다꾸'를 시도했다. 근데 막 그렇게 잘 되지 않는거다. 좋아보이는 도구를 사서 비슷하게 따라하다보니 나중엔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도 기록에 대한 기본적인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시들어졌어도 곧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온 자리엔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뽀샤시한 스티커들이 쌓여있었다. 정작 펜을 들게 만든 그 생각은 적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어린 시절에도 조금 비참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어린 시절의 나는 제법 쿨한 구석이 있었는지 그렇게 한 번 빡(?)친 이후론 검정펜으로만 다이어리를 적기 시작했다. 일기를 썼고 할 일과 한 일을 적었으며 적어가는 내용에 조금씩 분류가 생기며 나름의 구성을 잡을 수 있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나름의 구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쨌든 귀엽고 예쁜 물건을 고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보다 훨씬 더 즐겁고 재밌었다는 사실이다. 관심가는 영역이 생기면 커뮤니티를 찾게 되고, 그 곳에 이미 있던 사람들을 만나게된다. 나보다 먼저 왔을 뿐, 어찌됐던 '남'인데. 왜 그걸 정답이라고 생각했을가? 남을 따라하기만 한다면, 나의 근본적인 흥미는 사라지고 모방만을 위한 소비와 목적없는(그래서 무가치한) 탐구만 남는다는 걸 알았다. 자기계발서 오십억권에도 적혀있는 말이긴 하지만 실제 피부로 체감하니 치떨리게 와닿았다. 그 때의 비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걸 '못한다'는 것에서 온 울적함보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준 현타(!)가 컸다.


노력해도 안되는 부분이란걸 알았으면, 안하면 된다. 어쨌든 흥미가 있어서 관심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좇던 방향을 버리면 자연스레 내가 해볼만한 방향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해볼 만한 것을 시도하다보면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그에 따른 나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를 특화시킬 수 있다.


나의 경우 텍스트 주변을 귀욤지게 꾸미는 건 너무나 어려웠지만, 텍스트가 가진 정보 자체의 특성에 관심을 가졌다. 이를 어떻게 조합해서 전체 구성 배치에 적용시킬지가 더 즐거운 생각이었다.


'곰돌이 스티커를 붙이는 게 아니라도 난 잘하는 게 있다! 그리고 꽤나 즐겁기까지 하다!'




이렇게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사춘기 그리고 이십대 초반의 자존감 정립에 꽤나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순간순간을 살아가느라 몰랐지만, 지금 떠올리면 서사가 이어진다는 게 신기하다. 지금의 나도 십 년 후의 내가 보면 한 치 앞을 못보는 귀여운 순간을 살아가는 중일테지.


그래서 기록이란 것은, 몰랐던 나를 알아가고 그렇게 알아간 나를 성장시키는 취미 이상의 것이다.

앞으로의 기록은 어떤 나를 담아내게 될까?

호기심을 담아, 오늘도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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