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관리의 시작과 끝, 리스크 관리
폭염주의보가 연일 발령되고 있다. 회사에서라면 차가운 에어컨 바람과 온풍이 불어오는 바깥과의 기온차를 느끼며, 지루하게 보냈을 금요일 오후. 정신이 번쩍 들만한 주제를 하나 준비해보았다. 바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면 피하기 어려운 부정기사.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외부에 밝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여러가지 민감한 이슈들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근무했던 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석유화학계열의 제조업 회사이다 보니, 안전사고나 유해한 물질 유출, 회사 차원에서 대외비로 추진하고 있는 M&A, 흔히 오너 리스크라고 부르는 CEO 나 오너 일가 관련 이슈들, 사업장이나 공장이 위치한 지역의 주민들과 일어나는 여러 마찰들. 내가 일하던 당시 홍보팀에서 발생할 뻔한, 또는 실제로 발생했던 이슈들을 대강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보았는데도 이정도다. 그렇다면 회사 차원에서 피했으면 하는 부정기사는 막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피할 수 없는 적(부정기사)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 막을 수 없었던 기사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일이다. 이제는 검색해도 (다행히) 확인하기 어려운 기사가 공중파 9시 뉴스에 등장했다. 회사가 중소기업의 거래처를 빼앗고, 일방적으로 이면 계약을 맺고 나서는 파기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당시 나는 아웃룩의 RSS 피드 검색을 이용해서 검색어가 계속 기사에 뜨는 것을 틈틈히 모니터링했다.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5시 뉴스에 기사가 먼저 떴고, 그룹 홍보실에서도 연락이 왔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각해보지 못한 이슈를 맞닿트린 상황. 팀장님과 전무님, 그리고 나 까지 (언론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이렇게 3명. 이 중에서 실무자는 나 혼자)우왕좌왕하며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이 기사의 불길이 다른 곳(=타 매체. 특히 언론 매체)로 번지지 않도록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크게 소용은 없었다. 지금 검색해보니, 공중파 뉴스에서는 해당 내용이 삭제 되었지만, 일부 지면 매체에는 아직 기사가 남아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부정기사는 왜 막을 수 없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해당 부정기사의 씨앗이 된 고등법원의 판결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컸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었던 법무팀 조차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법조 담당 기자가 판결문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발견하고 기사화했기 때문에, 평소 관리대상이었던 산업부 기자가 아니었다는 점도 사실 관계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가중했던 것 같다. 또한 관련된 사건이 발생한 시간이 10여년 전의 일이라, 법무팀에서도 계약 관련 내용을 찾아보고 정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5시에 처음 발견한 뉴스가 9시 뉴스로 4시간만에 직행하는 동안 벌떼 쑤신 집처럼 우왕좌왕한 가운데, 가판 기사를 찾아보고 다같이 중국집에서 멍하니 짜장면을 먹다가 10시에 퇴근한 기억이 난다. 당시 회사는 소수의 산업부 기자 위주로 사업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보도자료를 내보내는 정도로 언론관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공중파, 주요 경제지, 인터넷 매체에까지 전방 공격을 짧은 시간동안 받은 후에 언론 리스크 관리에 대해서 원론적인 고민을 처음 시작했다.
그 다음 부정기사는 더 센 거였다. 이 기사 역시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꽃이 날아왔다. 바로 구조조정 기사였다. 교통 사고 이후 회사생활 자체에 큰 회의를 느끼던 시점, 아침마다 기사를 검색하고 모니터링 하는 일에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업무양과는 관계없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짐이 점점 커지는 것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가중될 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실이 터지듯 기사가 터졌다. 첫번째 부정기사는 회사 차원에서 다소 억울한 점도 있었고, 사실 관계가 중소기업 대 대기업의 프레임으로 번져서 속절없이 당했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번 기사는 달랐다. 사실 회사는 실제 알음알음 인력을 감축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나보다 1년 선배이거나 나와 동기인 사원급에서도 있었다. 아직 결혼을 안했으니 나가도 되지 않느냐, 이 업무로는 실적을 내기 어렵지 않느냐, 회사는 나갈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사정을 말하며 몇 몇 선후배, 동기에게 회사를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회사 차원에서 공고하는 희망퇴직과 달리, 퇴직자는 답정너처럼 정해져 있으면서 보상하는 퇴직금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팀장은 왜 아침일찍 나와서 기사를 검색해보지 않았느냐고 역정을 냈지만, 나는 회사의 불합리한 인력감축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사에 대응할 필요를 못느꼈다. 막지 못한 기사이지만, 어차피 막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생각에 팀장의 역정이 귀따갑게 들릴 뿐이었다.
# 부정기사를 (틀어)막기에 앞서서 생각해 볼 것들
위에 나온 기사들 외에도 소소한 기사들이 줄곧 지뢰처럼 터졌었다. 이제 퇴사한 나에게는 기억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기에 잊혀졌을 뿐. 회사에서는 몇 번 크게 맞았다는 생각이 들자, 직책자들 대상으로 언론 리스크 컨설팅하는 회사의 이사를 데려다가 미디어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고,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어떻게 기자의 질문에 대응해야 하는지, 무엇이 사업의 리스크인지 열심히 취합하고 자료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노력들이 언론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불필요한 노력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많은 부정기사의 시작에는 곪아있는 뿌리나 잘못된 회사의 관행, 언론과의 소통 부족과 같은 원론적인 문제가 있었다. 회사는 이러한 문제들을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인지하고, 뒤늦게 봉합하기에 애썼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직에 있는 분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드릴 수 있을까?
# 두려워하지 말고 솔직해져라, 그리고 후회하지 마라
언론사 미디어 트레이닝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회사의 대표 초청강연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강의 자체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인지라, 언론 관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직책자 분들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강의였다. 정확히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결국 내용은 하나였다.
"담당자를 통해서 대응할 것 "
강의를 듣고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한 가지 였다. 무조건 언론 담당자에게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무자 또는 직책자가 쉽게 내뱉은 한 마디를 언론은 꼭지로 삼아 그대로 대중에게 노출시킨다.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지 못한 상태에서,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진 기사가 외부로 나가면 그때부터는 홍보팀은 소화기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수 밖에 없다. 실제 강의에서도 준비되지 못한 발언을 하면서 겪은 여러 기업들의 사례가 나와 (남의 집 불구경하듯) 강의가 재미있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담당자인 분들을 위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 부정기사는 일단 터지고 나면, 속수무책으로 빠르게 번지는게 대부분이다. 이 때 해야될 것은 부정적인 사안에 대한 솔직하고 빠른 인정이다. 업황이 안좋아지면서 일어나는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배치, (최대한 안전수칙을 지켰다고 했음에도)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들, 오랜 시간이 지나 발생한 계약관련 이슈들은 사실 어느 회사에나 있다. 악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기업활동을 하는 가운데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들이다. 때문에 인정해야할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자주 연락하던 기자들,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차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아니라, 처음 연락오는 기자들이 부정적인 사안에 대해 날선 질문을 하는 일은 홍보팀에 있으면 반드시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나만 겪는 일, 나한테만 쏟아지는 화살이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담당자 선에서 답할 수 있는 것만, 확인이 필요한 것은 확인 후에 전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언론 담당자는 기자가 아니라, 기자와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다. 매일 이슈라는 먹이를 찾아 (때로는 하이에나처럼, 때로는 어슬렁거리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보고서도 작성해야 하고, 다른 팀에서 요청받은 메일에도 회신해야 한다. 어떤 날은 쓸데없어보이는 본부 전체 회식에 끌려갈 때도 있고, 회사에서 실시하는 교육이나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해야한다. 상대해야 하는 기자도 여럿이다. 최선을 다해 막았고, 대응했고, 답변했다면 그 뿐이다. 날이 갈수록 상대해야 하는 공중의 범위가 넓어지는 요즘, 내가 어쩔 수 없는 의사결정으로 일어난 리스크에 너무 자책하지 마시길. 한 때의 나처럼.
# 막을 수 없었다
처음 내가 했던 질문의 답이 나왔다. 부정 기사는 막을 수 없었다. 신입사원 시절 팀장이 했던 말 중에 생각나는 게 있다면 이것이다. "기자들의 일은 기사 쓰는 건데, 어떻게 그들의 업무를 막을 수 있는가?" 자조적인 한탄일 수 있지만, 맞는 말이다. 기자는 기자대로, 홍보팀은 홍보팀대로 우리의 일을 할 뿐이다. (사실 기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기사 밖에 없다^^;) 막을 수 없는 일에 후회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 안테나를 뻗어 최대한 나의 일을 하는 것. 언론 담당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딱 거기까지가 아닐까. 혹시 예상치 못한 이슈에 허둥대며 이번주를 보냈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한 나 자신에게 칭찬해 주시길. 지나고 나서 보니, 나는 그걸 못해서 힘들었다.