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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개 Apr 05. 2023

우리 이제 헤어져요

콜록

안녕 로나. 나 승개야 당신의 숙주.


당신과 함께한 지 약 닷새째...


목구멍에서 시작해 눈 바로 밑까지 차례대로 기어올라온 너의 잔향 덕분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무참히 소진해버렸구나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안 트는 나인데, 너 덕분에 일주일 내내 풀난방을 돌렸어. 가스비 미리 고맙다.

물론 진짜 고맙다는 건 아니야. 그 정도는 알아들을거라 믿는다


뭐든지 글자로만 아는 건 의미가 없지.

인후통이라는 것이, 내 목과 코에 칼빵을 놓은듯한 고통이란 걸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노마스크의 나라 영국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우리

강원도 가서 마주친 게 운명이라면 운명일까

의미없는 만남은 없으니까.


당신 덕분에 얻은 게 많아, 라고 쓸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실상 얻은 건 약봉지와 차 봉지 뿐이네. 그래도 있긴 하지 않을까. 정말 하나도 없다면 나의 지난 시간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질테니.


너 덕분에 내가 어떤 차(tea)를 좋아하는지 알았어. 생강 들어간 건 다 별로더라.

그리고 잠이 보약이란 진리를 새삼 깨달았어. 이제 배짱좋게 날밤을 까는 일은 없을 거야. 이제 나이도 있으니까(^^b). 자중해야겠지.


남들 다 걸릴 때 안걸리고 지금 걸리는 덕분에

모두가 YES라고 할 때 나만 NO라고 해도 

거대한 흐름 안에 자연스레 YES가 될테니

일부러 미리 나서서 의견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이건 무기력과는 조금 다르지


뭣보다 나는 이제 약 1년치 면역을 갖게 되었잖아. 왜 1년인지 정확히는 몰라, 다들 그러더라구. 그런갑다 해.

우리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거 같아...

아침에 일어나니 코가 안 아파


기쁨도 슬픔도 정점을 지나면 희미해지는구나


언제든 잘 보내주는게 중요하겠지

과정이 체감되는 이별이라니 그건 또 다정하네


너의 다정함... 최대한 빠르게 발휘해주길.

안녕...


-너의 기간제 숙주 승개 씀...


*23년 1월 개인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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