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고 아름다운 그곳의 사람들...'
남편에게 비탈리 아저씨가 있었다면 내게는 일상을 함께한 릴리 아줌마가 있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동유럽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동유럽은 미국 문화와 다른 고풍스러움과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과 돌바닥, 진눈깨비 날리는 칙칙한 날씨까지..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그 시절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오래전 읽었던 ‘왓칭(watching)’이라는 책에서처럼 신이 부리는 요술이었을까?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97년, 남편이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곳이 우크라이나 키예프였다. 그 당시 이름도 생소한 동유럽의 끝자락에 있는 미지의 나라였다.
4살 5살 아이들의 초보 엄마였던 나는 모든 일상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어느 만큼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던 릴리 아줌마를 만났다. 그렇게 릴리 아줌마는 집안일과 아이 돌봄까지 매일을 함께한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40대 후반 정도였던 릴리 아줌마는 대학 졸업 후 건축사무소에서 일했었지만,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졌고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공용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해외 생활이 적응도 되기 전에 아줌마는 자신의 집에 아이들과 나를 초대해서 앨범을 보여주며 가까워지려 애썼고, 그 모습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이 상당히 컸던 걸로 기억된다.
외국인 유치원에서 하는 행사 중 하나인 핼러윈데이 파티 때 입을 의상도 어렵게 구해와서 입혀주며 “크라시바(beautiful)~”하며 함께 놀았었고, 우리 음식을 함께 먹을 때면 연신 “하라쇼(good)~ 꾸스나야(delicious)~”하면서 좋아하고, 다음날에는 자신이 만든 빵이나 과자를 가져오곤 했다.
릴리 아줌마는 발레를 좋아했고, ‘다차(구소련 시대에 보급받았던 주말농장)’를 가지고 있어서 주말이면 쉬었다 오곤 했다. 독립 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더 커졌지만 본인의 일상이 보통사람의 일상이라며 웃는 그녀가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우크라이나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내가 살던 키예프는 서울처럼 도시 가운데를 넓은 드니프로강(다뉴브강)이 흘렀고 , 얄타, 체르니기브, 르비프.. 등 여행을 다녔던 모든 도시는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체코의 프라하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만큼은 아니어도, 크리샤틱 거리와 안드레이 스푸스크(언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명소들이 많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영화 ‘해바라기’)과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한 울창한 숲(영화 ‘닥터지바고’), 흑토의 신비로움, 길표 양말(?) 광고에서나 볼 것 같은 지평선까지 이어진 도로(물론 도로포장은 좋지 않았지만), 그리고 흑해의 멋짐까지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였다.
서울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오페라와 발레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화가들의 집을 방문하며 그림을 보거나 살 수도 있고, 어느 곳이던 차를 세우고 샤슬릭(전통 숯불 꼬치구이)을 해 먹으며 자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나라였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했고 힘들면 힘든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자신의 삶을 수용하며 감사하며 사는 선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우리 가족의 키예프 생활은 참 아름다웠다고 기억된다. 릴리 아줌마, 비탈리 아저씨, 나타샤, 발렌티나…
그런 아름다운 나라가 전쟁을 겪고 있다.
그런 좋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래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어서 전쟁이 끝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