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모습까지도 낯설지 않은.."
봄이 오고 있다.
전원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기다려지는 계절이 되었지만, 꽃이 피고 초록이 올라오는 예쁜 계절임에도 내게는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었다.
봄의 먼지바람, 눈과 코의 환절기 알레르기, 무엇보다 싫은 건 또 한살이 더해진다는 것과 염색하지 않은 흰 머리카락이 잦은 봄바람에 세상 밖으로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이라면, 내 나이 즈음의 여자들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거울 속의 흰 머리카락을 도저히 허락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얼굴의 피부가 조금씩 아래로 쳐지는 것 같아서 TV를 볼 때도, 책을 볼 때도, 대화를 할 때조차도 턱 밑을 두 손으로 감싸 위로 당겨주곤 했었다.
비밀스럽게 아무도 모르게, 그러면 좀 더 당겨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면서(?) 말이다. 누군가가 그런 이유로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관일 거다. 세수 후에 얼굴을 연신 때려주는 행위와 같은 맥락이다.
늙음이 나와 내 남편에게만은 왜 자연스럽지 않을까. 50이 넘으면 예전엔 중 늙은이였고 60이 넘으면 정말 상 늙은이였다. 100세 시대를 아무리 외쳐보아도 늙은 몸은 늙은 몸인 것을, 기를 쓰고 안 늙었고 ‘불타는 청춘’이란다.
50대 초반대로 보이는 70대 후반의 연예인이 부자연스럽고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 부럽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목 언저리에 머무는 걸 보면, 늙고 싶지 않고 늙어 보이고 싶지 않은 맘은 다 똑같은가 보다.
염색이 흰 머리카락을 가려주는 것은 고작 2~3주뿐인데, 기를 쓰고 그 독한 약을 뒤집어쓰고, 보톡스를 생각한다. 단지, 늙어가는 것을 가리고 싶어서 일까, 살아온 세월이 억울해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소리 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멀리 두고 싶어서 일까.
전원생활을 시작한 1년 4개월 동안, 내가 염색하는 ‘때’는 몇 번 되지 않는다. 지인과의 만남 전에는 꼭 하게 되고, 아이들 방문이 있을 때는 간혹 염색을 한다. 그래도 늙은 부모보다는 젊은 부모가 헤어짐의 시간이 좀 더 멀게 느껴져서인지 내게 보석 같은 아이들은 우리가 염색을 하면 젊어 보여 좋단다.
생각해보면 염색은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의식한 행위일 뿐인데, 얼마나 많은 것 들을 붙잡고 '보여지는 나'를 위해 살아왔는지.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도시에서 처럼 작위적이지 않아서 참 좋다. 만나는 사람도 만나야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작은 텃밭을 가꾸며 그저 창밖의 자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온을 느낀다.
지금도 흰 머리카락이 예뻐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 늙어가는 모습까지도 낯설지 않은 '전원에서의 일상'이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하다.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