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백수는 안할거다
입으론 조만간 때려친다면서 시키지도 않은 주말출근을 한 나의 친구들. 물론 나도. 오늘. 출근을 했다. 원래 계획은 어제였으나 외출한 일이 생긴 겸 오늘 다녀왔다. 나갈 준비도 에너지가 드는 일이기 때문에 효율을 따져야 한다. 월요일에 오지게 늦잠잘거다.
로또에 당첨된다면 뭘 할래? 괜히 각잡고 진지한 고민을 해본다. 비슷한 예로는 "어느 날 하늘에서 000만원이 떨어진다면?"과 같은 질문이 있다. 기억 상 중학생 때는 "건물을 사야지!"라는, 순수하면서도 순수하지 않은 답변을 내놓았고, 고등학생 때는 저렇게 말하면서도 "근데 살 수 있나?" 같은 문장을 덧붙였다. 나는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다들 '서울에선 힘들어'라는 얘길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는, 저런 질문이 들어오면 미간에 힘을 주면서, "제세공과금 포함?" 따위를 물어보며 낄낄깔깔 질문을 덮어버리곤 했다. 왜냐하면 누군가 나에게 000만원을 줄 리 없단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당장 몇십만원을 벌기 위해 카페나 영화관 등등으로 뻗쳐있던 시기이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어릴 적부터 진짜 고민은 다른 것이었다. 물론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여유있는 통장을 갖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돈이 생기면, 그 돈으로 뭘 할래? 라고 질문의 각도를 튼다면. 조금 다른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누구는 세계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수도의 가장 중심에 있는 호텔에만 자리를 잡을 거라고. 다른 누구는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일단 유학을 떠날 거라 했다.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에 가서 언어 두 세 개를 마스터할 거라고. 멋진 꿈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다들 당시의 학업이든 직업을 때려치고 다른 도전을 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곧바로 답변하긴 어렵다. 물론 쌓아만 둬도 마음 한 켠이 넉넉해지는 것이 돈이지만, 그것보단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떠올리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 목표가 곧 내 삶의 방향성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 확실한 건, 로또가 당첨된다 해도, 신나게 백수모드로 돌입하진 않을 거란 사실이다. 돈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는 건 학창시절에 친구들끼리 무슨, 숙어처럼 쓰던 말이긴 했지만. 아흔 살이 된 지금 그 문장을 곱씹어보면 참 별로다. 어쨌든 일은 계속 할 거다. 나는 내가 소비자보다는 항상 생산자 역할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남의 돈이든 내 돈이든 벌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모호한 이상이 있다. 친구들의 야유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애들도 사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단 걸 안다. 이러나저러나 일하기 싫어 죽겠어서 어영부영 다니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주말 출근은 하지 않아... 이건 조금 딴 길로 새는 얘긴데 요즘은 성실함이란 것을 바보 뱅신 단어와 동급으로 여기는 것 같다. 뭔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을 모자르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성실 또한 재능이 아닌가? 이렇게 역설하니 국제성실협회 부회장 쯤 되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그런 타입이기 보단.. 더보기
아무튼 돈은 목적보다는 수단으로 남겨두고 싶다. 쌓아두는 것이 목표라면 돈이 목적 그 자체가 되는 셈이니까, 너무 멋이 없다. 삶의 목표, 방향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인생을 살다가 생긴 원앤온리 취향, 취미 덕분에 자연스레 자리잡을 수도 있지만 확고하게 말하는 게 조금 어려운 사람도 많을 것 같다. 하나만 정해야하는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신에게 100억이 생겼어요. 아, 그럼 전 00에 작고 소박한(흑흑) 건물을 하나 사서 평생 수익을 보장받은 후에, _________를 하겠어요. 밑줄 친 빈칸에 들어갈 말은? 친구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떤 사람이 되어서 뭘 하고 싶은데? 돈은 수단으로만 기능할테지만 그 쓰임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이런 상상이 즐겁다. 여기저기 뻗치다가 언젠가부턴 개인이나 가족이나 친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더 넓은 범주를 생각한다. 어쨌든 목표는 미래의 일이니까 상상 없이는 닿을 수 없는 것이다.
* 2021년 9월 개인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