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늙음의 시간을 준비할 때가..."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가 있는 딸아이를 빼고 남편과 아들과 나, 이렇게 셋이 아침에 미역국을 먹을 때만 해도, 그저 지난밤 친구들과의 생일파티 얘기를 아들에게 들으며, 오늘 케이크는 누가 사 올까 등의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평범한 시작이었다.
모두가 나가고 세수하며 거울을 보는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순간, 먹먹함으로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아픈 그것’이 나를 한참이나 쪼그려 앉아 엉엉 울게 했다.
생일 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너무도 행복하게 뛰어놀던 모습,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과 작은 인형 하나에 온 세상을 가진 듯 기뻐하던 딸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움직이던 자동차를 처음 선물 받았을 때 너무도 좋아하던 아들 얼굴, 동영상을 찍을 때면 항상 캠코더 앞으로 돌진하며 렌즈 앞에서 점프하던 그때의 아이들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이 추억 조각들은, 가슴 깊은 곳을 아프게 찌르면서 뭔가 묵직한 것으로 누르는 ‘아픈 그것’이었고, 도무지 슬픔이라는 단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었다.
그때가 그리워서인지 안타까워서인지 이렇게 속절없이 세월이 흐른다는 허전함과 두려움 때문인지, 그냥 숨이 막힐 듯 절절 해졌다. 나도 이제는 아이들이 커가는 시간만큼 늙음의 시간을 준비할 때가 되었나 보다.
세월의 속절없음은 노래에도 글에도 영화에도 차고 넘치듯 있지만, 그건 그저 공감일 뿐 고통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가슴속의 '아픈 그것'은 그리움과 후회와 행복으로 아이들이 남겨준 너무도 소중한 가슴속의 통증이요, 삶의 흔적이다.
이런 가슴속의 ‘아픈 그것'이 친정아버지에게는 나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다. 딱히 용건이 있어야만 전화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자주 안 하게 되는 걸까.
‘이렇게 네 목소리를 들으니 또 힘이 나는구나. 왜 그리 가끔 허망하고 그런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신다 생각했던 아버지도 그렇게 80의 세월을 견디고 계셨다.
점점 커가는 자식이 나를 슬프게 하는 건지, 세월이 나를 슬프게 하는 건지, 나이가 들면 기쁜 것보다는 슬픈 것투성이다. 눈물은 눈에서만 흐르는 게 아니다.
가슴속의 눈물샘이 더 깊고 고통스럽다.
잘 자라준 아들, 생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