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직원의 여행 이야기 - 005
아직까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코로나 팬더믹의 시작이었던 2020년 초 출장차 마닐라 여행을 다녀왔던 것이 마지막 국제선을 탑승했던 이력이었고 매년 10회 이상은 해외로 놀러, 출장 다녔던 내 여권은 이제 만료가 되어 책상 서랍 첫 번째 칸에 고스란히 누워서 잠들어 있다.
가끔씩 추억 삼아 너덜너덜해진 여권을 꺼내어 입국 스탬프를 하나하나 살펴볼 때면 언제 이럴 때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찍은 것 같지만 각자 나름의 룰이 있는 듯한 입국도장과 비자 스탬프들.
2011년 언제쯤 새로 발급받았던 10년짜리 여권은 그렇게 2021년이 되어 팬더믹 속에 만료가 되었다. 10여 년 전 학생이었을 때 용돈을 받고 시급 4천 원이 되지도 않는 알바를 했기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새로 발급받은 여권으로 다녀왔던 여행지라고 해봐야 부산에서 배를 타고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대마도라던지, 집에서는 멀디 먼 청주 공항에서 뜨는 홍콩 전세기를 타고 홍콩 여행을 다녀오는 정도였다. (그때 홍콩행 왕복 비행기 운임을 생각해보면 지금도 믿기 힘든 금액이었다. )
2012년 운 좋게도 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되어서 짧게 아일랜드에 교환학생처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교내 지원 프로그램으로 내가 냈던 학비로 교환학생 프로그램 비용이 지원되었고, 왕복항공비와 체류비만 부담하면 되는 거의 공짜와도 같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일랜드 더블린까지는 지금도 직항 편이 없지만 그때는 더더욱 없었다. 같은 코스에 선발된 동기들은 보통 인천에서 출발해 두바이를 거치는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을 끊었다고 했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도쿄와 코펜하겐을 거쳐 가는 스칸디나비아항공 (SAS) 티켓을 구매했다.
학생이었던 신분에 티켓 금액도 저렴했고, 비행기 스케줄상 도쿄에서 하루 스톱오버를 해야 했지만 오히려 나는 그게 좋았다. 아일랜드 가기 한해 전 참가했던 국제캠프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와 우에노역 근처에서 만나서 밥도 같이 먹기로 약속했고 2012년 당시 갓 오픈한 도쿄 스카이트리도 구경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더더욱 좋았다.
부산에서 도쿄는 거리가 많이 멀진 않지만 유럽까지 가는 거리를 지구 오른쪽 방향으로 거꾸로 거슬러 간 격이 되므로 다시 도쿄에서 유럽 코펜하겐까지는 인천에서 가는 항로보다 훨씬 비행시간이 오래 걸렸다. 열세시간 비행에 세 시간 대기 후 환승하고 코펜하겐에서 더블린까지도 세 시간 정도 걸려 도쿄에서 묵었던 숙소를 출발한 지 25시간 정도 후에 아일랜드 호스텔에 도착해 정신이 혼미했던 기억이 있다.
며칠 쉰 후 교환학생을 진행해야 했던 대학교에도 잘 도착해서 연수를 잘 마쳤다. 보통 모든 유학생들이 그렇듯 유럽까지 비싼 비행기 티켓을 지불하고 가서 그냥 냉큼 돌아 올 순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티켓을 넉넉히 끊는다는 표현이 맞다. 나는 유럽 배낭여행을 해본 적이 있었기에 런던 일주일, 파리 일주일을 더 둘러보고 귀국하는 일정으로 했고 파리-코펜하겐-상해-부산 여정으로 같은 스칸디나비아항공을 예약했었다.
아일랜드에서 과정을 마치고도 아일랜드에서 캠프힐이라는 봉사활동 커뮤니티에 있던 친구를 만나 일주일 정도 여행을 했고 더블린에서 런던까지는 유럽의 대표적인 저가항공인 라이언에어를 예약했다.
영국 런던으로 여행을 가기 열흘 전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 당시에도 신입이었지만 열흘 정도 여름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내가 혼자 하려고 했던 런던&파리 여행에 조인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름휴가 시즌이어서 비행기 티켓 구하기가 어렵기도 어려웠고 티켓 금액은 많이 비쌌다. 일을 해야 하는 누나 대신 여기저기 찾아보다 그나마 적당히 비쌌던 항공사를 찾았고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에티하드 항공으로 런던인/ 파리 아웃 일정으로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를 했다.
내가 묵을 한인 민박에 미리 연락해 예약을 도미토리에서 두 명이서 묵을 수 있는 단독 객실로 바꾸었고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영국항공 비행기 티켓도 운 좋게 싼 가격에 구해 놓았다.
누나가 나의 1인 패키지여행 단골손님이 된 건 이때부터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안전하고 조밀하게 짰던 일정 덕분인지(?) 내가 타고 도착한 라이언에어보다 조금 후에 누나가 탄 에티하드 항공이 런던에 도착했고 나는 현지에 살고 있는 동생처럼 누나를 픽업해 숙소로 같이 갔다.
런던에서 일주일, 파리에서 일주일 길을 잘 찾는 나는 계획대로 여행을 했고 내 여행 스타일이 늘 그렇듯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간 식당은 다 맛있었고 어느 날은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던 역이 너무 예쁘기도 했다.
모든 유럽 여행자들이 그렇겠지만 아침 일찍 한인민박에서 차려주시는 든든한 밥을 먹고 하루 종일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다니고 걷고 또 걸었다. 파리에서의 강행군은 몽마르뜨 언덕이나 베르사유 같은 걸음 수가 어마어마한 관광 반경 때문에 더 힘들기도 했다. 누나의 유럽여행이 끝나가던 날 저녁 마지막 일정으로 해가지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앞서 걷던 누나가 다리가 아파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에 나는 길에서 엄청 크게 웃었다. 왜냐면 나도 다리가 아파서 다리를 절뚝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전하게 짜둔 일정 덕분에 (?) 누나는 내가 귀국하기 이틀 전에 한국으로 가는 일정이었고 누나는 길을 잘 못 찾는 편이고 소매치기가 넘쳐나는 파리에서 혼자 공항까지 가기에는 위험해서 내가 공항까지 후아시뷔스를 타고 같이 가기로 했다.
마지막 날 저녁 현지에서 한참 핫했고 지금도 핫한 생마르탱 운하에서 노상 와인 까기도 도전했었는데 정말 편의점에서 아무거나 싼 걸로 집어 든 와인은 생마르탱 운하의 분위기가 섞이자 샤또 마고 맛이 났다. 아니 나는 샤또 마고를 맛 본적은 없지만 그런 맛이 남에 틀림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누나도 그랬고 곧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나는 '열심히 살다 보면 또 거짓말처럼 유럽에 올 날 있을 거야' 하면서 이 층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었다.
열흘 넘게 뚜벅이로 런던과 파리 시내를 걷고 다녀서 그런지 나는 꿈에서도 파리 시내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내가 신고 있던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이었던 것에 꿈이라고 깨달았어야 하는데 늘 그렇듯 꿈은 꿈이기에 그런 줄 몰랐다.
맨발로 아스팔트 길도 아닌 중세 타일로 마감된 파리의 골목길을 걷고 있으니 발바닥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참을 걷다가 나는 개똥인지 사람 똥인지 모를 똥을 밟고야 말았다.
발가락 사이와 발톱 사이에도 질퍽하게 묻은 더러운 똥을 나는 씻어내고 싶었다. 마침 뒤를 돌아보니 발을 씻을 수 있을 것 같은 개수대가 보였다.
개수대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물을 틀어 똥이 묻은 맨발을 아무리 헹궈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내 발에 묻은 똥은 마치 홀로그램처럼 발에 찰떡같이 붙어있었고 나는 안간힘을 써서 씻어내다가 잠에서 깼다.
누나와 함께 아침을 먹고 누나 캐리어를 내가 끌고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로이지 버스(후아시뷔스)를 타러 오페라 역으로 갔다. 오페라에서 샤를 드골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데 누나와 나란히 앉아서 공항으로 향하면서 나는 누나에게 이상했던 꿈 이야기를 생생하게 해 주었다.
"누나야, 어제 내 꿈에 있잖아. 내가 똥을 밟았거든? 근데 그 똥이 물로 씻어내도 안 씻겨서 고생하다 꿈에서 깼어"
그렇게 둘이서 수다를 떨다 보니 공항에 어느새 도착했고 누나는 에티하드 항공 카운터에서 귀국행 비행기에 체크인을 하고 나와 헤어져 면세점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나는 다시 시내로 돌아와 일주일간의 파리 여행 중에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던 팔라펠을 다시 먹으로 마레지구까지 가서 팔라펠을 시켜서 커피와 함께 먹고 있었는데 누나에게서 카톡이 왔다.
'야 ㅠㅠㅠ 니 똥꿈, 나한테 온 것 같아'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됨 ㅠㅠㅠㅠㅠ타고 보니 일등석이야 ㅠㅠㅠㅠ '
그때서야 생각났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좋은 길몽을 꿔놓고도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누나한테 말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오버부킹 되었던 귀국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누군가를 업그레이드해서 비즈니스, 일등석으로 옮겨야 하는데 성수기에 다소 비싼 운임으로 발권을 한 덕인지 누나가 당첨이 된 것이다. 체크인 할때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고 탑승할때 누나의 이코노미 탑승권을 북북 찢어버리고 새 탑승권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파리-아부다비, 아부다비-인천으로 환승이 필요했던 여정이었지만 메리드세그 항공권(두 구간을 탑승하지만 하나의 구간으로 엮어서 발권된 항공권) 였던 탓에 파리에서 아부다비까지의 호사에 추가로 아부다비-인천까지 두 구간을 업그레이드받았다고 했다.
누나가 탔던 비행기의 일등석은 그 당시에도 운행했던 기재 중에 정말 최신 기재였던 것 같다. 완전 평면으로 펼쳐지는 좌석에 가림막까지 있는 객실 형태의 시초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새것 같은 가죽 냄새와 양모이불, 그리고 잠옷까지 줬다고 했다. 생에 첫 캐비어도 맛봤다고 했다.
기내에서 마시는 물도 VOSS 워터를 줬고 물병이 너무 이쁘다고 했더니 승무원이 따지도 않은 새병을 포장해 가져 가시라고 챙겨주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승무원이 너무 잘생겨서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했다.
그토록 내리기 싫었던 비행기는 처음이라고 했던 누나의 첫 유럽여행은 내 똥꿈 때문에 황홀하게 끝났다.
그리고 그 업그레이드 사건 이틀 후가 나의 귀국일이었는데 나는 내 똥꿈의 효력이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 있길 기대했긴 했지만 누나가 누렸던 행운의 크기가 너무나도 큰 행운이었어서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까지 업그레이드를 바라면 도둑 같았다랄까?
파리에서 코펜하겐까지, 코펜하겐에서 상해까지의 스칸디나비아항공의 운항은 순조로웠다. 정시에 출발했고 비록 일반석이었지만 옆자리에 이상한 사람이 타거나 비행기가 많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상해에서 부산까지는 대한항공을 이용해야 했었는데 스칸디나비아 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 대한항공은 스카이팀 소속으로 터미널이 달라 터미널까지 옮겨가서 환승을 하면서 나는 호화로웠을 누나의 퍼스트 클래스 비행을 한 번 더 부러워했다.
내가 탔던 부산행 대한항공은 정시에 김해공항에 도착을 하지 못하고 기상악화로 두 번의 착륙 실패를 하고 김포로 회항을 했다. 김포공항에서 급유를 하고 다시 김해에 도착했을 때에는 예정 도착시간보다 이미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고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걱정으로 눈이 퀭해져 있었다.
집에 와서 오랜만에 엄마표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그래도 누나에게 말했던 꿈의 효력이 다 소멸된 것 같진 않았다. 김치찌개와 쌀밥으로 금방 행복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